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소리 모으기 4. 우리의 습관들
일반화라는 단어가 있다. 오늘날에는 여러 곳에서 사용되어 대부분의 사람이 어디에서든 들어봤을 만큼 꽤나 널리 퍼진 단어이기도 하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일반화란 다음과 같다.
명사
1. 개별적인 것이나 특수한 것이 일반적인 것으로 됨. 또는 그렇게 만듦.
2. (심리) 어떤 특정한 자극에 대한 반응이 형성된 뒤에, 그 자극과 다소 다른 자극을 주어도 동일한 반응이 나타남. 또는 그런 일.
일상에서 많이 쓰이는 ‘일반화’라는 단어는 대부분 1의 의미에서 사용된다. 단편적인 정보를 가지고 이를 전체의 특성으로 간주하는 행위, 이것이 오늘날 사용되는 일반화의 대표적인 의미가 된다. 이 때문에 “일반화하지 마라.”와 같은 경고도 꽤나 많이 들려오고 있다.
오늘 나는 어쩌면 일반화를 저지를지도 모르겠다. 내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으로 무언가를 평가하려고 하니까. 오늘 내가 평가할 대상은 인간이다. 나 자신을 포함해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그리고 그 외의 여집합에 해당하는 대다수의 몇십 억 명. 나는 이 인간이 가진 나쁜 버릇들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네가 뭔데 감히?”와 같은 불쾌감을 드러내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맞는 말이다. 어찌 한 개인이 몇십 억 명이나 되는 사람들에 대해 어떠하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 평가의 대상에는 나 자신도 포함되어 있다. 즉 오늘의 글은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 나를 포함한 우리 스스로에 대한 자아비판과 같다고도 생각해주시기 바란다.
내가 굳이 이 글을 쓰는 이유도 위와 관련이 있다. 나는 항상 내가 지닌 나쁜 버릇들이 신경 쓰여왔다. 이것을 고쳐야겠다는 생각은 해왔지만, 마음만 먹고 쉽게 나아지지 못해왔다. 그리고 그런 버릇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기회에 그것들을 명확히 문자로서 정의해보고자 한다.
인간이 가진 가장 나쁜 버릇은 모든 것에 당위성을 부여하고자 하는 것이다. 당위성이 개입되지 않는 현상이나 개념에 대해서도, 인간은 그것이 당연하냐 당연하지 못하느냐를 따지고자 하는 버릇이 있다.
“당연한 거 아니야?”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정말 시도때도없이 듣게 되는 말이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그건 그냥 네 생각이고.”라고 반박하고 싶지만, 그런 말을 당당하게 하지 못하는 연약한 인간이다 보니 속으로만 삭일 뿐이었다. 그렇다. 사람들은 단순한 ‘의견’과 ‘당위’를 구분하지 못한다.
내가 이를 가장 잘 느낀 것은 병역의 의무를 다할 시기였다. 당시 나는 의무경찰로 대체복무를 하게 되었다. 소위 말하는 ‘부조리’라는 것이 조금은 잔존해있는 시기였다. 가장 대표적인 부조리로는 식사가 있었다.
의무경찰은 외부에서 근무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식사도 외부에서 해결하는 것이 통상적인 일이었다. 우리 부대는 주로 도시락을 통해 식사를 해결해왔다. 그럴 때마다 식사를 담당하는 것은 가장 최근에 들어온 ‘막내’들의 몫이었다.
도시락이 도착하면 막내들이 일일이 모든 사람에게 도시락을 배포해주었다. 그것도 가장 고참부터 자기 맞선임까지 순서를 지켜서. 그 후 자신이 아닌 누군가가 식사를 마치면 먹던 것을 멈추고 벌떡 일어나 다시 도시락을 회수해야만 했다. 몇십 분의 식사시간 동안 막내는 이것을 반복하는 것이 우리 부대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나 역시 이 당연한 일에 동참하게 되었다. 적어도 내 후임이 들어오기 전까진 나도 바쁘게 도시락을 나르고 도시락을 수거해야만 했다. 그럴 때마다 난 속으로 생각했다. ‘지들이 갖다 먹으면 될 것이지, 손이 없나, 발이 없나?’
그런 불만을 품게 되자 이 당연한 일이 너무나도 이상하게 느껴졌다. 신속한 식사를 위해서라면 각자 줄서서 분출 받고 회수도 알아서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텐데, 왜 굳이 몇 명만 바쁘게 오가는 것이지? 여기가 식당이라도 되나? 그리고 이 생각은 내가 선임이란 호칭을 얻고 나서도 계속되었다. 식사시간마다 나는 후임에게 내 것은 챙기지 말라고 이르며 내가 직접 도시락을 가져다 먹기 시작했다. 기껏해야 10~20 발자국만 움직이면 되는 일이었다. 불편한 건 전혀 없었다.
