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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도록 Aug 27. 2021

너 비건 맛 좀 볼래?

나의 일주일 비거니즘 일기


'일주일' 정도면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나 이제부터 비건 할 거야’라는 말은 수없이 했지만

정작 고기 없이는 밥도 잘 먹지 않던 내가 일주일 동안 비건이 되어보았다.

[주의 :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솔직할 수 있음]





D-1 원래 소풍 가기 전 날이 더 설레는 법


내일이 비건 첫날이라니! 설레는 마음을 안고 동네 마트에 가서 정갈하게 손질된 고사리와 싱싱한 자두, 귀여운 양송이버섯을 골랐다. 별로 산 건 없지만, 재료 하나하나에 수식어를 붙여주고 싶을 만큼 들떴다. 내일 아침은 직접 만들어 먹으려고 새벽 4시로 알람도 맞췄다. 두근두근, 드디어 시작이다.





사진 출처 : 노브랜드


Day1 (비건으로 생긴 버릇


띠리링.... 띠리링.... 일찍 일어나는 새가 더 피곤하다. 막상 새벽에 일어나니 전날의 해맑음은 금세 사라지고 그냥 다시 자고 싶었다. 잠시 과거의 나를 원망하고 부엌으로 갔다. 비건 첫 끼는 ‘비빔-밥’으로 정했다. 조리법은 간단했다. 먼저 냉장고에서 고사리와 양송이버섯을 꺼내 볶았다. 그리고 따뜻한 밥 위에 얹었다. 마지막으로 엄마가 직접 만든 쌈장을 넣고 비볐다. 끝. 뭐 살면서 한 번쯤 먹어본, 예상할 수 있는 맛이었다. 후식으로 상큼하고 달달한 자두도 먹었다. ‘오호, 꽤 괜찮은 시작인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 버릇이 생겼다. 원래 제품 앞면과 가격만 봤는데 이제는 뒷면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처음으로 영양 성분표를 정독하기 시작한 것이다. 비건처럼 보이는 식품을 집어 들고 뒤집어서 ‘계란, 우유 함유’ 표시를 보곤 다시 제자리에 놓는 걸 반복한다. 기대와 실망의 연속이다. ‘그래도 이건 비건이지 않을까?’하며. 혹시 나와 비슷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보인다면 따뜻한 눈빛을 보내줄 거다.


두 번째 버릇은 음식 앞에 ‘비건’을 붙여 검색하는 것이다. 이날은 하루 종일 달달한 게 당겨서 ‘비건 과자’를 검색해봤다. 인터넷으로 사야 하는 건가 걱정했는데, '노브랜드'에서 비건 과자를 살 수 있었다. 리스트를 핸드폰에 옮겨 적고 퇴근 후 곧장 노브랜드로 달려갔다. 비건도 ‘불량’해질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해하며 비건 과자를 하나씩 집어 들고 집에 왔다. 인절미 과자는 고소했고, 쿠키는 바삭했으며, 초콜릿은 꾸덕꾸덕했다.






Day2 (비빔면과 술의 진실


둘째 날 점심이자 나의 두 번째 비건 요리인 월남쌈은 놀랍도록 아무런 맛이 나지 않았다. 두부와 채소를 넣고 만들었는데, 소금을 거의 넣지 않은 탓에 정말 無 맛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쌈무랑 같이 먹으니 그나마 괜찮았다!는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다... 맛없는 건 맛이 없다고 하겠다. 고생해서 만들었는데 맛이 없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그래서인지 술이 먹고 싶어졌다. (맞다. 핑계다.) '에이. 맥주는 당연히 비건 식품이겠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난 어느새 ‘맥주는 비건인가요?’를 검색하고 있었다. 맥주의 성분은 비건인데 양조 과정에 부레 풀(물고기의 공기주머니)이 들어가서 논비건인 제품이 많다고 한다. 그래도 비건인 맥주는 카스, 버드와이저 등 편의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어 다행이다. 이제까지 성분만 비건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제조 과정까지 보다니, 비건 하는 사람들이 더 멋져 보였다. 


맥주를 생각하니 집구석에 쓸쓸히 있던 비빔면이 아른거렸다. (맞다. 이것도 핑계다.) 팀원분께 비빔면이 먹고 싶다고 했더니, 검색해 보시고 비빔면도 먹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비빔면에 들어가는 '팜유'가 식물성 재료라서 괜찮다고 한다. 비빔면을 먹을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도 혹시 몰라 좀 더 자세히 찾아봤는데 '팜유'가 환경을 파괴해서 환경을 생각하는 비건들이 지양한다고 적혀 있었다. 팜유 녀석... 너 때문에 내 팔도 물 건너갔다.


