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소리 모으기 8. 시간이라는 자원
시간이 없다.
내가 버릇처럼 입에 달고 사는 말이다. 무언가를 하려 할 때도 시계를 보며 시간이 없어서 못하겠다고 불평하는 건 내 일과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이런 버릇을 비단 나 혼자 갖고 있는 건 아닐 터다.
오늘 날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이들 중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내 주변만 보아도 ‘돈이 없어서.’라는 이유보다 ‘시간이 없어서.’라는 이유로 무언가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우리는 좋은 직장을 갖거나 투자를 하는 등으로 자산을 늘릴 수 있다. 꾸준한 운동과 적절한 식습관으로 건강을 호전시킬 수 있다. 더 많은 대화와 교류를 통해 타인과의 관계를 진전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주어진 하루의 24시간에 단 1초조차도 추가할 수 없다.
그 무슨 수를 써도 시간은 바꿀 수 없다. 우리가 눈을 깜빡이는 찰나의 순간 조차도 0.2초라는 수치로 환산할 수 있을 만큼 시간의 흐름은 결코 막을 수 없는 존재다. 열역학 법칙은 이 시간의 흐름이 일방통행이며 결코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우리는, 그리고 모든 존재는 이 시간이라는 것에 예속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시간이 부족하다는 건 현대인에게 고질병과도 같다. 현대 한국인의 대다수는 한주에 5일, 8~9시간의 근무를 하며 살아간다. 수면 시간을 제외한다면 자신이 지닌 시간의 과반수를 노동에 사용하는 셈이다. 이 근무를 위한 출퇴근과 준비 시간까지 합하면 그보다 더할 것이다. 온전히 자신의 의지로 가용할 수 있는 시간이라곤 3~4시간 내외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한 가지 아이러니한 점이 있다. 사회적으로 보면 과거에 비하면 오늘의 가용시간은 분명히 늘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시간이 부족하다.’는 표현을 사용하는 빈도는 줄어들지 않았다. 대체 왜 그럴까?
나는 이 현상의 원인이 사회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의 사회에서 시간은 하나의 자원이다. 인류가 오랜 기간동안 돈을 통해 가치를 교환했듯이, 현대에는 시간을 통해 가치를 교환하고 있다. 개인은 물론이고 기업과 국가까지, 모두 이 시간이라는 자원을 위해 매일 투쟁을 벌이고 있다.
우리는 지금 시간전쟁 중이다.
‘시간은 돈이다.’(Time is money)라는 격언이 있다.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1706~1790)이 말했다고 전해지는 문구로, 꽤나 널리 퍼지고 흔히 인용되기도 하는 격언이다. 시간과 돈이라는 서로 다른 개념을 동일시할 만큼 사람들은 시간을 매우 귀중한 것으로 여긴다.
그렇다면 실제로 시간의 가치는 어느 정도일까? 시간이라는 자연적 현상을 인위적으로 만든 돈과 일대일 대응시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고맙게도 최저임금이라는 제도의 존재가 이를 어느 정도는 가늠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최저임금제는 근로자가 일정 시간의 노동을 했을 때 얼마만큼의 보수를 주어야 하는지에 대한 최저한도를 정한 법령이다. 각 국가마다 차이는 있으나, 오늘날 많은 국가에서 이와 같은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경우 최저임금법이라는 이름으로 법을 제정, 1988년부터 이를 시행해오고 있다. 최저임금위원회에 따르면 최저임금제를 도입한 목적은 아래와 같다고 한다.
최저임금제도는 근로자에 대하여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하여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향상을 꾀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함
국가에선 근로자가 노동한 시간에 대해, 최저수준의 보상을 보장해야만 한다고 여기고 있다. 노동에 따라 산출된 가치가 아닌, 그를 위해 소모한 시간에 대해서도 보상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이다.
최저임금제가 없었던 과거에도 임금 체계가 일급, 주급, 월급의 시간 단위였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노동 시간에 따른 보상’이라는 도식은 꽤 오랜 시간동안 내려온 전통이라고도 해석해볼 수 있다.