하지만 나의 이 일도 얼마 가지 못해 제지당하고 말았다. 고참 중 한 명이 나를 따로 불러내 경고를 한 것이다. 나는 그냥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것이라고 항변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냉철했다.
“야, 막내가 도시락 뿌리는 건 당연한 거야.”
이들에겐 논리나 합리 같은 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여겨져 왔던 것. 이것을 계속 당연한 일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 권력의 압박에 나도 결국은 굴복해버렸고 도시락 분출은 여전히 막내의 몫이 되었다. 다른 사람이 건네는 도시락을 받고, 다 먹은 도시락을 다시 건넬 때마다 나의 마음 한구석엔 찝찝함이 남아있었다. 세월이 흘러 내가 나를 제지한 고참의 위치에 올랐을 때도 이 일은 당연한 것으로 취급되었다.
한번은 내가 넌지시 이 관례를 바꿔보고자 한 적이 있었다. 다른 동기와 후임들에게 부조리를 조금은 없애보자고 제의를 한 것이다. 그럼에도 들려오는 대답은 그때와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런 건 당연히 막내가 해야지.”
그놈의 당연하다는 논리는 참으로 지긋지긋했다. 그 룰을 만든 건 누구일까? 모르긴 몰라도 이 우주의 물리 법칙이나 수학적 도식을 통해 만들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룰은 사람이 만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당연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의견에 불과하다. 당연하다는 것은 ‘빛의 속도는 299,792,458km/s이다.’, ‘1에 1을 더하면 2가 된다.’와 같은 객관적인 사실에나 사용할 수 있는 단어이지 않은가?
논리적으로 생각해보면 그것이 당연하다는 수식어를 붙일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두가 당연하다고 말한다. 나는 이 관례가 너무나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결국 전역하는 그날까지도 나는 나를 납득시켜 줄 해답을 찾지 못했다.
전역한 다음 사회로 복귀한 이후에도 이런 상황은 비일비재했다. 온갖 사회적 이슈에는 항상 '당연한 거 아니냐?'는 소리가 따라왔다. 인터넷 뉴스의 댓글창, 유튜브의 댓글창, 갖은 커뮤니티의 글들... ‘당연’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꼭 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그만큼 사람들은 많은 것에 ‘당연하다.’라는 말을 남발한다. 당위성을 따질 수 없는 것들, 이를테면 현상에 대해서도 당위성을 부여하고자 한다.
최근 이것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 선거에 관한 반응이었다. 비단 대한민국에서 있었던 선거뿐만이 아닌, 타국의 선거에 대해서도 매우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이들은 쉽게 이런 말을 한다.
“X(한 개인, 혹은 정당)가 이기는 게 당연하다.”
선거 전 이들에겐 자기가 지지하는 무언가가 승리하는 것이 당연하게 다가올 미래처럼 여겨진다. 선거 후 자신이 예상한 것과 다른 결과가 나타난다면 그들은 이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마치 해가 서쪽에서 뜨기라도 했다는 반응이다. 자신의 가치관과 무관하게 발생하는 현상에 대해서도 당위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자신에겐 상식이고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도, 결국은 개인의 해석과 의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과거의 상식과 당연한 일들이 현재는 그러하지 않다는 것만 보아도, 인간이 부여한 당위성이라는 것은 한시적이며 견고하지 못하다는 것이 자명하다. 몇 세기 전만 해도 노예를 거래하는 것이 당연했다. 50년 전만 해도 호주제의 존재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다. 10년 전만 해도 길거리에서 흡연하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졌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이 당연하던 일들은 지금 와선 바보 같은 소리가 되어버렸다. 아마 당시의 사람에게 현재 사회를 보여주면 그들은 이것이 잘못된 세계라고 분개할 것이다.
이런 당위성의 버릇은 비단 사회현상에만 나타나는 것이아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가치관과 반대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설령 그것이 자연현상일지라도 말이다. 속칭 ‘자연의 섭리’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이 보통 그러하다.
그들이 자연의 섭리라고 주장하는 것들에 대한 반례를 제시하면 그건 특이한 일부에 불과하다고 변호한다. 자신이 생각하는 ‘섭리’에 거스르는 것은 기본적으로 존재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그 어떠한 의도와 목적도 존재하지 않는 자연에 대해 ‘섭리’라는 단어까지 사용하며 당위성을 부여하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당위성을 논거로 자신의 가치관을 변호하고자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 가치관으로 인하여 당위성을 부여하는 버릇이 생긴 것인지 나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이 나쁜 습관은 소수의 몇 명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내가 이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은 어느 순간부터 “당연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나서였다. 이 ‘당연함’에 대한 회의감을 갖고 있던 나조차도 툭하면 당연하다는 말을 쉽게 내뱉고는 했다. 이 버릇은 내 사고관으로도 발전해, 누군가가 내 상식 밖의 행동을 할 때마다 이렇게 생각하곤 했다. ‘아니, 저러면 안 되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 나 또한 사회적, 개인적으로 형성된 일편의 상식에 얽매여 있는 사람일 뿐이었다.
