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나쁜 버릇들 - 2

헛소리 모으기 5. 우리의 습관들 - 2

by 모두다

물리학에는 관성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관성이란 물체가 운동의 상태를 유지하려는 경향을 의미한다. 외부에서 물체로 다른 힘이 작용하기 전까지, 물체는 자신의 운동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달려가는 자동차의 브레이크를 밟아도 바로 정지하지 못하고 밀려나는 것도 이 관성의 존재 때문이다. 즉 물체의 운동 상태를 변화시키기 위해선 외부로부터 힘이 가해져야만 하는 것이다.

이 물리학 원리는 이 지구를 넘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물체에 적용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먼지부터 진공을 떠도는 행성들에까지. 하지만 여기에는 단 하나의 예외가 존재한다. 인간이라는 생물에게는 관성이 너무나도 이상하게 적용된다.

어째서인지 인간은 외부로부터 어떤 힘을 받아도 자신의 상태를 유지하려고 한다. 다른 물질에 비해 관성이 지나치게 강한 것이다. ‘고집’이라는 단어로도 표현되고자 하는 이 습관은 매우 많은 사람에게서 발견된다. 물론 나를 포함해서 말이다. 이 습관 때문에 인간은 모순적으로도 보이는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인지부조화확증편향이다.




andriyko-podilnyk-zGQ17qQMaaM-unsplash.jpg Copyright 2018. Andriyko Podilnyk


우리는 누구나 생각이라는 것을 한다. 순수하게 물리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비생명체나, DNA의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다른 생명들과 달리, 인간은 사고를 기반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뇌를 컴퓨터에 비유하는 것과 같이, 이 사고라는 것은 한 인간을 조종하는 꼭두각시 줄과도 같이 느껴진다.

컴퓨터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인간의 뇌는 동질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다른 뇌를 갖고 있으며 그로 인한 사고 역시 다를 수밖에 없다. 모든 컴퓨터는 하나의 문제에 대해 하나의 동일한 답변을 내놓는다. 하지만 인간은 하나의 문제에 대해 80억 개의 각기 다른 답변을 내놓곤 한다.

인간은 왜 그런 것일까? 우리는 보통 사람마다 사고관이 다르기 때문이라고들 말한다. 각자 사고하는 방식과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답변이 나오는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각자 다른 사고관을 지니고 있다.’라는 명제는 대체로 참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사고관이라는 것이 곧 그 사람을 규정하는 존재로도 느껴진다.


그처럼 사고관은 어느 정도는 인간의 본질적인 요소가 된다. 대부분의 본질이 그러하듯, 이 사고관 역시 변하기 매우 어려운 존재다. 우리 인간은 자신의 사고관을 변화시키지 않으려는 버릇이 있다. 그리고 이 버릇으로 인해 우리는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한다. 이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바로 인지부조화이다.

인간은 자신이 지니고 있던 사고와 반대되는 정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설령 그것이 논리적이고 부정할 수 없는 객관적 사실이라 해도 말이다. 이 간극을 견디지 못해 느끼는 불쾌감, 그것을 우리는 인지부조화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각기 다른 사고관을 지닌 만큼 하나의 이슈에 대해서도 다양한 생각을 갖게 된다. 한 문제에 대해 어떤 사람은 ‘A’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B’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A’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겐 ‘B’는 너무나도 다른 사고로 느껴지게 된다. 단순히 다른 것을 넘어 틀린 것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B’에 대한 근거가 제시되면 어떻게 될까? ‘A’라고 생각한 사람은 순순히 그 근거를 받아들이고 자신이 잘못 사고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까? 그렇게 된다면 너무나도 이상적이겠지만, 거의 모든 인간은 그러하지 못한다. 오히려 ‘A’의 논리를 다시 세우거나 ‘B’의 근거가 잘못되었다고 몰아가곤 한다.


david-pupaza-heNwUmEtZzo-unsplash.jpg Copyright 2021. David Pupăză


우리가 가장 논리적이라고 말하는 과학자들 역시 이 인지부조화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를 보여주는 가장 단적인 예시가 천동설과 지동설이다. 과거 중세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는 이것이었다.


‘이 우주의 중심은 무엇인가?’