2024년 현재 대한민국의 최저임금은 시간당 9,860원이다. 식당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집 밖에서 식사할 수 있을 정도의 임금이다. 국가에서 보장하는 한 시간에 대한 가치는 대략 한 끼의 식사 정도라고 볼 수 있다.
이 또한 사람마다 차이는 있으나 평균적으로 하루 세끼를 소비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꽤 흥미로운 교환비다. 사람은 세 시간만 일하더라도 자신이 하루 소비할 식량을 확보할 수 있다. 한 시간의 노동은 일용할 양식에 해당하는 가치를 지닌다는 것이다.
최저임금제를 적용하지 않는 일자리라고 해서 시간과 임금의 등치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도 아니다. 정규 노동시간을 벗어나는 초과근무, 즉 야간근무와 휴일근무의 경우 추가적인 임금을 지급하는 것이 하나의 관례이다. 그만큼 사람들은 자신의 시간을 깎아가면서 노동하는 것에 대해 보상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인식하고 있는 셈이다.
이를 보면 우리가 사측에 제공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법도 하다. 흔히들 노동자가 임금을 받는 이유는 노동력을 제공했기 때문으로 여긴다. 노동력을 통해 가치를 만들어내면 회사가 그에 대해 보상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논리에 따르면 우리는 월급과 같은 임금체계가 아닌, 매출에 따른 성과급 지급과 같은 임금체계가 대다수를 차지해야만 할 것이다. 물론 영업직 같은 직무가 아니라면 노동자의 매출 기여를 정량적으로 산출하기 어렵다는 점도 있지만, 영업직이라 할지라도 기본급이 존재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순수히 노동력 제공에 따라 임금을 지급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처럼 실제 노동시장을 살펴보면 노동자가 회사에 제공하는 것은 노동력이 아닌 시간처럼도 보인다. 우리는 회사에 시간을 팔고 있는 것인가?
이 시간가치는 노동의 영역 밖에서도 작동한다. 정확히 말하면 노동 이후 소비의 영역에서 그 가치가 부가된다. 출퇴근 시간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정말 많은 사람과 부대끼게 된다. 그 한정된 공간 속에선 좋든 싫든 다른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 관찰할 수 있게 된다. 오늘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의 대다수, 어쩌면 90%에 달하는 사람들이 그 시간에 스마트폰을 이용하고 있다.
각자 이용하는 어플리케이션과 기능이 다르나 내 개인적 경험으론 유튜브를 시청하는 사람들이 특히나 많았다. 나 역시 유튜브를 이용하는 고객으로서 따분한 이동시간 동안 시청하는 유튜브는 특히나 재밌다는 것에 공감한다.
한 조사에 따르면 2024년 1월 기준, 스마트폰을 통한 한국 유튜브 이용자의 월평균 유튜브 시청시간은 40시간에 달한다고 한다.¹ 산술적으로 계산해보아도 하루에 한 시간 이상은 시청한다는 것이다. 유튜브 어플리케이션의 월간 활성 이용자수는 4450만 명, 거의 전 국민이 시청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만한 시청률을 자랑하는 유튜브는 그만큼 서비스 제공 비용도 어마어마할 것이다. 유튜브를 소유하고 있는 구글은 전 세계에 인터넷 데이터센터를 보유하고 있다. 아시아에는 대만과 싱가포르 두 곳이 있는데, 각자 4만 5천평과 7천 4백평이라는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한다. 이를 유지보수하는데만 하더라도 매달 엄청난 비용이 발생할 것이다.
유튜브는 이 비용을 어떻게 충당할까? 기본적으로 유튜브는 무료 서비스다. 인터넷만 연결된다면 누구나 회원가입도 없이 무료로 동영상을 시청할 수 있다.
당연히 유튜브가 자원봉사 단체는 아니기 때문에, 동영상 시청 시 이용자에게 광고를 노출시킨다. 이 광고비가 유튜브의 주 수입원이다.
