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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풍경 Nov 05. 2021

알리고, 벗어나세요

가정폭력 피해자를 향한 경고


     잘 지내다가도 종종 생각나는 분이 있습니다. 아마도 코로나19로 인한 봉쇄 조치 기간이 길어지면서 가정폭력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는 기사를 읽은 후 부터인 것 같습니다. 밤새 배우자에게 시달리다가 죽임 당할 것 같아 몸만 빠져나와, 어디 갈 곳이 없어 예전에 부부 상담을 위해 방문했던 인연에 의지해 상담소를 찾아온 분이 있었어요. 

절대로 집으로 돌아가지 마시라고 말씀드리며 따뜻한 차 한 잔 대접하고, 이야기를 들어드리고, 다른 전문가분께 연결해드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는데 그분이 떠오릅니다. 친정으로 전화해드릴 테니 집 말고 친정으로 피하시라 해도, 부모님도 그에게 죽임 당할 거라며 고집을 피우고 못 간다 하셔서 안타까웠습니다. 이제 오늘 돌아가면 아마 죽게 되겠구나 싶다며 벌벌 떨던 손이 기억납니다. 팔방으로 전화를 돌려서 기어코 그날 시간이 되시는 전문가에게 연계해드리고 헤어지면서도 배우자 곁으로 돌아갈 것만 같아 걱정이 많이 되었습니다. 부디 그날 적절한 도움과 조치로 가해자로부터 분리되었길 바라지만, 이후로 소식을 알 길은 없었습니다.





벗어나지 못하거나, 돌아가거나

 

   반복되는 폭력의 쳇바퀴 내에서 벗어나려는 생각이 없어 보이는 피해자의 모습에 의문을 표하거나, 이혼하지 않는 피해자를 문제시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토록 공포스럽다면 당연히 도망쳐야 하고, 그토록 징그럽다면 이혼해야 마땅하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가 모르는 점들이 있습니다. 눈에 드러나는 신체적인 위해나 폭력 외에도 가정폭력의 범위는 넓습니다. 지속적으로 비인격적인 대우와 모욕감을 통해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외출이나 대인관계를 통제하거나 경제권을 제한하고 의심하는 등의 정서적 경제적 학대, 눈빛이나 제스처 등을 통한 협박, 자녀를 볼모로 삼는 것 등. 보다 포괄적인 내용을 가정폭력으로 봐야 합니다. 보통 이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이뤄지기도 해요. 


     그리고 피해자는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더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자율성이 사라진 상태일 수 있어요. 벗어날 생각조차 이미 하지 못하는 단계여서 외부의 도움으로 일시적으로 분리가 되더라도 스스로 배우자에게 돌아가기도 합니다. 드리고 싶은 말씀은 그렇다고 해서 피해자분들을 비난하거나 책임을 묻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고, 자칫하면 2차 가해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피해자들의 선택에 달리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

[가정폭력 여성 행위자 상담*치료프로그램 개발 실무자 매뉴얼],2015. 여성가족부 연구 보고서


   이미 여성가족부 매뉴얼에서는 가정폭력 피해자가 그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하여 보고서를 내놓은 바 있답니다. 몇 가지 항목으로 분류를 하여 발표되었지만 요지는 이미 피해자분들은 오랜 폭력의 경험에 의해 공포감, 무력감, 이차 보복의 두려움, 종속성 등을 가지게 되어 스스로 벗어날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1. 두려움


