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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돌프야, 너는 잘 있지?

어린 시절 나의 루돌프가 지금도 잘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by 모두쌤

"이게 뭐예요?"

"아, 이건 루돌프야, 사슴이야, 순록인가?"

"수수... 술록이 뭐예요?"

"음... 좀 큰 사슴? 산타 할아버지랑 같아 다녀"

"산타할아버지는 뭐예요?"

"음...."


루돌프와 썰매.

지난 크리스마스 즈음입니다. 둘째가 다니고 있는 어린이집 입구에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와 루돌프와 썰매가 설치되었습니다. 저녁 무렵에는 이 크리스마스트리, 루돌프와 썰매에 LED로 장식한 부분에 환하게 들어와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나곤 했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일을 마치고 퇴근 시간에 어린이 집에 들러 둘째를 데리고 나올 때면 둘째와 함께 환하게 불이 들어와 있는 루돌프와 썰매를 지켜보기도 하고 살짝 만져보기도 했습니다.


물론 둘째에게는 루돌프가 누군지, 산타할아버지가 누군지, 왜 선물을 주는지, 왜 착한 일을 해야 하는지 설명해주어야 했습니다. 문득, 오래전 첫째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며 크리스마스 때 설명해 주었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설명하다가 혹시라도 산타할아버지는 실제로는 아빠나 엄마일 수도 있다는 등의 동심을 파괴하는 말실수(?) 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말이죠.


사진출처 : 나무위키
루돌프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39년, 미국 백화점 광고부에 근무하던 로버트 메이(Robert L. May)라는 직원이 만든 동화이다. 2003년 12월 6일 자 KBS2 프로그램인 스펀지에서 이야기의 실제 주인공인 로버트 메이의 딸 바바라 메이(Barbara May)를 만나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그녀의 회상에 따르면 바바라가 어렸을 무렵 바바라의 어머니인 에블린 메이는 암에 걸려 있어서 투병을 위해 늘 집에만 있어야 했는데, 바바라는 몸이 아픈 엄마 에블린이 다른 집의 엄마들과 다르다며 슬퍼했다고 한다. 이 모습을 본 아버지 로버트가 가족들을 위하여 지은 이야기가 바로 루돌프동화였다. (출처:나무위키)


나중에 만들어 루돌프 이야기.

루돌프의 이야기는 나중에 만들어진 동화라는 이야기에 저도 살짝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는 늘 산타 할아버지와 루돌프는 아주 옛날부터 한 세트로 알고 있었거든요. 그러고 보니 우리가 알고 있는 동화 속의 많은 이야기들이 실제로는 사실이 아닐 수도 있고 시간이 훨씬 지난 후대에 어떤 의도에 의하여 만들어진 이야기일 수 있다 합니다.


산업혁명 시기의 성냥팔이 소녀 이야기는 일견 아름다운 동화 속의 안타까운 이야기 정도로 이해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당시의 열악한 성냥공장의 여공들의 비참한 삶을 그린 이야기입니다. 정말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낮은 급여와 공장에서 발생하는 각종 오염물질로 인해 얻게 되는 직업병과 관련된 이야기죠. 그리고 직장에서 강제로 쫓겨나고 퇴직금조로 성냥만 받아 나올 수 밖에 없어 길거리에서 그 성냥을 팔아야만 했던 시대의 잔인한 상황 등이 그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당시 굴뚝을 청소했던 3~5세의 어린아이들의 이야기와도 맥을 같이합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주변의 익숙한 동화 속의 이야기들이 어쩌면 상업주의나 물질문명의 이기심에 의하여 탄생되었다고 생각을 하니 씁쓸해집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가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됩니다. 또한, 이런 이야기들을 우리 자녀들에게 계속 들려주어야 하나 하는 현타가 오기도 합니다.


Stratton, Illustration of Little Match Girl (1899)

루돌프 이야기.

루돌프 사슴 이야기는 투병 생활을 하고 있는 엄마와 가족을 위하여 그 가정의 아빠가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현실의 어려움을 꿈과 희망이 있는 이야기로 탄생시킨 것이죠. 그러다 아이를 위해 만들어준 이야기를 들은 엄마의 권유로 아빠가 이 이야기를 잡지사에 기고했고, 이야기가 큰 성공을 거두며 나중에는 관련된 노래까지 빌보드 차트에서 1위를 했다(출처 : 나무위키)고 합니다. 그러니 비참한 현실을 기반으로 했던 기존의 동화보다는 좀 더 따뜻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권선징악이라는 결말로 뻔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이 이야기가 만들어진 과정을 알게 되니 좀 더 친근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도 이런 따뜻한 스토리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사진출처 : https://popculture.com/tv-shows/news/rudolph-the-red-nosed-reindeer-not-airing-on-cbs-after-5

착한 일을 하면은.

대부분의 동화를 보면 착한 일을 하면 아무리 어렵고 힘겹더라도 나중에 꼭 좋은 일일 생기고, 나쁜 일을 하면 지금은 아무리 좋아 보이더라도 그 대가를 치른다고 하는 교훈을 줍니다. 간혹 동화책의 앞부분을 읽고 있자면 그 결론이 이미 눈에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지금의 많은 동화들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결말을 뒤집기도 하고,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주인공을 낯설게 하며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고 있습니. 착한 주인공이 사실은 나쁜 사람이었다거나 악당이 사실은 아주 인간적인 사람이었다라든지 말입니다. 요즘 나오고 있는 위키드(Wicked)와 같이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를 '낯설게 보기', '뒤집어보기'등을 통해서 말이죠.


그래도 저는 가장 단순한 결론, 가장 뻔한 결론에 안도합니다. 그게 어수선한, 너무나 복잡한 지금 세상을 사는 우리 인간의 마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마치 여행지에 가서 온갖 맛있는 음식을 먹고, 럭셔리한 침대에서 잠을 자더라도 결국 집으로 돌아와 엄마가 해준 밥을 먹고, 낡은 내 침대의 낡은 이부자리에서 편하게 숙면을 취하며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도로시처럼 "역시 집이 최고야!"를 외치는 것과 같이 말입니다. 저는 동화 속의 이야기가 그래도 착한 사람은 좀 좋게, 나쁜 사람을 벌을 받아야 마음이 편해집니다. 어쩌면, 제가 살아오는 동안 받았던 교육, 사회적 선입견이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위키드 2.jpg 사칠출처 : https://www.eland.co.kr/mgzn/viewMgzn?mgznIdx=1007


동화는 영원히 동화로.

어린이 집에서 반짝이는 루돌프와 썰매, 산타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다양화되고, 가치관이 변화하는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우리들이 기억 저편 동화 속의 아름다운 이야기들은 영원히 아름다운 동화로 남았으면 합니다. 제가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들었던 동화 속의 이야기를 첫째와 둘째에게 들려주었던 것처럼, 나중에 우리 첫째와 둘째가 자라 그들의 자녀들에게 또 들려주고 하면서 계속 이어 줄 수 있도록 말이죠.


그래서 나의 어머니와 루돌프가 나의 루돌프가 되고, 나의 루돌프가 우리 첫째와 둘째의 루돌프가 될 수 있도록 말이죠. 저의 어머니, 저 그리고 제 아이들은 앞으로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더 서로 다른 공간, 다른 시간을 살아갈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루돌프 같은 동화 속의 이야기 하나로 같은 추억, 같은 감동, 그리고 같은 따스함을 느꼈으면 합니다. 지금 우리 둘째의 손 아래 빛나고 있는 루돌프의 불빛어럼 말이죠.



어릴 적 나의 루돌프가 언제까지나 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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