음식에 ‘비건’을 붙여 검색해보니, 여러 이유로 먹지 못하는 것이 많아졌다. 하지만 제조과정에서 부레 풀을 빼기로 한 ‘기네스’, 작년 출시한 비건 비빔면인 ‘정 비빔면’처럼 비건인 사람들 덕분에 비건 식품들이 계속해서 출시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Day3 (이름만 바꿔서 다시 나타난 그 사람


'유부'를 사용해 보기로 했다. 맨날 볶음밥, 주먹밥만 먹으니까 '비건 하는 사람들은 이런 것밖에 못 먹나’와 같은 고정관념을 내가 심어주는 것 같지만, 굴하지 않고 유부 주먹밥을 만들었다. 남은 밥은 엄마랑 아빠가 먹었는데 아주 맛있었다고 했다. 가족들과 함께 살아서 내가 비건 음식을 먹으면 가족들도 따라서 먹게 된다. 그 점을 생각지도 못했는데 꽤 좋았다. 푸릇푸릇 한 채소들도 잔뜩 사서 만들어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참에 엄마가 채소 장을 봐왔다. 텔레파시가 통했나 보다. 비건은 사람을 설레게 한다.


집에 가는 길에 간식을 사러 올리브 영에 들렀다. 과자를 고르려고 뒷면을 봤는데 '팜 올레인 유'라고 적혀있었다. 뭔가 쎄해서 검색해보니까 이 녀석도 팜유랑 거의 똑같은 애였다. 풀네임으로 적어서 사람 헷갈리게 하네. 조심하자 팜유, 팜 올레인 유! 싫어하던 친구가 개명해서 다시 나타난 기분이었다. 결국, 말린 망고와 고구마를 사서 먹었다. 달달한 걸 먹으니까 충전이 된다.






Day4 () 'ㅇㅇ' 없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우유, 고기, 계란 없는 세상에서 살아남기'를 찍는 것 같다. 언니의 정보에 따르면 '바그다드'에서 비건 카레를 판다고 한다. 계란, 우유도 사용하지 않는다는 말이 이렇게까지 아름다운 말이었다니, 비건을 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감정들을 느끼고 있다. 집에 가는 길, 식당에 전화해서 카레와 밥을 포장했다. 2시간 동안 이동했는데도 따뜻한 상태라 돌리지 않고 바로 먹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카레와 달리 국물이 없었다. 밥과 함께 비벼 먹으니 색다르고 환상적인 맛이 났다. 내가 비건을 하지 않았다면 이런 카레를 먹어볼 수 있었을까?


솔직히 말해서, 비건을 시작하니까 시야가 좁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원래 먹던 것들에서 우유, 계란, 고기를 제외한 음식만 먹을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비건을 시작하면서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성분표를 보게 되었고, 검색해 보면서 환경에 관심도 갖게 되었다. 오늘처럼 몰랐던 비건 음식점의 맛있는 비건 음식도 먹을 수 있게 되다니. 다른 쪽으로 시야가 넓어진 느낌이다.





사진 출처 : 롯데리아



Day5 () 비건 패스트푸드


'이거 비건이에요?' 팀원분의 탄산수를 한 입 마시고 나서 물어본 말이다. 다시 생각해 봐도 어이가 없다. 내가 이렇게 조심성이 있는 사람이었다니. 비건을 시작하고 나서 모든 먹거리에 신중해졌다.


점심으로는 편의점에서 밤 100%인 맛밤과 아몬드 브리즈를 먹었다. 먹어 본 적은 없지만 밤 셰이크를 먹는 듯 적당히 달달하고 고소했다. 요즘은 성분에100%가 있는 게 좋다. 뭐든지 확실한 게 최고다.


쉬는 시간에 언니랑 통화를 하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바로 비건 햄버거가 있다는 사실! 롯데리아에 '리아 미라클 버거'라는 비건 버거가 있다니, 정말 이름처럼 기적이었다. 집에 돌아와서 포장해온 리아 미라클 버거를 먹었다. 감자튀김 소스는 비건이 아닌 경우가 있다고 해서 먹지 않았다. 급하게 먹느라 사진이 흐릿하게 나왔다. '콩고기'를 처음 먹어 보는데 원래 패티보다 담백했고 식감도 좋았다. 한마디로, 맛있는 햄버거 맛이었다. 내가 먹는 걸 보고 있던 아빠가 옆에서 한입 뺏어 먹고는 맛있다고 했다.