-경제적 능력이 없다


-아이를 키울 방법이 없다


-아이를 두고 떠나면 아이가 보복당할 것이다


-나를 끝까지 찾아내어 보복할 것이다


-아이와 함께 떠나 편부모 가정이 되면 아이가 원망할 것이다





2. 고립과 무기력


- 도움을 요청할 이가 없다


- 친구나 가족도 괴롭힘 당할 것이다


- 혼자서는 나는 아무것도 못 한다


- 혼자서는 결정 내리지 못한다





3. 개인의 그릇된 신념과 헛된 희망


-그래도 결혼을 유지하는 게 낫다


-배우자의 사과 또는 약속을 믿는다


-이혼하면 타인에게 비난받을까 두렵다


-식구들 또는 부모님의 실망이 두렵다


-종교적 이유로 이혼할 수 없다






또 다른 원인, 가스라이팅


    배우 서예지 씨가 '가스라이팅'이라는 용어와 함께 기사에 많이 노출되기도 했었지요. 최근에는 직장에서의 갑을관계 상에서의 가스라이팅 등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서 관련 정보가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바람직하다 생각합니다. 정보 노출이 많아지면 적어도 을의 위치에서 모르고 당하던 분들이 드러나기라도 할 테니까요. 하지만 가정 내에서의 이러한 역학관계는 드러나는 것부터 어려울 수 있어 안타까워요. 가스라이팅이 교묘하게 이뤄지는 것 또한 가정폭력 피해자들을 얽매는 큰 요소입니다. 


    가정폭력을 휘두르는 쪽은 우위를 점하기 위하여 지속적으로 피해자를 세뇌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 없이 너 홀로 살 수 없다. 너는 쓸모없는 사람이다. 쓸데없이 생각 마라. 네가 하는 생각이란 게 다 그따위다, 너무 예민하고 피해의식이 심하다.' 이러한 메시지를 끊임없이 폭력을 행사하는 순간과 그렇지 않은 순간에 쏟아내지요. 그 가운데 피해자는 어느 사이 주변인으로부터 고립되고 사회적 지원망과 도움 요청이 가능한 길이 전무케 됩니다. 이에 따라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더욱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고요. 

    위에 언급한 여성분의 경우 배우자의 강요로 핸드폰을 바꿔야만 했고 기존의 관계망이 다 끊어진 상태였습니다. 당시 배우자의 '넌 생각하지 마. 넌 멍청하니까.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해'라는 메시지와 '넌 도대체 머릿속에 아무 생각이 없냐? 시키는 대로만 하게'라는 상충된 메시지로 인해 그녀의 혼란은 극에 달해있었고 학습된 무력감과 절망이 깊었습니다. 가정폭력의 무서움은 신체적 위해서 뿐 아니라 한 인간의 지성과 인격을 뿌리째 뭉개버린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그리고 항상 그 외의 가족들... 자녀 등의 이차 피해자가 존재하고 그늘이 또 다른 그늘을 만든다는 점 역시 가정폭력이 근절되어야 할 이유입니다.




고백하는 여성, 그리고 경고


   책 한 권을 소개해요. 모간 스타이너가 TED를 통해 폭력의 피해자로서의 경험과 벗어나기까지 과정을 생생한 목소리로 전합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그녀가 고백한 이야기를 출판한 책을 읽어보셔도 되겠습니다. 

Leslie Morgan Steiner, 가정폭력 피해자가 떠나지 않는 이유,  TED x Rainier  2012년 11월.


레슬리 모건 스타이너, 사랑에 미치지 마세요, 필요한 책, 2016.09.09.




알리고, 벗어나세요


      우리나라에서는 여성 긴급전화 1366 센터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보호받고 도움 얻을 수 있는 가족과 지인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지만 여의치 않다면 1366 센터 등을 통해 보호와 쉼을 제공받을 수 있어요. 실제로, 가정폭력의 피해자인 여성들이 가장 위험한 순간은 가해자로부터 피해자가 떠나려고 시도하는 때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간 스타이너를 비롯하여 많은 전문가들은 동일한 목소리를 냅니다. 이 순간, 주변에 도움을 청하세요.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세요.


출처: 여성폭력 Zoom-in (공공누리 제4유형 요건에 따라 이용하였습니다)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가정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라면 임시보호소나 주거지원, 자녀의 입학 및 전학 지원 등을 비밀유지 하에 가능하다는 생활법령이 있으므로 1366 센터 등을 통하여 도움을 요청하여 보시길 바랍니다.

정보출처: https://easylaw.go.kr/CSP/CnpClsMain.laf?popMenu=ov&csmSeq=685&ccfNo=3&cciNo=2&cnpClsNo=1



도움이 필요하다면 다음과 같은 상담 기관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 www.stop.or.kr

건강가정 지원센터 1577-9337

한국 가정 법률상담소 1644-7077

한국 남성의 전화 02-2653-9337

여성 긴급전화 1366(중앙센터) 또는 지역번호+1366(해당 지역센터)




 

                         알리고, 벗어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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