우리가 사는 지구가 있고, 그 지구 옆엔 달이 있고, 지구를 비추는 태양과 밤에 나타나는 별들이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그렇다면 대체 이들은 무엇을 중심으로 운동하는 것일까? 이 질문은 단순한 과학적 사실을 뛰어넘어, 인간은 우주에서 어떠한 존재인가를 규정하는 일종의 사고관이기도 했다.

대부분의 인간에겐 다른 천체가 지구를 중심으로 운동한다는 가설(천동설)이 합리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생각해보라. 태양이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고, 달은 밤마다 일정한 주기로 모습을 바꾸고, 별자리들은 계절에 따라 다양한 그림으로 밤하늘을 장식한다. 그리고 우리 인간은 이 땅 항상 똑같은 자리에서 그 모습을 관측할 수 있다. 그러한 현상에서는 지구가 불변하며 다른 것들이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것이 과학적인 사고였다. 물론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운동한다는 가설(지동설)도 존재했지만, 천동설만큼의 설득력은 지니지 못한 상태였다.


josh-rangel-aDmYkVd6rs4-unsplash.jpg Copyright 2018. Josh Rangel

하지만 과학이 발전하며 더 많은 천체가 관측되고, 그들의 세세한 움직임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기존의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아름다운 원의 궤도를 그린다고 알려진 천체들이 반대로 이동하기도 하는 이상 현상이 나타나고, 수학적 계산과 반대되는 금성의 위상 변화가 관측된다. 그렇다면 과학자들은 이것이 천동설의 반대되는 증거라고 받아들였을까?

그들은 이를 설명하기 위해 항성들이 주기적으로 궤도 상에서 다른 원운동을 한다는 주전원 이론을 도입한다. 주전원을 통해 일단 급한 불은 꺼뜨릴 수 있었지만 과학자들이 추구한 아름다운 궤도에서는 많이 벗어나게 됐다. 몇몇 천문학자들은 이 현상을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지동설을 주장했지만, 주류 과학계에선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론이었다.

비록 지동설이 현상을 더욱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지만, 지구가 이 우주의 중심이 아닌 변방이라는 사실은 쉽게 납득되기 어려웠다. 신이 사랑하는 인간을 위해 만드신 이 지구가 다른 항성들과 같이 우주를 떠도는 일개 조연이란 말인가? 마치 지구가 우주에선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듯한 이론이다. 지구만이 불변하는 존재라는 사고관이 지난 몇천 년간 인류의 기본적인 사고관으로 자리 잡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결국 천동설은 시간이 흘러 역학과 관측기술의 발전으로 주류의 자리를 박탈당하게 되었다. 인간은 더 이상 우주의 중심을 차지할 수 없었다. 그와 동시에 고전역학이라는 새로운 사고관이 자리 잡게 되었지만, 이 또한 20세기에 들어서며 상대성이론이라는 새로운 사고관에 위협당하게 된다.

사람마다 시간이 다르게 흐를 수 있다고? 이 또한 정밀한 물리법칙에 따라 움직이게 되는 고전역학의 세계에선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존재였다. 그리고 이 상대성이론을 만들어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 1955)은 또 다른 물리학인 양자역학에 대해 반대(학문적인 영역을 넘어 감정적으로까지)를 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사실이다.


이처럼 기존의 견고한 사고관은 그에 반대되는 증거를 직면한다고 해서 쉽사리 변하지 않는다. 인간은 자신이 믿었던 바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어려워한다. 왜 그런 것일까? 자신의 행동을 제어하고 자신의 정체성과도 같았던 사고관이 부정당하는 것은, 하나의 존재로서의 자신을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일까? 이러한 인지부조화는 오늘날에도 수없이, 전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와 가장 관련이 깊은 분야가 음모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음모론은 어느 정도는 대안이론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자신의 사고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현상이 발생하게 되면, 사람들은 그것에 대한 합당한 설명을 요구한다. 정부의 공식 성명이나 언론에서 설명하는 주류 이론으로도 설득되지 않는다면, 그들은 진실은 따로 있으며 모종의 세력이 이를 감추고 있다고 사고하게 된다.

