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를 보러 고개를 숙이는 순간 지옥을 경험했다. 비명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아팠다. 목이 조금 불편하네. 언제 삐끗했지? 정도의 기분으로 주말을 보내고 출근한 참이었다. 머리통 무게가 버겁게 느껴지면서 고개가 왼쪽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점심시간에 목을 부여잡고 병원에 갔으나 진료를 받지 못했다. 오전 진료 접수가 끝났다고 했다. "너무 아파서 그런데요. 접수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 최대한 불쌍하게 말해봤지만 안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임시방편으로 약국에서 목 보호대를 샀다. 그걸 차고 걸으니 너무 환자 같아 보였다. 그래도 덕분에 살 것 같았다.
허리 디스크 수술 경험이 있는 동생이 당장 병원에 가라고 닦달을 해서 많이 쫄았는데, 엑스레이 결과 디스크는 아니었다. 목에 커브가 없어진 상태라면서 의사는 주사 치료를 권했다.
간호사들은 나를 엎어두고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시술대를 올렸다 내렸다 했다. 마스크를 쓴 상태에서 도넛 모양의 베개에 이마를 붙이고 캄캄한 작은 구멍을 마주하니 폐쇄 공포증이 몰려왔다. 심장이 뛰면서 불안해졌다. 병원에 온 게 후회됐다. 어릴 때 나는 주삿바늘을 뽑고 도망가는 아이였다고 한다.
"잠깐만요, 주사 많이 아픈가요?" 엎드린 채 뭉개진 발음으로 다급히 물었다. 간호사는 일반 주사보다 약간 더 아픈 정도라고 말했다. 어른이면 누구나 이 정도는 맞잖아요 라는 뉘앙스였다. 나는 어른이지만 일반적인 어른은 아니라고요. 특급 겁쟁이를 위한 주사는 없나요. 묻고 싶었다. "한방만 맞는 거죠?" 여섯 방을 맞아야 한다고 했다. 주사의 순간은 미뤄도 다가왔다. 뒷목에 여섯 개의 구멍이 생겼다. 약간 굵은 침을 꽂고 툭툭 쳐 빼낸 느낌이었다. 넣는 순간에도 빼는 순간에도 무서워서 바들거렸다. "제자리에 약이 잘 들어갔네요" 의사의 말을 듣고 나서야 긴장이 풀렸다.
다음날 출근길 버스 안에서 '아무튼 반려병'을 읽었다.
관절이 지리무리해요 다리가 뻑적지근해요 손 마디마디가 우리우리해요 아랫배가 찌르르하네요 '아무튼 반려병' 49p
사랑에 빠진 연인들이 자기들끼리만 알아듣는 은어를 만드는 것처럼 통증을 설명하는 은어를 의사와 주고받으며 아픔을 차별화한다는 구절이 있었다. 나는 지금 목 관절이 뻑적지근하다. 손목 관절이 찌르르하다. 오케이? 이런 생각을 하며 목 보호대를 차고 이 책을 읽는 스스로가 웃프게 느껴졌다.
출산한 뒤로 손목 통증이 주기적으로 찾아온다. 사무직 인간들의 필수템 어깨 통증도 빠질 수 없다. 20대부터 먹고 있는 편두통 약과, 비정기적으로 먹는 우울증 약까지 떠올리자 웃픈 게 아니라 좀 슬퍼졌다. 나는 동지를 찾아 카톡을 보냈다. '골골대는 인간들 모여라~' 친한 선배에게 답이 왔다. '지난 금요일부터 잇몸 염증에 중이염까지 와서 귀가 욱신거려. 토요일엔 최악으로 아팠다. 좀 나아보겠다고 괜히 걸었다가 종아리에 알 뺀다고 더 아팠음.' 동생에게 답이 왔다. '코에 농이 차서 빼러 가야 돼. 우리가 팔팔할 날이 올까?'
나는 버스 안에서 찰칵 소리를 내며 셀카를 찍어 골골이들에게 전송했다. 이걸 설명하겠다고 셀카까지 찍는 내 모습에 웃픈 기분이 돌아왔다. "목 보호대 찬 주제에 아무튼 반려병이라는 책 읽으며 출근 중. 어제 무슨 일이 있었냐면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