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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의역사 Jan 14. 2020

박종철 열사의 순국엔 조금 특별한 면이 있었다

33년 전 오늘...













당시 상황을 리얼하게 묘사한 영화 '1987'






시민들은 왜 박종철 열사의 죽음에 특히나 분노했을까?





33년 전 오늘, 1987년 1월 14일

,

박종철 열사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경찰의 물고문 끝에 숨을 거두었다.







당시 전두환 정권의 민주화 인사들에 대한

고문이나 인권 탄압이 극에 달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박종철의 죽음에

왜 특히나 더 분노했을까?

.

그의 죽음은 다른 민주주의

투사들의 희생과는

조금 다른 점이 있었다.

.

.

.

그는 과거에 서슬퍼런 전두환 정권을 향해

민주주의를 외치며 싸운 경력이 있긴 하다.

.

하지만, 당시만 해도 민주주의를 요구하면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가

끔찍한 고문을 당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자신을 바라보는 부모님을 생각해

민주화 운동을 접은 상태였다.




영화 '남영동 1985' 中

.

.

.

그런데 경찰이 박종철의 서울대 선배인

박종운의 행적을 찾기위해,

평범한 서울대 학생으로 살아가던

그를 공산주의 찬양 혐의로 잡아들여,

물고문을 하다가 쇼크사를 일으킨 것이다.

.

운동권도 아닌,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만 하던 보통의 청년도

'빨갱이'란 감투 하나만으로

인간 도살장으로 끌려갈 수 있다는 사실은


언젠간 나도,

내 가족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낳았고

그 불안감은 국민적인 분노로 폭발했다.




박종철 열사의 서울대 장례식




게다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거짓말로 진실을 덮기위해,

"책상을 쳤더니 놀라서 죽었다"는

경찰의 놀라운 해명이

도리어 국민의 반발에 기름을 부었다.

.

.

.

이를 도화선으로

전두환 신군부 정권은

6.10항쟁을 마지막으로

국민들에 의해 끌어내려졌고,

.

오늘날 우리는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뽑을 수 있는

아주 '소박한' 권리를 쟁취해냈다.




이 소박한 권리 조차도, 수많은 시민의 피와 땀으로 일궈낸 결과다




30년 전만해도 대한민국은,

대통령을 국민 손으로 뽑자고 주장하면,

'공산주의 찬양죄'로 끌려던 시절이 있었다.

.

.

.

민주주의의 역사는

생각보다 쉽게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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