이러한 경향은 어떠한 사건의 여파가 그들의 삶과 더욱 밀접할수록 두드러진다. 그리고 그 사건이 충격적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에서 발생하는 온갖 음모론들이다. 미국은 특이할 정도로 음모론이 발전한(이런 어휘를 사용하는 게 적절할지는 모르겠다.) 국가이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고 거대한 온갖 정부 기관의 존재 때문일까? 아무튼 현대 이후 미국에선 갖가지의 음모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현대 이후 미국인이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사건은 다음의 두 가지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존.F.케네디의 암살과 911테러가 그것이다.


John_F._Kennedy,_White_House_color_photo_portrait.jpg John Fitzgerald Kennedy. 1917~1963

두 사건 모두 미국인들에겐 엄청난 충격을 안겨다 주었다. 자국의 대통령이, 그것도 대낮에 수많은 시민들 앞에서 저격을 당했다. 여기선 묘사하긴 어려운 끔찍한 몰골이 된 대통령을 태운 차량은 퍼레이드 행렬을 달려나갔고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바로 다음날 모든 언론의 1면을 장식한 이 사건은 미국인에게 믿기 어려운 사건이기도 했다.

당시 미국인이 살고 있던 국가는 세계 패권을 두고 다투면서 엄청난 성장을 이뤄내던 바로 그 미국이다. 맑은 날씨의 금요일 낮. 모두가 박수를 치며 유유히 지나가는 차량을 보며 기뻐하던 순간이었다. 순간 갑자기 울린 총성에 바로 그 미국의 최고 권력자가 허망하게 죽어버렸다. 경찰이 검거한 용의자는 미국을 지키던 해병대 출신의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 역시 이틀 뒤 어이없게도 압송 중 총에 맞아 살해당하게 된다. 그렇게 범인으로 추정되는 사람도 죽어버리면서 공식적인 수사가 종료된다. 이 모든 것이 3일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내가 이 시대를 살던 미국인이라면, 자부심 넘치는 내 모국의 대통령이 고작 사회에 불만을 품고 있던 개인에게 살해당했다는 것을 믿을 수 있을까? 마치 누가 짜고 치기라도 한 듯 용의자마저 죽으며 더 이상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다는 공식 발표도? 이것이 진짜 사실이라고 한다면, 내가 인지하고 있던 이 미국 사회에 대한 사고와 불일치가 일어나 버릴 것이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이 사실을 부정하려 드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그 후 케네디 암살에 대한 음모론은 우후죽순 쏟아졌다. 배후에는 소련이 있다든지, 마피아들이 사주한 거라든지, 진짜 저격수는 따로 있다든지, 미국정부를 조종하는 또 다른 그림자 정부의 음모라든지, 행정부와 갈등을 겪던 정부기관이 저질렀다든지...

다 하나같이 얼핏 들으면 뭔가 그럴싸 하다는 점이 이 음모론의 불을 더 크게 지폈다. 그만큼 미국인들에게 이 사건은 무언가의 음모가 있어야만 납득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 수많은 증거가 있다 하더라도 그들에겐 사실상 ‘증거’가 되진 못한다.


새로운 밀레니엄 시대에도 이 습관은 변치 않았다. 미국의 최대도시 뉴욕에서 일어난 911테러는 이 새로운 시대의 방향을 설정한 세계적인 사건이었다. 화요일 오전, 9시가 되기 조금 전의 시간. 출근으로 바삐 움직이던 뉴요커들은 엄청난 굉음에 모두 발걸음을 멈춰 서게 되었다. 소리가 난 곳을 쳐다보니 높은 빌딩에서 엄청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화재인가? 모두가 웅성거리며 무슨 일인지 갈피도 잡지 못한 채 피어오르는 연기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10여 분 후, 어디선가 날아온 지 모를 비행기 하나가 바로 옆 건물을 향해 돌진했다. 폭발과 화염, 잔해들. 그것을 본 순간 모두가 느꼈다. ‘이건 단순한 사고가 아니다.’

모든 뉴스에선 사고현장을 생생히 비추고 있었다. 미국인들은 고해상도의 컬러화면을 통해 보고 싶지 않은 광경마저도 목격해야만 했다. 타오르는 건물 잔해 몇백 미터의 상공에서 사람이 추락하는 모습이었다. 자신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의 사람들이 스스로 낙하하는 그 모습은, 실시간으로 TV를 보고 있던 모든 사람들의 현실감을 빼앗아 갔다.


