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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미 Oct 25. 2022

어렸을 적의 기억

소소한 추억들


내가 기억하는 어렸을 적 나의 장면이 몇 개 있다.

-피아노 교습소는 2층이었는데 나는 거의 매일 학교가 끝나면 피아노 교실로 향했다. 선생님이 나를 해똑똑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자로 내 손등을 칠 때도 괜찮았다. 나는 피아노를 좋아했으니까. 그러고 보면 어렸을 적 나의 자존감을 낮춰 준 첫 번째 장소가 피아노 학원이었을지 모른다. 

-엄마가 설날 세뱃돈 받은 것 중에서 조금은 사고 싶은 것을 사도 된다는 이야기 했을  때 나는 남동생과 동네 레코드사에 가서 클래식 테이프를 하나 골랐다. 

‘백조의 호수’ 

내가 어떻게 그 음악을 알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작은 내 방에 앉아 카세트에 이어폰을 꽂고 백조의 호수 노래를 들었다. 조금 무거운 음악이었지만 나는 듣고 또 들었다. 내가 꼭 백조가 된 것처럼 발레복을 입고 온 몸으로 표현하는 발레리나 가 된 것처럼.

-중학교 원서를 넣기 위해 처음으로 증명사진을 찍었다. 동네 사진방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사진기사 아저씨에게 받은 작은 봉투 안에 든 내 사진을 열어 본 후 난 울뻔했다.

내 눈이 짝눈이었던 것이다. 이제껏 자유로운 얼굴 표정으로 웃으며 사진을 찍었기에 보이지 않았던 내 눈. 얼굴의 근육을 자세히 사용하지 않아야 하는 증명사진은 처음이었기에. 왼쪽 눈은 이상하리 만큼 크고 오른쪽 눈은 이상하리만큼 작았다. 세상이 모두 짝짝이가 된 느낌. 아~ 누가 내 눈을 짝눈으로 만들었던가. 그때부터 나는 오른쪽 눈에 쌍꺼풀 라인을 손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지금은 그나마 있던 왼쪽 쌍꺼풀조차 사라져서 두 눈이 비슷한 크기가 되었지만. 아마 두 번째로 내 자존감을 내려가게 한 웃픈 장면이었을지도 모른다.

-내 기억들을 다 나열한다면 아마 장편 소설 정도는 만들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추억 속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남동생과의 장면이다. 

우리 집은 안동 시내 중앙에 있었지만 집에서 시장으로 가는 길은 유흥주점도 많았고 저녁이 되면 꽤나 어두운 거리였다. 가끔 동생과 그 길을 걸을 때면 너무 무서워 손을 꼭 잡고 소리쳤다. 

“죽는 것보다 뛰는 게 나아!” 

누가 먼저 이 구호를 생각해 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도 동생도 그 무서운 그 길을 달리면서 이 구호를 외치면 왠지 용기가 생겼고 아무도 우리를 건들지 못했다. 동생과 나는 어디서든 용기가 필요할 때는 외쳤다. “죽는 것보다 뛰는 게 나아!” 

약을 잘 올렸던 남동생과 화 금방 내는 내가 만나 매일 현실 남매 전투가 있었지만 저녁 늦게 부모님의 심부름을 할 때면 우린 약속한 듯 하나가 되었다. 그 낯간지러운 한 문장을 외치며.


어렸을 적 이야기를 하나 두 개 쓰다 보니 더 많은 기억들이 저를 찾아옵니다. 별 일도 아니었던 일들이 여전히 제 머릿속에 영화 한 장면 한 장면으로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옥이의 그 시절’ 뭐 이런 제목이라도 붙여 줘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렸을 적 이야기를 쓰는 동안 전 참 행복하더라고요. 

시시콜콜한 그 기억이 나를 왜 이렇게 기쁘게 만드는지 모릅니다. 

오늘은 기쁘게 글을 쓸 수 있어서 더 기쁜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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