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두의역사 Apr 07. 2020

이승만은 국부일까? 독재자였을까?  ①발췌개헌

교과서에도 나오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첫번째 이야기


이승만 대통령!







흔히 우리나라 이명박 박근혜 지지층은 이승만을 국부라 칭하고,

김대중,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는 사람은 이승만을 독재자라 부른다.








다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역사로 먹고 사는 나로써,

모두의역사가 바라본 이승만은

물론 예언가적인 능력과 정세 파악이 귀신처럼 빠르긴 했지만,

자신의 사적 욕심을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인물이었다.



그 대부분의 내용은 이승만의 대통령 시절,

교과서에 나온 굵직한 업적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한 세 편 정도로 글을 쓰게 될 것 같다.






1. 발췌개헌(1952)



이승만 대통령을 야채로 표현해보자면, 양파같은 인물이다. 까면 깔수록 새로운 면이 보인다.





특히 이것은, 대통령이 된 후 장기집권하려는 노력에서 출발한다.


그 첫번째가 바로 제1차 개헌이다.(발췌개헌)



대한민국은 정부 수립 이래 72년 동안, 총 8번의 헌법 개정이 있었다.

이는 세계사를 통틀어 거의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횟수의 역사다.

사실 헌법은 국가 최상위 법으로써, 이를 바꾸기는 쉽지 않다.

국회, 대통령의 발의로 국민투표까지 거쳐서 제정될 만큼, 함부로 바꿀 수 없고 그래서도 않되는 것이 바로 헌법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헌법은 그동안 수십년의 독재정권의 권력 유지를 위해 70년간 무려 9번이나, 그것도 비상식적으로 뜯어고쳐졌었다.






그 스타트를 끊은 대통령이 바로 이승만 전 대통령이다.

그가 처음으로 개헌을 했던 것이 바로 제1차 개헌이다.



당시는 1952년, 바로 6.25전쟁(1950~1953) 중이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처음 대통령에 오를 때는 친일 지주세력이 다수 포진된 한국민주당에 도움을 받아 국회 간접선거로 대통령이 되었다.




친일 지주세력을 대표하던 정당인 한국민주당 당수이자 고려대를 설립한 김성수(좌측)과 이승만(우측)



친일 경력이 있던, 고려대 설립자 김성수 동상과 이를 반대하는 고려대 학생들(출처: 연합뉴스)





대한민국이 처음 수립될 때만 하더라도, 2020년 오늘처럼 대통령을 국민 손으로 직접 뽑는 게 아니라, 국민 손으로 뽑은 국회가 이 역할을 대신 했었다. 그런데 이승만은 친일 지주세력으로 구성돼있는 한국민주당의 도움으로 대통령에 오른 후, 이들을 내각에 등용시키지 않았다. 통수를 맞은 거대 정당인 한민당은 더이상 이승만의 편에 설 수 없었다. 결국 국회에는 이승만을 도울 수 있는 세력이 없어졌다.


따라서, 국회의원이 직접 지도자를 뽑는 대통령 선거 때, 국회의원들이 그를 뽑아주지 않을 상황이 직면했다.






위기의 이승만은, 이때 묘수를 쓴다.
6.25라는 전쟁 상황을 이용한다!




민초에게는 끔찍한 전쟁이, 어떤 정치인에게는 그저 하나의 수단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역사 속 많은 지도자들은 자신이 국내정치에서 위기에 몰렸을 때, 자신에게 돌아올 화살을 외부로 돌리는 경우를 아주 많이 볼 수 있다. 


조선사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을 통일한 후에, 자국 사무라이들의 불만을 조선으로 돌려 임진왜란을 일으킨 역사가 있다.




조선-일본의 전쟁, 임진왜란의 주범! 도요토미 히데요시




그뿐만이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멀지 않은,1997년 15대 대선 직전에, 한나라당 후보 이회창 측에서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청와대 행정관이 북한의 박충이란 고위 관료에게 휴전선 인근에서 총을 쏴달라고 사주를 하기도 했다.




'총풍사건' 동아일보 보도 기사(1998, 출처 : 오마이뉴스)




외부의 적을 만들어 공포 분위기를 조장한 후, 내부를 결속을 시키는 전술은 위기의 지도자들이 많이 쓰는 전술이다.




이승만도 이런 방법을 이용했다. 국가의 위기 상황에, 국민들은 집권자의 교체를 원하지 않는 속성을 잘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결국,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추진하고, 이를 결국 관철시킨다. (국회 안이었던 '양원제'도 도입하지만, 시행은 하지 않는다.)


※ 양원제 : 오늘날 미국과 같은 상,하원제


이를 이승만의 안과 국회의 안을 모두 발췌한 개헌이라 하여 '발췌개헌'이라 한다.




"이것 만으로 크게 문제될 것 있나?" 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를 도입했던 과정에서 일어났다.


당시, 이승만은 이 개헌을 통과시키기 위해, 개헌에 반대하는 야당 위원들이 타고있던 버스를 군인을 동원해 납치한 뒤 27시간 구금시켰다. 그리고 그 틈을 타 개헌안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부산 정치 파동(1952), 이승만이 자신의 개헌안에 반대하는 야당 국회의원들을 군인과 깡패를 동원해 감금한 사건




발췌개헌안 국회 통과 당시, 기립투표;;;;;



오늘날에는 정말 상상도 못할 일이다. 


하지만 당시는 우리의 시민 의식이 아직까진 성숙하지 못했고, 지금같은 인터넷도 없었으며, 무엇보다 참혹한 전쟁중란 배경을 이승만은 철저히 이용했던 것이다. 이를 '부산정치파동'에 의한 제1차 개헌이라 한다. 당시 우리의 수도가 낙동강 전선아래인 부산이었고, 전쟁중이란 혼란기였기때문에 가능했던 사건이다.




제2대 대선 결과(1954)




그렇게 야당 위원을 협박 구금해서 통과시킨 헌법으로 진행했던 선거의 결과는 이승만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이 2대 대선으로 이승만은 2번째 대통령이 되었고, 이것은 그의 첫번째 개헌 망동이었다.



제2화, 사사오입 개헌에서 계속...


매주 화요일에 연재합니다^^







▶『나는 공무원을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eBook 정식 출간!



▶ 모두의역사 공식 유튜브 채널


매거진의 이전글 박종철 열사의 순국엔 조금 특별한 면이 있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