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연애 1

미래에서 기다릴게

by 모노


‘해머링 맨’이 서있는 광화문 흥국생명 빌딩 앞은 지리적으로 바람이 모이는 곳이다. 입사 3년 차였던 2007년 여름, 나는 그 바람을 마주하며 출근하고 바람이 밀어내는 방향으로 퇴근했다. 바람이 빌딩 앞에만 부는 것은 아니었다.

선배와 나는 마주 보고 앉았다. 사무실에서 우리 자리가 그랬다. 당시에 나는 업무적인 필요로 종로에서 일본어 수업을 들었다. 아침 7시 수업을 듣고 회사에 도착하면 8시가 조금 넘었다. 언젠가부터 선배도 일찍 출근했다. 내가 자리에서 학원 숙제를 하고 있으면 파티션 위로 고개를 내밀며 말을 걸었다. “아침 먹었어?” “도와줄까?” 일어 능력자의 도움을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시작은 그랬다.

며칠이나 했을까? 우리는 곧 공부는 넣어두고 아침을 같이 먹었다. 건물 1층 카페에서 그릴드 햄 치즈 샌드위치나 생크림과 딸기잼이 발린 토스트를 먹었다. 점심시간이면 무리에서 빠져나와, 인사동과 삼청동과 을지로를 돌아다녔다. 회사 건물 뒤 샛길로 올라가면 나오는 구러시아 공사관을 지나 정동길을 걷고 덕수궁을 돌았다. 어느 날은 회사 맞은편 경희궁의 깊숙한 곳을 산책하고 다른 날은 경복궁 앞을 지나 안국역까지 걸었다.

그러다 광화문을 벗어났다.

그날 나는 목과 어깨에 프릴이 잔뜩 붙은 핑크 블라우스와 스키니 진을 입고, 굽이 꽤 있는 메리 제인 펌프스를 신었다. 청평사로 가는 돌길을 걷기에 적당한 차림은 아니었다. 선배는 샌드위치와 커피를 들고 서 있었다. 같이 플랫폼으로 내려가 춘천행 기차에 올랐다. 나는 창가에 앉고 선배는 통로 쪽에 앉았다. 날이 흐렸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빗방울이 날렸다. 왠지 전혀 걱정 되질 않았다. 선배가 주는 샌드위치를 조금 먹다가 말았다. 대화가 자꾸 끊겼다. 창 밖을 보는데 왼쪽 뺨에 시선이 느껴졌다. 나를 보나 궁금했지만 돌아보진 못했다.

춘천에 도착했을 때 비는 그쳐 있었다. 청평사 배터로 가는 동안 소양강을 보며 배가 끊기면 어떻게 할 거냐는 류의 농담을 주고받았다. 청평사로 올라가는 길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비를 맞아 더 생생해진 초록 숲이 우리 주위로 빽빽했고 오른쪽으로는 계곡물이 흘렀다. 오가는 와중에 몇 번을 삐끗했다. 선배는 내 팔을 잡아 주었다.

내려오는 길에 작은 폭포 앞 바위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괜히 일어 공부 얘기를 하고, 둘 다 좋아했던 일본 애니메이션 ‘시간을 달리는 소녀’ 얘기를 꺼냈다. 미래에서 온 소년 치아키가 시간을 오갈 수 있는 소녀 마코토에게 “미라이데 맛테루(미래에서 기다릴게)”라고 말하고 떠나는 장면이 떠올랐다. 선배가 그렇게 말하고 떠난다면 영화 속 마코토처럼 “응 스구 이쿠. 하싯테 이쿠(응 금방 갈게. 뛰어갈게)”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여름 같은 연애가 시작되고 있었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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