하지만 이 광고는 이용자 입장에서는 매우 거슬리는 존재다. 자신이 보고 싶은 동영상을 보기 위해선 다른 광고도 시청해야 하고, 동영상이 재생되던 중간에도 수시로 광고가 나타난다. 이를 없애기 위해선 유튜브가 제공하는 프리미엄 서비스에 가입해야 한다. 이 프리미엄 서비스 역시 유튜브의 수입원이 되고 있다. 2024년 기준 대한민국에서의 유튜브 프리미엄 서비스 이용 비용은 월 14,900원이다.²
한 달에 14,900원이라. 많이 부담되는 가격은 아닐 수 있다. 거기다 유튜브 프리미엄엔 광고 제거 외에도 백그라운드 상영 등 다양한 서비스가 제공된다. 하지만 무료로 이용하는 것과 유료로 이용하는 것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국가별 서비스 이용금액이 다르다는 것이 알려지자 많은 이용자가 더 저렴한 국가로 우회하여 결제한 것을 보면, 소비자가 서비스 비용을 부담스러워 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임에도 굳이 매달 고정비를 지출하면서까지 프리미엄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엔 분명히 무언가의 이유가 있다. 아마 가장 큰 이유는 광고없이 동영상을 시청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광고가 많이 삽입된 동영상이라 할지라도, 동영상의 총 길이에 비하면 광고 시청시간은 1/10도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매달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이 광고를 보지 않고자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동영상을 보는 시간에, 제아무리 짧더라도 내 시간을 허비시키는 광고가 싫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온전히 동영상에 집중할 시간을 보장받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매달 서비스 비용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
이들은 돈으로 시간을 산 것이다. 이는 텔레비전이 발명된 이후부터 꾸준히 이어져 내려온 전통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다.
방송국에 있어 가장 중요한 수치는 시청률이다. 더 많은 사람이 볼수록 더 많은 광고가 붙기 때문이다. 기업은 자신의 제품이 더 많은 시청자에게 노출될 수 있다면 기꺼이 방송국에 광고비를 지급한다. 그 덕분에 사람들이 어떤 프로그램에 열광할수록 광고로 인해 그 프로그램을 더 보기 어려워지는 기현상이 발생한다.
전통적인 매스미디어에서 이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현상이었다. 시청자들은 텔레비전 앞에 앉아 기업이 만든 휘황찬란한 광고들에 오감을 맡겨야만 했다. 마치 이렇게도 말하는 것 같다.
“이 프로그램 정말 재밌죠? 하지만 공짜로 보여줄 순 없습니다. 대신 여러분의 시간을 뺏어가겠습니다. 이 제품 좀 보세요!”
광고는 비단 텔레비전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신문으로 대표되는 언론에도 광고는 필수적인 요소다. 심지어 신문은 돈을 내고 사서 보는데도 불구하고 거대한 이미지로 장식된 광고가 한 면씩은 들어간다. 광고가 없다면 몇천 자의 정보와 소식을 볼 수 있는 그 공간에 말이다.
이 광고의 존재는 언론의 중립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우리 신문에 엄청난 광고비 지급하는 대기업에서 사건이 발생한다면, 과연 우리는 그 사건을 객관적으로 기술할 수 있을까? 제 아무리 한 명의 기자가 열정을 다해 몇천 자의 기사를 작성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고스란히 신문에 실릴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이다.
뉴미디어는 이에 대안을 제시했다. 기존의 매스미디어가 시간을 빼앗던 방식에 대해, 아예 반대의 논리로 접근한 것이다. 이 광고가 지겹고 시간이 아깝다면 돈을 내놓으라고. 시간을 아껴줄 테니 그만큼의 대가를 지불하라는 것이다.
이런 ‘돈으로 시간을 산다.’는 접근법이 최근에 생겨난 것은 아니다. 과거부터 시간을 줄여주는 대가로 더 많은 비용을 청구하는 방식은 존재했다. 가장 직접적인 것은 바로 운송이었다.
무역은 매우 오랜 과거부터 시간과 싸워왔다. 더 많은 물건을 더 빨리 가져오는 것. 이것이 모든 무역상의 제1원칙이었다. 시간을 단축하는 운송 루트의 확보는 국가의 우선 과제 중 하나이기도 했다. 과거 사치품의 대표주자였던 향신료 무역이 이를 보여준다.