Day6 (가지가지 하네


드디어 주말이다. 주말에는 시간이 널찍하다. 즉 '요리'를 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유튜브에서 비건 요리를 검색해보다가 가지를 사서 요리해 먹기로 했다. 평소에 가지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가지를 생각하면 급식소에서 먹었던 물컹물컹하고 맛없는 가지가 자꾸 생각나서 그렇다. 그래도 가지 요리가 맛있다고 하니, 한 번 도전해봤다.


가지로 '가지 갈비 덮밥'을 해먹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일주일 비건 실천기에서 먹었던 음식 중에 제일 맛있었다. 만드는 방법도 간단하고 쉽다. 가지에 간장, 설탕, 대파, 마늘, 참기름, 깨소금 등으로 양념장을 만들고 가지를 썰어서 10분 동안 양념에 담가 놓은 다음, 프라이팬에 구워서 먹으면 된다. 여기서 팁이 있다면 불 맛을 살리고 빠삭하게 구우면 여기가 집인지 '중국집'인지 헷갈릴만한 냄새와 맛이 난다.


가지 덮밥과 함께 라이스페이퍼로 ‘김말이’를 만들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김말이를 비건 음식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게 행복했다. 우엉과 단무지까지 썰어서 반찬으로 먹으니까 단짠단짠 맛있다. 행복이란 건 이런 것일까.







Day7(일) 아마 다시비건 어게인


라이스페이퍼 만능설. 월남쌈, 김말이가 끝이 아니다. 라이스페이퍼로 시작해서 라이스페이퍼로 끝났다. 내가 무척 좋아하는 떡볶이의 떡 대신 넣어 먹었는데 처참히 실패했다. 설탕을 많이 넣어 망쳐버렸다.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라이스페이퍼로 김부각을 만들었다. 간단하게 라이스페이퍼에 김을 붙이고 기다리기만 하면 끝이다. 말리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니 여유를 가지고 만들기를 추천한다. 김부각과 함께 라이스페이퍼를 잘라서 같이 튀겨 먹으니까 고소하고 바삭바삭했다. 3초 만에 꽃이 피듯 튀겨지는 재미도 쏠쏠했다. 두부로 만든 콩소스에 찍어서 먹으니, ‘윤 스테이’에 온 것처럼 나른하고 행복했다. 길고양이가 노려볼 만큼 맛있었던 것 같다.


저녁에는 다시 가지 덮밥을 만들어 먹었다. 어제 먹었던 맛을 차마 잊지 못했다. 역시 맛있었다. 엄마가 나 덕분에 생전 못 먹어봤던 요리를 다 먹어본다고 즐거워했다.


"비건 몇 주 프로젝트야? 계속해. 좋다 이거."

아마 머지않아 곧, 비건 식을 다시 시작할 것 같다. 나를 위해, 모두를 위해.






D+1 조금씩, 천천히


비건 일주일 실천기를 하면서 늘 이날만을 기다려왔다. 그런데 막상 끝나고 나니까 이상하게 그렇게까지 고기를 먹고 싶지 않았다. 수능 끝나면 열심히 놀려고 계획했는데 막상 끝나니까 하루 종일 가만히 누워있기만 하는 기분이었다.


앞으로 비건 지향을 하며 살 수 있을까? 일주일 동안 직접 겪어 본 결과,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비건을 하고 싶은 이유로는, 생각보다 맛있는 비건 음식이 너무 많다는 것이 의외로 크게 한몫했던 것 같다. 앞으로도 많이 찾아다니고 먹어봐야겠다.


물론 바쁜 일상 속에서 뭐가 들어갔는지 찾아보며 비건을 하기에는 쉽지 않다. 그러니, 일주일 비건 실천으로 시작해서 그다음엔 일주일에 하루 비건, 하루 한 끼 비건 등 자신에게 맞는 방법으로 비건에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해보는 게 좋을 듯하다.


일주일 동안 완전한 비건식을 했는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노력한 나 자신에게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다음에 또 하게 된다면 환경을 위해 비건을 한 거니까 되도록 배달 음식을 먹지 말고, 쓰레기를 많이 만들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마지막으로 비건에 대한 정보를 알고 싶은 사람에게 '비건 일주일 체험'을 강력 추천한다. 성분표를 보고 잘 모르는 게 있으면 먹고 싶으니까 본능적으로 검색하게 되고, 비건에 대한 정보와 지식들이 저절로 차곡차곡 쌓이게 된다. 먹을 거에 진심인 사람들은 더 뼈저리게 느낄 수 있으니, 당장은 아니더라도 내일부터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에디터 김지후

포토그래퍼 문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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