메타인지라고 하던가? 나는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고 나니 다른 사람들 역시 그러한 습관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이 버릇은 곧 내가 사는 사회, 더 나아가 국가적 차원으로도 확장되고는 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무엇이 있을까? 아마 이 질문에 대해선 답변하는 사람마다 각기 다른 대답이 나올 것이다. 내가 대답하자면 아래의 몇 가지가 상식처럼 받아들여진다고 생각된다.
1. 남자라면 누구나 군대에 가야 한다.
‘남자’라는 것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국방부에서도 트랜스 여성에 대해선 별도의 병역판정을 내리고 있다.¹ 최근엔 이 기준도 개정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방부도 이 ‘남자’라는 범위를 어디까지로 규정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대목이다.
또한 사람의 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남성과 여성, 이분법으로 나누어지지도 않는다. 인터섹스(Intesex)라는 성별 역시 존재한다. 현재 인간 성별의 구분은 주로 남성기와 여성기라는 생식기 분화를 기준으로 행해지고 있다. 인터섹스는 이 생식기를 모두 불완전하게 지니고 있는 상태를 뜻한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성별의 존재를 들어보지도, 목격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극소수의 사례라서? 한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인터섹스의 존재는 후천적 요인을 포함, 전체 인구 중 1.7%에 해당한다고 한다.² 이 연구에 따르면 대한민국 5천만 국민을 기준, 85만명이 존재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흠… 극소수의 사례로 보긴 어려울 것이다.
이 85만명에 대해선 어떻게 성별을 규정해야 하는가? 남자? 아니면 여자? 그렇다면 이들의 병역은? 또 이를 규정하는 생식기는 무엇을 기준으로 판별할 것인가? 크기, 모양, 위치 등 각 개인이 지닐 수 있는 특성은 너무나도 다양하지 않은가?
그리고 군대는 왜 가야 하는 것이지? 헌법과 병역법에 따라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면 북한과 통일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 이때는 또 병역의 의무가 당연하지 않은 것이 되는가?
최근 사회이슈로 여성의 병역의무가 논의되는 것은? 여자는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된다는 상식이 벌써 흔들리고 있는 것인가? 2022년 기준, 현역 판정률은 83.6%인데, 나머지 16.4%의 인원은 무엇일까? 이들은 남자가 아닌 것인가?
2. 투표는 당연히 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꽃이라고들 하는 선거제도는 투표를 통해 형성된다. 실제로 민주주의 자체도 선거와 투표라는 시스템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체제이다. 그 때문인지 선거기간만 되면 투표를 독려하는 목소리는 사방에서 들려오고는 한다. 그처럼 민주시민이라면 투표를 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다. 더 나아가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는 것을 악행이라고 규정하는 분위기도 형성된다.
그런데 전국동시지방선거와 재보궐선거의 투표율이 현저히 낮은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대선, 총선에 비해 중요성이 낮아서? 그렇다면 민주시민들은 중요도를 따지면서 투표를 한다는 말인가? 재보궐선거는 공휴일이 아니라서? 나에겐 이것이 투표라는 행위가 여유 있을 때나 할 행위라는 소리로 들린다.
비교적 투표율이 높은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 역시 투표율 100%를 달성하진 못한다. 그리고 100%를 달성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철만 되면 투표를 하지 않는 것이 매우 지탄받을 행동처럼 규정되곤 한다.
호주를 비롯한 몇 국가에선 실제로 투표를 독려하는 것을 넘어, 강제하는 법안이 시행되기도 한다. 만일 대한민국에도 이러한 법안이 제정된다면 어떨까? 분명 투표율은 오르겠지만 이에 대한 반발도 거셀 것이다. 무엇보다 투표 역시 헌법에서 보장하는 ‘권리’이지, ‘의무’가 아니라는 점에서 현재의 법 체계와 모순이 생기기도 한다.
‘권리를 행사하지 않는 자유’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투표를 하지 않는 것에 갖은 비난이 가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민주주의 사회에 태어났기 때문에? 일종의 운명론처럼도 들린다.
3. 한민족은 단일민족이다.
이에 대해선 한민족이라는 것에 대해 먼저 정확한 정의가 필요할 것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민족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답변이 필요하다.