오스만 제국으로 인해 실크로드로 불리는 육상 무역로가 막히자, 많은 국가는 해상 무역로에서 해답을 찾기 시작했다. 향신료의 산지인 인도까지의 직항로는 그야말로 노다지와도 같았다.
국왕들이 항로를 확보하기 위해 모험가에게 지원을 해주었던 것도, 빠른 무역을 가장 필요로 한 이가 누구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새로운 항로, 혹은 새로운 대륙을 발견해낸 모험가들은 영웅으로 칭송받으며 오늘날까지도 위인으로 불린다.
이렇게 발견된 아프리카를 돌아가는 희망봉 항로는 수 세기 동안 강대국의 전유물이 되었다. 이집트를 가로지르는 수에즈 운하가 개발되기 전까진 말이다. 복잡한 정치 관계와 막대한 비용이 동반된 끝에 완공된 수에즈 운하는 기존의 아프리카 항로에 소요되던 시간을 절반 가까이 줄였다.
2022년 이집트가 수에즈 운하의 통행료로 벌어들인 수익은 약 94억 달러라고 한다.³ 같은 해 이집트의 국내 총생산(GDP)이 4,767억 달러인 것을 생각해보면, GDP의 2%의 수익이 수에즈 운하 하나에서 나오는 셈이다.
조선업에선 수에즈 운하를 통과할 수 있는 최대 크기의 선박 체급을 일컫는 수에즈막스(Suezmax)라는 용어도 있다. 많은 배가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리라는 가정을 두고 선박을 만드는 것이다. 최근엔 이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배만 노리는 해적이 기승을 부린다고 한다. 많은 선박들이 비싼 비용과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도 수에즈 운하를 이용하는 것은 더 빠른 시간을 요구하는 압력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운하와 같은 너무 큰 스케일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일상에서도 시간을 단축시켜주는 서비스의 존재를 익히 만나 왔다. 특송우편, 고속도로, 고속열차, 쾌속선 등 ‘더 빨리’를 모토로 하는 서비스는 많은 분야에 존재한다. 그리고 이 서비스들은 고객에게 더 많은 비용을 청구한다.
물론 기업들은 말한다. 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에는 추가 비용이 소모되기 때문에 더 비싼 것이라고. 하지만 소비자들은 안다. 자신이 더 비싼 돈을 내면서까지 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유는 시간 때문이라는 것을.
쿠팡으로 대표되는 온라인 커머스 시장에서도, 기업들은 더 빠른 배송 시간을 자신들의 세일즈 포인트로 내세운다. 이제 소비자들은 주문한 다음 날 물품을 받는 것도 만족할 수 없게 되었다. 아예 당일에 받는 서비스까지도 이용하게 되었다. 물론 더 많은 돈을 내면서.
2024년의 오늘은 과거 그 어떤 시기보다도 기술이 발전한 시대이다. 이에 따라 과거에 오래 걸렸던 일들도 오늘날에는 더 짧은 시간에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더군다나 과거에 비하면 우리는 더 많은 가용시간을 지니고 있다.
고용노동부에서 매년 발표하는 『고용형태별근로실태조사』 통계에 따르면, 직장인의 근로시간은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아래 그래프는 매년의 월 기준 총근로시간 평균을 총근로일로 나눈 값을 나타낸 것이다.
그 감소폭이 적긴 하지만, 확실히 해를 거듭할수록 근로시간은 줄어들고 있다. 우리는 과거에 비해 덜 일하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다. 근로시간 감소와 더불어 정보통신기술의 발달, 인프라의 증대, 교통 발전, 소득증대 등 부가적인 요소들이 더해지며 우리는 더 많은 가용시간을 지닐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 말한다. 시간이 부족하다고.
대체 왜 그런 것일까? 하루가 24시간이라는 것은 과거나 현재나 똑같은데 말이다. 우린 단순히 시간이 부족한 것이 아니다. 그 시간에 너무 많은 활동을 하고 있을 뿐이다.
