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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미 Nov 29. 2022

착각

나는 어떤 착각을 하면서 살고 있을까

어렸을 적 나는 종종 이런 착각을 했다. 

혹시 저 남자애가 나를 좋아하는 건 아닌가? 음... 자꾸 나를 쳐다보는 것 같은데.

저 눈웃음은 내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 거지?

하지만 나중에 알았다.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내가 관심 있어하는 사람에게서 바라는 관심이 착각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고등학교 때 수능을 준비하면서 모의고사를 자주 쳤다. 그때마다 내가 모르는 문제들을 대충 찍어서 제출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런 걱정을 했다. 혹시 내가 찍은 문제들이 다 정답이어서 만점을 맞으면 어떡하지? 

역시 그것은 나만의 착각이었다. 대충 찍은 답변들은 어김없이 틀린 답으로 돌아왔다. 

중학교 미술 시간. 선생님은 화가라고 불리는 유명한 분이셨다. 그해 처음으로 우리 학교에 오신 선생님. 

미술 첫 시간에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다음 시간에 그림 그리기를 할 거예요. 각자가 그림을 그리고 그 그림을 보고 소질이 있는 학생들을 따로 뽑아서 미술 특화 반을 만들겠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아빠에게 그림을 꽤나 잘 그린다는 칭찬을 듣던 나는 이렇게 기대했다. 

'그래. 지금껏 아무도 알아주지 못했던 잠재된 나의 미술 능력을 이 선생님은 발견할지도 몰라.'

그렇게 그림을 그렸고 제출했고 나중에 선생님은 열 명이 넘는 친구들을 뽑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안에는 내 이름은 없었다. 나만의 착각 아니 기대였다. 어쩌면 선생님은 나의 숨은 능력을 못 보신 것일 수도 있다. 나는 그 결과와 상관없이 지금도 그림을 잘 그리지는 못하나 그리기를 좋아한다.

교회에서 자주 노래를 부른다. 나 역시 노래를 좋아하고 잘 부르고 싶다. 하지만 예의범절의 고장 안동에서 태어나서 그런지 그 음악적 감성을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눈을 감거나 몸을 흔들거나 아니면 노래 자체에 감정을 넣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오히려 노래부를 때 내 몸은 그저 한 개의 마른나무 대기가 된다. 그렇지만 노래를 부를 때마다 나는 이런 기대를 한다. 

'아무도 이야기 안 했지만 사실은 내 목소리가 엄청 좋은 목소리는 아닐까? 조수미처럼 고음까지 올라갈 수 있는 목소리인데 내가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교회에서 노래를 부를 때마다 그런 칭찬을 기대한다. '목소리가 너무 좋으세요.' '좀만 더 연습하면 정말 좋은 목소리가 될 것 같아요.' 그래서 가끔은 성악을 전공한 친구 앞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혹시나 나의 숨은 잠재성을 발견하게 될까 봐. 하지만 아무도 내게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결국 그것은 나의 희망적인 착각이자 기대였다. 


살면서 많은 착각을 하면서 살아간다. 많은 기대를 하고 살아간다. 하지만 현실을 직시해 보면 나는 그저 평범한 사람일 때가 많다. 

글을 쓴다. 내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글이 되기를 기대한다. 때로는 갑자기 내가 유명한 작가가 되지 않을까 하는 착각을 하며 글을 쓴다. 물론 현실은 아주 냉철하다. 그런데 때로는 그런 착각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착각을 또 다른 말로 생각해 보면 꿈, 바람이 아닐까. 나는 그런 바람을 가지고 글을 쓰고 언젠가 그 꿈은 그 바람은 현실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그림을 잘 그리지는 못하지만 여전히 그림을 보면 가슴이 쿵쾅거리듯이. 글을 쓰면 마음이 평안해지고 작가가 되는 꿈을 꾸면 짝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 여중생처럼 설레니  착각, 바람, 꿈 그 자체로 만족스럽다.


오늘도 컴퓨터 앞에 앉는다. 드라마에 나오는 그 사랑스러운 주인공처럼 나는 이 세상의 주인공이 되어 글을 쓴다. 행복한 착각을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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