9-11-slide-04-sailors-watch-wtc-on-tv-6610647.jpg Department of Defense, 'Onboard the aircraft carrier USS EISENHOWER (CVN 69)', 2001


2,977명.¹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한 희생된 사망자의 수치였다. 이것이 정녕 현실이란 말인가? 냉전이 종식되며 미국은 진정한 최강대국의 반열에 올랐고 경제와 문화 역시 매우 호황기를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미국이 한편으론 타국의 증오를 받는 국가이며, 하이재킹을 막지 못해 도심부와 정부기관이 직접 공격을 당하는 국가이기도 했다. 건국 이래 몇백 년의 역사 동안 단 한 번도 공격받지 않았던 미국 본토가 몇 명의 극단주의자로 인해 공격당한 최초의 사건이었다. 이 현실 믿기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사건 후 일어난 테러와의 전쟁은 미국 사회를 혼돈에 몰아넣었다. 급변하는 시기, 미국 시민 중엔 사건에 의혹을 품는 이들도 나타났다. 정부의 자작극이라는 이야기부터 유대인 배후설, 기업 배후설, 전쟁 명분을 위해 일부러 방관했다는 이론까지.

특히 이 사건으로 또다시 미국이 범지구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며 미국 내부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도 음모론을 신봉하는 자들이 나타나게 된다. 지구 정반대에 사는 일반 시민조차도 911 테러로 인해 시대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었다. 한 개인의 의지로는 막을 수 없는 시대라는 격류는 사람들로 하여금 상황과 이 세계를 다시 반추하게 만들었다. 몇 년 후 이어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말 그대로 범지구적 인지부조화를 야기했다.


인지부조화가 특히나 나쁜 버릇인 이유는 그 성격이 폐쇄적이라는 데에 있다. 인지부조화로 인해 납득이 갈만한 대안을 요구하게 된 사람들은 자기들만의 커뮤니티를 형성하게 된다. 음모론자는 주류 언론이나 학계와 소통하기보단, 또 다른 음모론자와의 소통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 목적이 이론의 보강이든 대립이든, 음모론자들은 서로 이론을 나누고 정보를 교류한다.

이 과정에서 음모론은 더욱 견고해진다. 음모론자들의 정보 소스는 더 이상 외부가 아닌 내부가 되기 때문이다. 이제 그들이 정보를 얻는 방법은 자신들의 커뮤니티 내부로부터이다. 자신들의 이론을 지지할 새로운 정보(그것의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가 나타나면 이를 바쁘게 공유하고 확산하는 것이 일상이 된다.

그로 인해 음모론자들의 이론은 검증의 영역을 벗어나, 확증으로 나아가게 된다. 정보를 취사선택하여 이론을 반박하는 증거는 무시되고 지지하는 증거만 받아들이게 되는 셈이다. 이의 대표적인 사례가 2021년에 발생한 미국 국회의사당 점거 사태이다.


210114-washington-capitol-riot-mob-ac-851p_184e7b4338f3d8893a50cb9079f4a97f.fit-2000w-900x450.jpg The Prospector, 'University responds to riots at the U.S. Capitol', 2021

이 사태를 주도한 것은 특정 대통령 후보의 극렬 지지자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의 대다수는 QAnon(큐아논)이라 불리는 집단에 소속되어 있었다. 이들의 주류이론은 현재의 이 세계는 딥 스테이트(Deep State)라고 불리는 비밀정부에 의해 주도되고 있으며, 모든 주류 언론과 정치인들은 이들의 하수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은 그들의 인지부조화를 해소시켜 주었다.

‘이게 현실이라니, 이건 불가능해! 이 세계가 정상적이라면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이 세계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대선 이후 그들은 자신이 갖고 있던 사고관과 현실 사이의 괴리에 절망감을 느꼈다. 자신의 사고관으론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현실에 그들은 새로운 대안을 찾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 대안을 찾기 위해 자신과 같은 성향을 지닌 사람들의 커뮤니티에 몰두하게 된다. QAnon이 제시하는 새로운 세계관이 바로 그 대안이 되어주었다.