가용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우린 노동 외 시간도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른바 취미 생활이라는 것이 생겨난 것이다. 대부분의 직장인은 퇴근 시간이 되면 무슨 생각을 할까? 업무에 관한 생각도 많겠지만, 많은 이들의 머리 한 편에는 이러한 질문을 떠올리곤 할 것이다.
‘오늘은 퇴근하고 뭐 하지?’
늦은 시간까지 일하고 귀가해 저녁을 먹고 휴식을 취하는 게 전부였던 과거와 달리, 오늘의 직장인들은 퇴근 후 무언가의 다른 활동까지도 고려하는 생활을 살고 있다. 각자 나름의 퇴근 후 계획을 갖고 있으며, 제2의 직장생활과도 같이 정기적인 취미를 즐기기도 한다.
나의 경우도 그러하다. 퇴근 후엔 무조건 무언가의 활동을 하곤 했다. 주 3~4일은 주로 헬스장에서 운동을 했다. 퇴근하고 헬스장에 도착하면 바글바글한 인파 속에서 한 시간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운동에 전념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운동을 하지 않는 날에는 주로 다른 사람들과 만나 식사를 하거나 다른 활동을 하곤 했다. 퇴근하고 곧장 집에 가는 것은 야근을 할 때뿐이었다.
이러한 경향은 비단 나에게만 나타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최근엔 ‘취미부자’라는 용어도 생겼듯이, 하나가 아닌 다수의 취미를 갖는 사람들도 나타나고 있다. 나 역시 그 중 하나다.
옛날에 비하면 취미의 가짓수도 훨씬 많이 늘어났다. 일일이 기재하면 끝도 없을 정도로 과거엔 없었던 다양한 취미가 생겨난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이다. 그리고 그러한 취미 역시 안정적인 산업규모를 지닐 정도로 많은 수요를 확보하고 있다.
당신이 타임머신을 타고 2000년으로 돌아가서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생각해보라.
‘20년만 지나면 인터넷에 동영상을 찍어 올리는 게 직업이 됩니다. 그리고 그걸 전 국민이 보고 수입만 해도 한 달에 몇억을 벌 수 있고요! 덕분에 어린아이들이 선망하는 최고의 직업으로 자리 잡았죠.’
다들 당신보고 미쳤느냐고 욕할 것이다.
내가 이런 여가의 증대를 가장 직접적으로 느끼는 분야가 하나 있다. 게임과 만화, 애니메이션으로 대표되는 서브컬쳐의 분야가 그것이다. 과거만 하더라도 서브컬쳐는 일종의 유아적인 취미로 취급받았다. 나이를 먹고(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라 성인만 되더라도) 이런 서브컬쳐를 즐긴다는 건 철이 없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무슨 바람이 분 것인지 몇 년 전부터 서브컬쳐를 즐기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 취미로 자리 잡았다. 웹툰과 출판만화, e북 만화 산업 규모는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으며, 많은 OTT 서비스에서도 애니메이션에 투자하고 있다.
게임은 말하는 게 입이 아플 정도다. 과거엔 게임을 잘한다는 건 창피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하나의 재능으로 칭송받으며 직업 진로 중 하나가 되었다. 게임 산업은 지금도 커지고 있으며 미래에는 더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게임을 죄악시하던 중장년층조차도 자신이 즐기는 게임을 갖게 되었다.
내가 서브컬쳐에 주목하는 것은 단순히 그 기류가 과거와 달라졌기 때문만이 아니다. 서브컬쳐는 소비자에게 비합리적인 소비를 하도록 유도하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성공적으로 작동하는 산업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서브컬쳐에는 통칭 ‘가챠’(ガチャ )라고 부르는 무작위 요소의 뽑기 시스템이 존재한다. 소비자가 돈을 지불하면 상품을 얻는다는 것은 수천 년간 이어져 온 경제의 기본 원칙이다. 하지만 가챠는 이를 부정하는 시스템이다.
