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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미 Dec 29. 2020

인도 매직 파마 사건

코로나가 너무해

내 머리카락은 반곱슬이다.

완전히 곱슬은 아니지만 조금 곱슬인 반곱슬.

그래서 내 머리는 자주 사자 모양으로 변한다.

초등학교 사진 중에 운동회 때 찍은 그룹 사진이 있는데 그 사진 속에 나는 사자 같았다.

빨간 한복 저고리와 하얀 치마를 입고 부채춤을 추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까무잡잡한 한 마리의 아기 사자?!

그랬다. 내 머리카락은 전형적인 반곱슬이었다.

세월이 지나고 미용의 기술은 발달하여 '스트레이트'와 '매직'이라는 붕 뜨는 머리를 차분하게 또 직모처럼 만들어 주는 기술이 미용실에 도입되었고 나 같은 반곱슬에게는 신세계가 열렸다.

사실 한국에 있을 때는 거의 파마를 하거나 짧게 자르곤 했었다. 하지만 인도에 지내면서 매번 파마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에센스를 발라가며 머리를 예쁘게 만들 시간도 없었다. 그래서 내 머리 스타일은 줄곧 직모 스타일 일명 매직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매직 파마도 6개월에서 길어봤자 1년 안되게 효과가 있었다. 6개월이 지나면서부터는 새 머리카락들이 올라오면서 다시 사자머리가 되곤 했다.

그래서 한국에 나갈 때면은 가장 먼저 하는 것이 미용실에 가서 매직 스타일 즉 머리를 차분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그런데 코로나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비행기가 끊겼다. 한국에 못 나간 지 2년이 되었으니 내 머리는 이미 사자 머리였다.


그런데 얼마 전 인도 친구 한 명이 내게 말했다.

"저 머리카락 피는 거 (매직) 할 줄 알아요. 언니랑 집에서 서로 해주곤 했어요."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말? 와 그래서 너 머리카락이 이렇게 차분한 거였구나."

그녀는 북동 인도에서 왔는데 허리까지 닿는 긴 머리가 유난히 차분해서 내가 자주 부러운 눈으로 봐왔던 친구였다.

"혹시 원하시면 제가 해드릴게요. 약만 사 오시면 돼요."

아~~ 이게 웬 떡이냐. 한국에서는 적어도 오만 원 이상하는 매직 파마를 단돈 만원 재료값에 해주겠다니.

몇 주 뒤, 나는 큰 도시에 나가 매직 파마 약과 중화제를 샀다. 그것도 제일 유명한 브랜드로 말이다.


며칠 뒤 인도 친구들 두 명이 우리 집에 와서 매직 파마를 해 주었다.

과정은 비슷했으나 시간은 6시간이나 걸렸다. 두 명이서 내 단발 머리를 하는데 6시간을 투자한 것이다.

오전 3시간 하고 점심은 내가 준비한 한국 비빔밥을 맛있게 나눠 먹은 후 다시 3시간 매직 파마를 진행했다.

한국에서는 긴 머리도 3시간이면 끝나는 것을...... 아마 인도도 제대로 된 미용실이면 3시간 만에 끝났을 수도 있다.

시간도 시간이었지만 매직 파마를 하는 과정이 고통의 시간이었다.

둘 다 서툴었던 탓에 내 귀나 머리에 고데기를 데기도 하고 너무 열심히 머리를 잡아당겨서 머리가 빠질 것만 같았다. 게다가 나를 너무 생각한 나머지 파마약도 원래 쓰는 것에 1.5배를 썼다. 그것도 두피에 빡빡 문지러 댔다.

열심히 고대기로 내 머리를 곧게 만드는 두 인도 친구를 보며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두피가 무척 아팠다. 머리가 빠질 것처럼 아팠다. 나는 스스로를 다스렸다.

'참아야 한다. 참아야 한다. 미를 위해서 참아야 한다.'

그리고 최선을 다하는 인도 친구들을 보며 애써 웃었다.

'웃어야 한다. 인도 친구들이 이렇게 장시간 고생을 하고 있는데 그들의 노고를 생각하며 이 고통쯤은 참는 것이 예의다.'

6시간의 긴 작업이 마쳐지고 드디어 내 머리는 차분한 생머리가 되었다.

물론 며칠 동안 두피가 아프고 간지럽긴 했지만 말이다.


매직 파마를 한 지 이주일 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머리를 감고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는데 예상치 못하게 머리카락이 빠졌다.

'원래 이 정도 빠졌던 거겠지?' 나는 찝찝한 마음을 애써 누르며 머리를 말렸다.

그런데 그날 그리고 그다음 날도 내 손으로 머리를 정리할 때마다 머리카락이 빠졌다.

'헉~ 설마 매직 파마 때문에?'

사실 그날 파마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머리를 감을 때 내 두피의 고통은 극도에 달했었다.

그래서 머리를 감는 내내 이렇게 중얼거렸다.

"설마 대머리 되는 건 아니겠지? 괜찮겠지?"

그런데 그 우려가 현실이 되는 것인가? 갑자기 울컥했다. 직모 머리카락 만들려다 다 빠지는 건 아니겠지?

사무실에서 일을 할 때도 누구를 만날 때도 나도 모르게 손으로 머리카락을 체크했고 그때마다 많은 머리카락이 나왔다.

울고 싶었다. 머리카락이 너무 빠져 모자를 쓰고 다녀야 하는 나를 상상하며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나 그때 매직 파마할 때 두피가 엄청 아팠었거든요. 근데 어제오늘 머리가 엄청 빠져. 어떡하지? 나 머리 다 빠져도 나랑 살아 줄 거야?"

남편은 웃으며 답했다.

"걱정 말어. 머리카락이 없어도 같이 살아줄 거야."


밥을 먹으면서도 길을 가면서도 나는 계속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다음에는 절대 어떠한 상황에서도 비 전문가에게 내 머리를 맡기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사자 머리로 살 것이다.'


다행히도 지금까지 머리카락이 다 빠지지는 않았다. 대신 나는 전에 사놨던 에센스도 머리카락에 바르고 셀프 헤어 스파까지 시도하는 머리카락 특별 배려자가 되었다.

인도 생활 만 10년. 인도 코로나 생활 거의 1년이 지나간다. 해외에 살다 보니 한국에서 평범하게 누리던 것들이 너무 특별하다. 그리고 이곳에서 그 평범했던 것들을 누려보고자 고군분 토하는 나를 본다.

그러면서 다시 이곳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웃픈 경험들이 때로는 내 삶에 활력소가 된다.


그나저나 코로나야. 언제쯤 끝나 줄거니? 나도 한국 좀 나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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