이 이론을 굳게 믿은 이들은 딥 스테이트의 조종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자신들이 행동해야 한다는 신념까지 갖게 되었다. 그러기 위해선 딥 스테이트 하수인들의 심장부인 국회의사당을 점거, 자신들이 생각하는 ‘올바른 세계’를 향한 시발점을 만들어야만 했다.


이러한 음모론자들의 행동은 확증편향으로 인해 발생한다. 인지부조화는 사람을 편향되게 만들어버린다. 자신이 불쾌감을 느끼는 정보는 외면하며, 자신이 원하는 정보만 취사선택하게 되며 객관성은 소멸되어 버린다. 확증편향은 확장성까지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어쩌면 인지부조화 이상으로 나쁜 버릇일지도 모른다.

나는 확증편향이 전염성과 비슷한 성격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확증편향은 치명적이다. 그리고 전염되며 개인을 넘어 집단에게까지도 위협을 가한다. 전염병이야 적절한 방역과 치료로 무찌를 수 있겠지만, 확증편향은 이조차도 쉽지 않다. 생각해보라. 치료제를 거부하며 바이러스를 의도적으로 퍼트리고 다니는 전염병 환자의 모습을. 심지어 그가 자신의 행위가 정당한 것을 넘어 의무라고까지 생각한다면 그 사회는 어떻게 되겠는가?

역사적으로 국가를 좌지우지했던 권력자들마저 간신과 예스맨이 파놓은 확증편향의 함정에 빠져버린 것만 보아도, 확증편향이 지니는 파괴력은 전염성이 비할 수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기에 많은 이들이 확증편향을 경계하려 들지만, 전염병이 그러듯 확증편향은 자신도 모르는 새에 우리 내부로 침투해 버리곤 한다.


google-deepmind-ZJKE4XVlKIA-unsplash.jpg Copyright 2022. Google DeepMind

더욱이 오늘날의 정보사회는 확증편향을 더욱 가속하는 경향이 있다. 오늘날 인터넷을 아예 접속하지 않는 사람은 소수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리고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커뮤니티를 접하거나 직접 만드는 것이 가능해진 시대이다.

우리가 툭하면 접속하곤 하는 포털 사이트, 소셜 미디어, 동영상 사이트 등은 ‘알고리즘’이라는 시스템을 통해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을 무한대로 제공해주고 있다. 오늘의 인터넷은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을 보여주는 단계를 넘어, 우리가 보지 않아도 될 것까지 보여주는 단계로 기술이 발전했다. 그리고 시스템은 우리가 이것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공유할 것을 요구한다.

확증편향의 또 다른 특성은 비가역적이라는 것이다. 확증편향에 한번 빠져버리면 거기에서 나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애초에 빠져나오려는 시도조차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확증편향이기 때문이다. 확증편향의 단계로 오면 외부에서의 그 어떠한 힘으로도 사고관을 바꿀 수 없게 되어 버린다. 블랙홀의 중심에선 모든 물리법칙이 붕괴되듯이, 확증편향의 골짜기에선 운동 상태가 고정되어 버린다. 무한대의 관성이 작용하는 셈이다.

확증편향이라는 잘못된 버릇은 한 개인을 넘어, 집단을 망가트려 버린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만 할 것인가? 인지부조화와 확증편향이 나쁜 거라고 떠들고 다니는 것으로 예방할 수 있을까? 그것이 가능하다면 이 지구상에는 범죄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애석하게도 인간의 본능과도 같은 이 버릇들은 단순히 경계하고 조심한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이 나쁘다고 말하고 있는 나조차도 일상에선 수없이 많은 인지부조화와 확증편향에 빠져버리기 때문이다.

나로서도 딱히 이렇다 할 해결법이 떠오르진 않는다. 애초에 몇천 년간 인류가 겪어온 공통 문제가 나 한 명이 풀 수 있을 리가. 그러기에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더욱 매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풀 수 없어도 다른 누군가, 혹은 우리 모두가 함께 푸는 것은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문제는 오늘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과거의 조상들도 겪어온 문제이다. 그러기에 미래의 후손들이 사는 세계에서도, 인지부조화와 확증편향은 계속해서 인류를 괴롭히게 될 것이다. 우리 자신과 그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이들의 문제에 계속해서 도전해야만 할 것이다.



각주

¹. National September 11 Memorial & Museum



[커버 이미지 정보]

Copyright 2018. Vince Flem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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