가챠는 운의 요소가 가미되어 소비자가 돈을 지불하면 뽑기 기회를 제공한다. 그 뽑기에서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얻을 확률은 극히 낮다. 어떤 게임들은 심지어 소수점 자리의 확률을 지닐 정도로 악랄한 가챠 시스템을 자랑한다. 익히 알고들 있는 것에 비유하자면 그냥 복권과 같은 것이다.
합리적인 소비자라면 이것에 돈을 쓰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내가 바게트 빵을 먹고 싶어서 빵집에 갔는데, 점원이 5,000원을 내면 무작위로 진열된 빵 중 하나를 주겠다고 제안을 한다. 어느 소비자가 이것을 흔쾌히 받아들이겠는가?
하지만 서브컬쳐를 즐기는 이들은 이 제안에 응한다. 그렇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뽑을 때까지 돈을 지불하고, 몇만 원 정도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게 되면 운이 좋다며 자축한다.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소비다.
그렇지만 오늘날 게임 산업에선 가챠 시스템은 기본 중의 기본인 비즈니스 모델로 자리 잡았다. 만화, 애니메이션 산업에서도 굿즈(Goods)라는 제품에 이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다. 인기가 많은 캐릭터 굿즈일수록 사람들은 더 열심히 돈을 지불한다. 업계에선 아예 이 가챠에 소비되는 비용을 월세와 같은 고정비로 산정하는 사람까지 있다.
이 새로운 형태의 취미는 과거에는 전혀 상상할 수도 없었던 취미다. 그런데 이 취미가 전 세계적인 열풍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그 영향력이 강해진 것이 오늘의 사회다. 이 취미에 열중할 만큼의 돈과 시간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증거다. 그만큼 사람들에겐 여유가 생겨났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런 취미를 여러 가지 갖고 있는 게 이상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운동도 하고 영화도 보고 게임도 즐기고 또 다른 종류의 운동을 하고… 우리는 이렇게 많은 취미를 갖고 있는 것에 대해 당연한 현상으로 치부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역설적으로, 그렇게 우리는 과거보다 여유가 많아졌지만 동시에 더욱 바빠졌다.
그러면서 시간은 더 귀중한 자원이 되었다. 우리는 돈과 시간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헛돈 썼다.’는 표현이 있듯이, ‘시간만 날렸다.’는 표현도 있다. 우리는 시간을 허비하는 것을 매우 안타까워하는 문화에 익숙해져 있다.
그렇게 무궁화호보단 KTX를 타고, 재미없는 영화에는 시간이 아깝다고 불평하고, 야근이 잦은 회사엔 미련없이 떠나고, 휴일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휴식하는 것에 불안해하고, 자정을 넘기고도 무언가를 하느라 잠을 자지 못한다. 우리는 시간이 무한하기를 바라고 있다.
‘카지노에는 세 가지가 없다. 창문, 시계, 거울.’
도박 산업에는 오랫동안 내려온 노하우가 존재한다. 고객에겐 모든 것을 다 제공하지만, 절대로 창문, 시계, 거울은 제공하지 말라는 것이다. 저 세 가지는 모두 시간의 흐름을 인식하게 해주는 도구다.
게임에 열중하다가 문득 창문을 보면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노을이 보일 것이다. 시야는 자연스럽게 시계로 향해 몇 시인지를 확인하려 든다. 거울을 보자 게임을 하느라 초췌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카지노에선 이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손님이 더 오랜 시간을 쓸수록 자기들은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으니까.
시간을 빼앗는 것은 돈을 벌어들이는 궁극적인 방법이다. 우리가 어떤 서비스와 재화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시간을 써야만 한다. 그리고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지갑은 자연스럽게 더 자주 열리게 된다. 우리뿐만 아니라 기업도 시간이 무한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치더라도 유한한 시간의 흐름은 결코 막을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매일 시간과 싸워오고 있다. 그와 동시에 서로 더 많은 시간을 얻고자 투쟁하고 있다. 그러는 중에도 시간은 흘러간다.
시간전쟁은 시간이 존재하는 한 영원할 것이다.
각주
¹. https://www.yna.co.kr/view/AKR20240304019800017
². https://www.youtube.com/premium?app=desktop&gl=KR&hl=ko
³. https://www.kl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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