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노 Nov 13. 2023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 - 김현아

마침내 증발이 되어 대기 중으로 사라져 버리는 방식의 죽음을 상상했다


올초부터 담당의와 나는,

내 병명을 우울증이 아니라 양극성 장애 2형으로 의심했다. 최근 올라온 경조증 증상과 다시 나락으로 떨어지는 우울 증상은 우리의 생각을 양극성 장 2형으로 모으게 했다. 프리스틱, 라믹탈, 아빌리파이를 밤마다 먹고 있었는데, 프리스틱을 빼고 라믹탈 용량을 두배로 올렸다. 다행히 바뀐 약은 나를 안정시켰다. 안정이 되니 이름이 바뀐 이 병이 궁금했다.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는 딸(안나)이 수능을 앞두고 자살을 시도한 사실을 알게 된 내과 의사 엄마가 쓴 책이다. 알고 보니 안나는 양극성 장애를 앓고 있었다. 의사 엄마도 눈치채지 못한 사이 안나는 조용히 무너지고 있었다. 진단 후 안나는 7년 동안 16번이나 정신병원 보호병동에 입원과 퇴원을 반복 중이다. 안나의 손목에는 수없는 자해 자국이 있는데, 엄마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동맥이나 인대의 위치를 알려주며 그곳을 피해 긋게 하는 일뿐이었다고 쓰여 있다. 그 마음이 감히 상상조차 안된다.


책은 에세이라기보다는 아픈 딸을 둔 의사로서 공부한 내용을 공유하는 의학 서적에 가까워 도움이 됐다. 다만, 자살과 자해에 관한 부분은 불안이 올라오게 했다. 챕터가 시작하기 전에 이 부분에 취약한 사람은 건너뛰라는 지침이 있어 조심히 읽었다. '한낮의 우울'을 읽을 때도 자살과 자해 부분이 그렇게 슬프고 읽기 힘들었다. 나도 상태가 안 좋을 때는 죽음을 생각한다. 보통 자해를 생각할 기력까지는 없고, 그저 햇볕 아래 얼음이 되고 싶었다. 따스한 기운에 녹아내려 물이 되고 마침내 증발되어 대기 중으로 사라져 버리는 방식의 죽음을 상상하곤 했다.



가족 중에 정신 질환자가 있다는 것은 어떤 미사여구로도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없다. 때로는 그 가족에게 내려진 '천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그것이 죄도 벌도 아닌 바로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정상 가족, 정상 신체 등 존재하지도 않는 완벽한 정상성 신화에 사로잡혀 인생이라는 도박에서 지는 패를 잡았다고 생각하는 경우 인생이 끝났다고 절망하기 일쑤이다. 그러나 원래 인생은 잔혹하다. 그리고 우리는 지는 패를 잡을 일이 훨씬 많다. 누군가 항상 이기는 패를 잡는 것처럼 자랑을 일삼는다면 인생을 반도 모르는 덜 떨어진 사람이라고 속으로 비웃어도 된다. 사실이 그렇기 때문이다.
222페이지



사람이 극한의 일을 겪으면 어느 경지에 이르는 것 같다. 안나와 그의 엄마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끝까지 읽었다. 다음에는 이 책에서 추천한 '정신병의 나라에서 왔습니다'와 '임상 신경 정신 약물학'을 읽어봐야겠다.  




조금 다른 얘긴데, 며칠 전 동생에게 메세지가 왔다. 초등 딸을 두었으면 세븐틴을 알아야 한다며 '음악의 신'이라는 곡을 추천했다. 음악이 너무 좋아서 음악의 신에게 고맙다고 안아주고 싶다는 가사였다. 노래를 들으며 생각했다. 우리에게 의무가 있다면 뭔가를 좋아하는 일이 아닐까? 무언가 좋아하는 감정은 상상 만으로 기특하고, 잘 찾아오지 않아 소중하지 않나?


오늘 아침엔 출근길에 '음악의 신'을 들어야지 하면서 일어났다. 힘든 시절을 지나는 우리에게 세븐틴 음악 같은 존재가 있으면 좋겠다. 김현아 작가의 말처럼, 인생은 잔혹하고 우리는 이미 지는 패를 쥐고 있을 때가 많지만, 그래도 life goes on. 각자에게 숨 같은 존재를 찾고 지금을 살아냈으면 좋겠다. 쓰고 보니 나에게 가장 하고 싶은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근육녀가 될테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