민족은 무엇으로 규정할 수 있는가? 문화? 언어? 유전자? 영토? 국적? 문화로 규정하기엔 대한민국 안에서도 각 지역마다의 문화가 천차만별이다. 언어 역시 캐나다와 같이 다양한 공용어가 존재하는 국가가 있다. 그럼 이들은 분리된 민족인가? 유전자 역시 염색체 분석으로 살펴보면 단일민족이라 칭하기엔 어려움이 있다. 한국인의 하플로그룹 분석결과, 다양한 계통의 유전자가 섞인 존재로 나타났다.³ 이를 기준으로 했다면, 유사한 하플로그룹을 지닌 다른 민족도 우리와 같은 민족으로 취급할 것인가? 영토와 국적을 기준으로 삼자니 외국 국적을 지닌 한국계 동포, 교포들에 대해선 설명할 수 없다.
결국 민족이라 함은 이 모두를 포괄한 총체적 집단으로 설명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한민족의 정의 자체도 ‘한국의’ 특성을 지닌 민족이라고 정의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 ‘한국의’는 무엇으로 규정할 것인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성립된 지는 채 80년도 되지 않았다. 그 이전, 그리고 더더욱 이전으로 되돌아가면 현재의 대한민국 영토 안에서도 다양한 국가가 존립했었다. 역사적으로 문화와 영토가 무수히 변화했건만, 대체 무엇을 한국스러운 것으로 규정할 것인가?
단일하다는 것 역시 정확히 설명하기 어려운 형용사이다. 무엇을 기준으로 단일하다고 평가할 것인가? 최근 들어선 무수한 ‘~세대’라는 용어들이 난립하는 실정이다. 고작 태어난 연도가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세대, 다른 사람 취급을 받는 사회에서 단일하다는 것은 무슨 의미를 갖고 있을까?
한반도 상에 단일민족이라는 단어가 최초로 사용된 것은 1948년 역사학자인 이병도(1896~1989)의 한국사대관(朝鮮史大觀)에 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24년으로부터 76년밖에 되지 않는 일이다. 이때 만들어진 개념이 마치 오랜 옛날부터 그래 왔던 것으로 생각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연 단일민족이라는 개념은 실존하는 것일까?
우리는 왜 이런 것들은 당연하다고 여기게 된 것일까? 자연의 상태에서의 인간이 이러한 상식을 지니게 될 리는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국가와 사회의 존재가 우리에게 이것들이 당연하다고 지속적으로 말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도 이 당연함을 유지하고 재생산하는 주체로 살아왔다.
우리의 사회는 이 당연함을 앞세워 많은 이들을 궁지에 몰아넣기도 한다. 매년 일어나는 군대에서의 사상 사고와 미필자에 대한 차별, 성별갈등, 자신과 다른 이념을 가진 이에 대한 비방과 폭력, 타민족에 대한 적대심과 사회 문제들. 그 밖에도 이 국가에서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로 인해 합리화되는 논리와 행위가 수두룩하다. 심지어 이에 대해 의문심을 품는 것 역시 쉽사리 허락되지 않는 것이 오늘의 사회이다.
내 생각엔 이러한 상식이 쉽사리 위협을 받는 않는 까닭은 인간 본연의 성질에 있다고도 본다. 내 개인적인 의견에 불과하지만, 나는 인간이 시계열적 사고에 불리한 동물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인간은 현재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과거와 미래 역시 고려의 대상이긴 하지만, 현재에 집중하는 바에 비하면 10% 미만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위의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만들어진 지는 채 100년도 되지 못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 사회가 미래에도 불변하고 영원하리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역사가 말하고 있듯이, 영원한 국가와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역시 미래 언젠가에는 없어질지도 모른다. 하다못해 지금과 같은 사회는 절대 아닐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그때가 되면 이러한 상식과 당연함은 존재를 감추게 될 것이다.
그 미래가 언제,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지 나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때도 인간은 지금과 같이 모든 것에 당위성을 부여하려 들 것이다. 그들도 그들이 갖고 있는 상식을 당연한 것으로 취급할 것이며, 당위성을 부여할 수 없는 대상에도 강제로 당위성을 부여하려 들 것이다.
나쁜 버릇. 내가 이 버릇을 나쁘다고 표현한 것은, 단순히 그 해악 때문만이 아니다. 버릇은 쉽게 고쳐지지 않기 때문에 나쁜 것이다.
당위성에 대해 논하다 보니 글이 너무나도 길어지게 되었다. 다른 나쁜 버릇들에 대해선 다음에 다시 논의해보도록 하겠다.
각주
¹. 병역판정 신체검사 등 검사규칙
². Blackless et al., "How sexually dimorphic are we?", American Journal of Human Biology: Volume 12, Issue 2, 2000
³. Kim et al., “High frequencies of Y-chromosome haplogroup O2b-SRY465 lineages in Korea: a genetic perspective on the peopling of Korea”, National Library of Medicine,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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