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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자 좀 바꾸쇼 - 악플을 대하는 나만의 자세

배우고, 품고, 잊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by 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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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테마 기행 미얀마 편을 잘 봤다는 페이스북 댓글을 보고 유튜브를 한 번 찾아봐요. 우와. 6개월 전에 올린 건데, 백만 뷰가 얼마 안 남았네요. 7년 전 영상이거든요. 제가 나온 프로그램 잘 안 봐요. 거지 꼴로 있는 얘기, 없는 얘기 나불대는 거 보기 싫어서요. 댓글도 안 봐야 하는데, 스크롤을 아래로, 아래로 내리고 있지 뭡니까? 잘 봤다. 고맙다. 좋은 댓글이 훨씬 많았어요. 하지만 기억에 남는 건, 부정적인 댓글이죠. 강렬하니까요. 훅 들어오니까요. 추려보면 이렇더라고요.


-왜 저래 웃어?

-겸손하지 못하게 목소리는 하이퍼, 농촌사람 만나서 목소리 높여가며 , 이곳 미국에 와서 시골 사람들에게 카메라 들이대고 목소리 높이면? 유럽 농촌에 가서도 그래 봐라

-진짜 쪽팔린다. 가냘픈 여인들도 지고 가는 걸 장성한 젊은 놈이 금방 포기하고 한심하다 한심해. 국민혈세 빨아먹는 이런 방송 제발 그만해

-여행작가답지 않은 멘트만 시끄럽게 남발해서 차분하게 보는데 방해된다 ㅋ

-나도 좋아하는 프로그램인데 출연자의 외모(수염)이나 말투가 거슬립니다. 편한 느낌이 아니네요

-왜 리포터들은 비리비리하게 생겼지? 운동 좀 하지


목소리가 왜 이렇게 크냐고요? 안 들리면 더 욕먹으니까요. 전달은 되어야 할 거 아닙니까? 야외가 무슨 무소음 스튜디오인 줄 아십니까? 볼륨 조정 안돼요? 자막만 읽으세요. 유럽에서도, 미국에서도 당연히 큰소리로 말해야죠. 유럽이나 미국에서 쭈글이 되는 양반의 댓글 잘 봤습니다.


내 목 부러지면, 그때는 박수 좀 쳐주시겠습니까? 제작진이 저 걱정해서 그만 하라고 한 거예요. 저도 제가 부끄럽습니다. 대신 쪽팔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제 외모 무지 거슬립니다. 출연 제의가 온 걸 어쩝니까? 안 비리비리한 출연자들도 많습니다. 운동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런 댓글을 달고 싶어요. 공격을 받았으니, 반격도 해보고 싶은 게 인간 아니겠어요? 그들도 뜨끔했으면 해서요. 의견입니까? 싸지른 겁니까? 따지고 싶어요. 저 연예인 아닙니다. 당신들의 행패, 나라도 나를 보호할 테요. 싸이버 세상의 전사가 되고 싶어집니다.


결국 아무 댓글도 달지 않아요. 악플에 댓글을 달아도, 대부분 답도 없더라고요. 그냥 한 번 스트레스 해소하고 끝인 거예요. 깊게 생각하고, 의미를 담았다기 보다요. 어떻게든 표현하고 말겠다. 순간의 증오였던 거죠.


모두가 나를 좋아하기를 바라는 건 욕심이죠. 불가능해요. 모두가 나를 싫어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죠. 아픈 사람, 우환이 겹친 사람은 말이 예쁘게 안 나와요. 두통이 심한데, 아이가 지금 아파서 병실에 있는데 어떤 놈 목소리가 거슬려요. 여행 프로그램 보면서 쉬고 싶었는데, 출연자 놈이 감동을 파괴해요. 악플은 손톱 끝에 가시가 박힌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는 방식이죠. 저라고 뭐 TV 나오는 출연자 보면 다 예쁘겠어요? 저도 채널 돌려요. 저도 속으로는 꼴 보기 싫다고 해요. 표현을 안 할 뿐이죠. 타인의 댓글에 제가 보여서 섬뜩해요. 감추고, 아닌 척 하지만 저도 얼마나 다르겠어요? 건강한 세상이 되려면, 어떤 표현도 정중해야죠. 하지만 그러기가 쉽지 않죠. 공격의 목표는 비수를 꽂는 거니까요. 눈 앞에서 무너지는 꼴을 보는 게 소원인 사람들이 자판을 두들기는 거니까요. 얼굴 볼 일 없는 놈에게 싫은 소리 한 번 하는 게 무슨 대수겠어요. 제가 괴로울수록, 그들은 행복해져요.


어떤 공격을 받든 처음부터 무덤덤해지지는 못해요. 하지만 어떤 공격이든 평생 머물지도 못해요. 한 순간의 자극일 뿐이죠. 이럴 때일수록 인터넷 세상에서 나와야 해요. 그 안에 있으면, 그 세상이 전부가 돼요. 아니잖아요. 저 역시 그들과 평생 만날 일 없어요. 닿을 일 없어요. 그런데도 종잇장처럼 휘둘린다면, 저는 그 영향력을 즐기는 사람인 거예요. 글이건, 얼굴이건 세상에 내미는 순간 평가 역시 피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영향력은 우리가 고를 수 있어요. 똑같은 댓글이 다른 출연자에게 달렸다면, 별 것도 없구먼. 댓글에 부르르 떠는 게 우스워 보일 걸요? 그러니까요. 나한테나 치명적인 거죠. 고대 상형문자처럼 두고두고 보면서 곱씹으면 안 돼요. 가장 열 받는 게 뭔지 아세요?


-내가 그런 댓글을 달았다고요? 당신 누구요?


기억조차 못하는 그 사람에게, 혼자서만 광분하는 상상을 하면 그렇게 열불이 나요. 그런 억울한 사람은 되지 말아야죠. 한 번의 강렬한 자극, 잘 보았고, 잘 보냅니다. 가라, 떠나가라. 악플들아! 수고 많았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어떤 말들이, 글들이 내 작은 몸으로 어떻게든 들어와서, 세상을 향해 뻥튀기처럼 빵 터지고 싶어 해요. 터지기까지 시간이 걸리지만, 빵 터졌을 때는 무척 짜릿합니다. 그래서 씁니다. 매일 짜릿해지고 싶어서요.


PS 그 미얀마 편을 꼭 보셔야겠습니까? 그럼 보셔야죠.


https://www.youtube.com/watch?v=iU46KyD0hHI&t=842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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