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포근한 기억 하고픈 순간
아이들이 어렸을 적(초등학교 때쯤) 내가 가장 좋아하던 장면이 있었다.
바로 아이들이 빨래를 너는 모습이었다. 지금이야 부탁 부탁을 해야 가끔 빨래를 널어주지만 그때만 해도 아이들에게 빨래 널기는 놀이였다. 우리 집 뒷마당은 들풀과 바나나 나무 그리고 이름 모를 나무들로 가득 차 있었는데 맑은 햇살 아래 아이들이 빨래를 널고 있는 모습을 보면 나는 아이들의 뒷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사진을 찍곤 했다. 그 모습을 고이 간직하고 싶었다.
아이들이 이제는 8학년 10학년이 되었다. 아이들이 크면서 달라진 것은 사진 찍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내 핸드폰에는 아이들 사진 대신에 다른 인도 꼬마들 사진이나 동물 사진 아니면 남편과의 사진들로 가득 찼다. 그래도 요즘 내게 가장 기억하고 싶은 따뜻한 순간이 또 있다.
큰 아이가 인도에서 10학년이 되면서 나름 수험생 엄마가 되었다. 인도에는 10학년 그리고 12학년 이렇게 국가시험이 있는데 그것을 통과해야 공부를 계속할 수 있다. 그래서 큰아이 성민이도 학교 공부를 하고 부족한 것은 과외를 받는다. 매일 학교 수업이 끝나면 오후 늦게 과외를 받으러 가는데 그때는 내가 운전사가 된다.
자동차는 아니고 오토바이 운전사. 인도에 와서 3년 만에 오토바이를 타기 시작했고 사실 작년까지만 해도 겁이 많았던 나는 집 근처만 타고 다녔다. 하지만 매일 과외를 받으러 가야 하는 아이를 남편이 매번 데려다줄 수 없었기에 나는 용기를 내어 오토바이를 운전해서 아이를 데려다주고 있다.
처음에는 많이 겁이 났지만 계속 오토바이를 운전하다 보니 이제는 시장에 가는 것도 돈을 찾으러 가는 것도 씩씩하게 혼자 다니는 오토바이 타는 여자가 되었다.
오토바이를 운전해 성민이를 데려다 줄 때면 꼭 성민이는 얼굴을 내 어깨에 기댄다. 아이는 훌쩍 커버렸고 나는 여전히 작은 키이지만 아이는 허리를 구부려 내 어깨에 머리를 데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한다. 어느새부터인가 그 순간이 내게 가장 행복한 순간이 되어버렸다. 학교 선생님들이 이유 없이 친구들을 혼냈다는 불평을 듣는 것도 며칠 전 머리 길이 검사에서 걸리지 않아 정말 다행이었다는 이야기도 또 자기가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며 내게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는 아이의 목소리도 내게는 너무 소중한 순간이었다.
하루는 먼지 나는 인도 시골길을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며 성민이에게 이야기했다.
"성민아. 엄마가 예전에는 너네가 빨래를 널어주는 모습이 너무 좋았어. 그때가 정말 행복했거든. 근데 요즘은 다른 행복이 생겼어. 진짜 좋은 순간이 있는데 너 혹시 알아?"
그러자 뒤에 앉은 성민이가 소리쳤다.
"엄마. 내가 엄마 뒤에 앉아서 엄마한테 기댈 때 아네요?"
"와~ 대박. 어떻게 알았어? 난 네가 모를 줄 알았는데. 와 진짜 신기하다. 맞아 엄마는 지금 네가 엄마에게 얼굴을 기대고 이야기할 때가 가장 행복해."
그러자 성민이가 다시 말했다.
"내가 엄마를 모를까 봐요. 나는 엄마에 대해서 다 알아요."
해가 뉘엿뉘엿 지던 저녁, 나와 성민이는 오토바이를 타고 달렸다. 나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성민이가 내 어깨 위에 자신의 얼굴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나의 작은 어깨가 너의 삶 속에서 잠깐의 휴식터가 될 수 있다면 그것 자체로 행복하다. 내가 오랬동안 기억하고픈 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