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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스님의 낡은 고무신을 보며 부끄러워졌습니다.

by 모두쌤

불일암 국수.

우연히 유튜브를 보다 어떤 스님들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스님 두 분이서 국수를 손수 만들어서 먹는 장면이었습니다. 정말 맛이 있을까 싶은 국수였습니다. 재료라고는 채소 몇 가지와 간장으로 간을 너무나도 간단한 국수였습니다. 이미 세상의 온갖 화학조미료와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 저로서는 쉽게 그 맛이 상상되지 않는 국수였습니다.

덕조스님의 불일암국수(출처:현대불교신문사)
-재료
: 국수, 간장, 매실청, 꿀, 참기름, 깨소금. 채소(선택)

-만드는 법
1. 간장과 물을 1:0.5 비율로 섞어준다.
2. 1에 매실청과 꿀, 참기름을 입맛에 따라 넣고 깨소금과 함께 섞어준다.
3. 삶은 국수를 찬물에 깨끗이 씻어준 후, 물기를 최대한 제거한다.
4. 상추, 치커리, 오이 등 자연 재료를 먹기 좋게 잘라준다.
5. 국수에 간장양념, 채소를 원하는 만큼 넣고 잘 섞어준다

출처 : 현대불교(http://www.hyunbulnews.com)


'과연 저 국수가 맛이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계속 상을 보다 보니, 그 스님들은 '불일암(법정스님이 17년간 머무르셨고, 화장 후 스님의 재는 이곳 꽃밭에 뿌려졌습니다)'에서 수도를 하고 계신 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법정스님의 제자들이는 것도 말이죠. 정말 맛있게 국수를 드셨습니다.


낡은 고무신.

영상을 보다 보니 그 스님들이 벗어놓은 고무신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이 고무신이 너무나 낡았습니다. 게다가 몇 번이고 꿰맨 자국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시대에 고무신을 신고 있는 것도 신기한데, 낡은 고무신을 꿰매어 신기까지 하다니! 정말이지 저는 그 순간 많은 생각들이 밀려왔습니다.

출처:EBS방방곡곡
무소유.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궁색한 빈털터리가 되는 것이 아니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산에는 꽃이 피네', 법정스님)


사진출처:나무위키


법정스님.

우리에게는 무소유로 널리 알려진 스님입니다. 그분의 삶 자체가 우리 사회에 큰 가르침을 주었지요. 2010년 그분이 열반에 드시고 훌쩍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지금도 무소유라는 깊은 울림을 남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의 삶 역시도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역시 그 스승의 그 제자라는 말이 절로 떠랐습니다.


사진출처:EBS

스승과 제자.

입적하신 스승인 법정스님과 그 가르침을 그리워하고, 스승의 발자취를 따르려고 애쓰는 모습에 진한 감동이 있었습니다. 정진하고 있는 스님들의 무심코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 다소곳하게 놓여있는 낡은 고무신 두 짝, 너무나 심심해 보이는 국수 한 그릇에 법정스님의 마음과 그를 따르는 제자분들의 마음이 그래도 드러나는 것이었습니다. 단순히 제자가 따르던 스승을 그리워하고 아쉬워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수행자로서 동행했던 삶 자체를 의미 있게 지켜나가고 있는 것이죠. 세월의 흐름에 따라 먼저 가고 나중 가는 것의 차이는 있겠지만, '해탈'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정진하여 나아가는 수행자로서의 모습은 스승이나 제자나 여전히 진한 여운을 남깁니다.



불필요한 것들.

오늘 문득 제가 가진 것들을 헤아려 봅니다.

나름 머리를 굴리며 재테크다 절약이다 장만했던 집, 아이들 학원 픽업용으로 주로 사용했던 자동차, 다 입지도 읽지도 못하면 늘 이사 갈 때 면 버리지 못해 주섬주섬 다시 챙겼던 책들과 옷가지며 신발들, 아이들의 각종 장난감, 그리고 미쳐 버리기 아쉬운 다양한 전자기기며 낡은 컴퓨터, 이미 해지하여 기능을 알 수 없는 오래된 휴대폰들, 냉장고와 창고에 그대로 쌓아두고 있는 음식물과 재료들까지. 아무 생각 없이 헤아려보는데도 그 가짓수와 종류가 생각보다 상당함을 느낍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인생을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 짊어지고 갈 것도 아닌 것들을... 겨울에 동면하는 다람쥐도 아닌데 뭐가 늘 불안하고 두려워서 그랬는지 늘 버리지 못하고 제 주변에 정성껏 차곡차곡 쌓아두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영원히 제 것은 아니겠지요?

살고 있는 집, 자동차, 책과 옷가지와 신발들, 아이들 장난감, 전자기기, 핸드폰 등. 어쩌면 당장 한 달 후 팔릴 수도 있고 분리수거가 되어버릴지도 모르는 것들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나니 새삼 제 욕심이 부끄러워집니다. 계절마다 갈아입을 수 있는 옷들이 옷장에 가득하고, 다 먹지도 못할 음식들과 재료들이 냉장고에 넘쳐납니다. 언젠가 때가 되면 떠나야 하고, 버려야 하고, 두고 가야 하는 것들이었는데, 이런 물건들에 늘 밤잠을 설치며 하나라도 더 갖고자 욕심부리며 안달복달했습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인생인가요?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

감히 제가 무소유라는 깊은 뜻을 다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스님의 말씀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저녁에 마트에 가면 1+1에 눈길이 가고, 인터넷 쇼핑 사이트에서 50% 할인이라는 말에 솔깃해서 충동구매를 하곤, 결국 유통기한이 넘어 써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버리곤 했던 저로서는 말입니다. 필요한가 필요하지 않은가의 문제는 결국 개인의 선택이겠지만, 아무리 풍족해도 더 필요하다고 느끼는 저와 같은 사람들은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스님의 큰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무소유라는 책의 초판본의 가격이 매년 솟구치는 것을 봅니다. '무소유'를 '소유'하고 싶은 사람들의 욕심 때문이겠지요? 우리 인간의 욕심은 어쩔 수 없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러한 현상을 받아들이는 것도 역시 남아 있는 우리의 몫일 것입니다.


너무나 불필요한 많이 가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부끄러워지는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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