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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노 Dec 22. 2021

근육녀가 될테야

운동하는 여자


제목과 표지가 맘에 들어서 바로 집어 들었다. 표지의 저 삼 등신 여성, 내가 운동할 때 저런 모습이 아닐까 싶어서 감정이입이 막 된다ㅎ


필라테스를 시작한 지도 10개월이 지나간다. 운동이 취미이자 일상이 되는 바람 같은 건 결코 없었다. 그런데 점점 그렇게 돼 간다고 느낀다.


질질 끌려가던 발걸음이 어느 날부턴가 빨라지고, 오늘은 어떤 운동을 할지 기대되기도 한다. 회사에서 의자에 앉을 때 배에 힘을 주고 다리를 적당히 벌리고 발바닥이 안정적으로 바닥에 닿도록 자세를 잡는다. 버스 정류장에 서 있을 때도 배에 힘을 주고 갈비뼈를 내리고 날개뼈를 가운데로 모으면서 서려고 의식한다. 게다가 배운 동작을 집에서 연습하기도 한다. 이런 자발적인 변화가 마치 라잌 덕질처럼 조용히 내 삶에 들어와서 어느새 일상이 되어 버렸다. 헐 운동 가기 싫다고 여기서 징징댄 게 얼마 전 일인데 신기하도다!!


가장 중요한 건, 내 몸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한 번도 내 몸을 돌아본 적이 없었다. 맘에 든 적도 없었다. 그저 마른 채라면 좋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건강한 몸을 만들고 싶다. 그리고 내 몸에서 맘에 드는 부분을 발견했다. 바로 쇄골. 살이 찌고 나니 쇄골이 너무 소중해졌다. 아직 남아있는 쇄골 라인은 꼭 지켜내고 싶다. 방법은 모르겠다. 제발 남아줘...


부들부들한 살덩어리 말고 근육을 만들고 싶다. 살집이 좀 있어도 좋고 실루엣이 가냘프지 않아도 좋다. 길고 길 레이스에 발을 담근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제야 운동에 조금은 미쳤던 이유를 생각해본다. 나는 크로스피터들의 직업군으로 꼽히는 경찰이나 군인, 소방관이 아니다. 체력을 기르면 좋지만 그렇게까지 절실하지 않다. 나에게는 꾸준한 시간을 갖고 노력하면 조금씩 나아진다는 것을 알게 해 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움직이는 방법을 터득하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너무나 오랜만에 오감으로, 성장을 느꼈다는 것이다. 그토록 원했던 성장의 고양감을 내가 가장 자신 없어하던 운동에서 찾은 것은 무척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p43-44)


말하자면 우리는 단 한 번도 도와달라고 크게 소리치는 연습을 해본 적이 없다. 주먹을 휘두르거나 목을 조르는 남자의 팔을 어떻게 부러뜨리는지 배우지 못했고 가해자의 손에 들린 칼을 보고 얼어붙지 않는 법도 배우지 못했다. 요컨대 여성은 싸움을 모르고 싸우는 방법을 모른다. 그것이 여성성의 영역이 아니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여자에게 싸움은 너무 과격하다는 편견 때문에, 다칠지도 모른다는 얄팍한 배려 덕분에, 싸움을 모르는 존재로 길들여진 것이다. 그 결과 일부 여성들은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는 것은 정답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 말은 마치 사칙연산은 모르지만 함수를 풀겠다는 말처럼 들린다. 폭력을 알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것인가? (p83-84)


이 방면에 크게 관심이 없던 여성들까지 자신의 몸에 의문을 갖는다. 내 몸은 매력적인가? 얼마나 섹시한가? 충분히 말랐는가? 여기까지 도달하면 '뭐라도 해야 할 것은 분위기'에 휩쓸리는 것은 순식간이다. 인생 화보까지는 넘보지 못해도 탄수화물이라도 끊어야 하는 게 아닌가 죄책감이 든다. (p186-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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