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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풍경 Nov 17. 2021

복지의 사각지대, 시청각장애인

영화 '내겐 너무 소중한 너' 

   우리는 대부분 시청각장애라고 하면 백이면 백, 헬렌 켈러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그는 먼 나라 사람이고, 대한민국에도 분명 존재할 시청각장애인이 우리 현실 속에서는 낯선 이웃의 자리에 머물러 있지요. 2021년, '내겐 너무 소중한 너'라는 따뜻하고 귀여운 영화가 개봉되며 시청각장애인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습니다. 저 역시, 고백컨대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대한민국에 시청각장애인이 몇 명 있는지, 이들의 삶의 질과 복지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전혀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갑자기 영화에 자극받아 시청각장애를 가진 분들과 촉수어에 대해 찾아봤다 하면 뜬금없게 느끼겠지만 사실입니다. 





    문외한인 제가 궁금해 찾아볼 만큼, 이 영화는 뻔한 설정과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있음에도 배우 서연 양과 진구의 케미가 매력적이었습니다. 진부한 방식으로 감동을 불러내지만, 알맹이는 진부하지 않습니다. 아니 진부할 수가 없습니다. 한국 사회의 시청각장애인에 대해 알려진 게 그다지 없으니 말이지요. 감독이 영화를 통해 시청각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넓어지길 기대했다지요. '내게 너무 소중한 너'는 관객의 마음에 그럴만한 충분한 울림을 줍니다.


영화 '내게 너무 소중한 너' 스틸 컷
건달에 빛쟁이인 재식(진구 역)은 생각지도 못하게 시청각장애를 가진 7살 소녀 은혜(서연 역)의 가짜 아버지 행세를 하며 돌연 세상을 떠난 은혜의 엄마가 남긴 재산을 어떻게든 챙겨 위기를 빠져나가보려고 한다. 처음에는 돈 때문에, 그리고 서서히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지며 미운 정이 들어서, 은혜의 이모가 있다는 시골로 찾아가는 여행길 가운데 마음으로 은혜와 가까워져 가며 가족애를 느끼게 된다. 은혜와 재식은 끝까지 함께 할 수 있을까... ?


    영화의 스토리는 쉽습니다. 그러나 스토리가 풀어내는 시청각장애인의 현실은 쉽지가 않네요. 시각장애와 청각장애가 합쳐진 장애가 아니라 제3의 전혀 새로운 장애라는 시청각 장애. 이전까지는 저도 이를 중복장애라고만 여겼었어요. 그런데 은혜가 특수학교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교육과정에서는 눈이 보이지 않아서, 청각장애인을 위한 과정에서는 귀가 들리지 않아 어느 수업에서도 적응 못하는 것을 보고 아차 싶었습니다. 음성지원 서비스는 청각장애 때문에, 문자나 수어 통역 서비서는 시각장애 때문에 소용이 없습니다. 시청각장애인에게는 오로지 촉각이 세상과의 소통을 가능케 하는 온전한 창구랍니다.


영화 '내겐 너무 소중한 너' 스틸 컷.


     더해서 시청각 장애인분들은 개인별로 시각과 청각의 손실의 정도 차이가 각양각색이고 여기에 환경적 요건 등에 따라 처지와 삶의 질 스펙트럼의 범위가 매우 넓답니다. 그래서 이해와 도움의 방식도 케이스 바이 케이스. 개별적으로 접근해야만 한다고 해요. 그런데  대한민국은 시청각장애의 법적 정의가 내려지지 않은 상태로서 독립된 장애유형으로 규정되지 않았기에 이들만을 대상으로 한 지원이 없고, 전문교육기관이 없다는 사실! 이 때문에  감독과 제작진이 영화 제작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해요. 국내 시청각장애 전문기관이나 전문가가 전무해 전문가의 조언을 제대로 받기 어려웠다는 것이지요.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청각 장애를 중복 장애가 아닌 제3의 새로운 장애로 봐주세요


   시청각장애인 중에는 동시에 장애를 얻었거나, 시각장애였다가 이후 청각장애를 가지거나 청각장애였다가 시각까지 잃게 되는 경우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처럼 중복 또는 동반장애로 알고 계셨다면, 이 글을 읽어주신 이웃님들은 앞으로는 전혀 다른 유형의 장애라는 점을 기억해 주십사 부탁드립니다. 시청각장애를 흔히 색의 혼합으로 비유하여 설명해 주시더라고요. 빨강과 파랑, 또는 노랑과 파랑을 섞으면 보라나 초록의 독립적인 색이 만들어지지요? 그렇듯 시청각장애라는 전혀 새로운 유형의 장애에 대하여 법에서 명확하게 규정이 되어야만, 이를 근거로 복지의 사각지대에 계신 시청각장애인분들이 누려야 할 권리를 찾을 수 있다고 합니다. 다행히 전혀 법률적 근거가 없던 것에서 2019년 12월, 장애인복지법 개정을 통하여  22조 5항에 시청각장애인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직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독립법안은 없습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시각장애인과 시청각장애인(시각 및 청각 기능이 손상된 장애인을 말한다. 이하 같다)이 정보에 쉽게 접근하고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점자도서, 음성도서, 점자정보 단말기 및 무지 첨자 단말기 등 의사소통 보조 기구를 개발·보급하고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의사소통 지원 전문 인력을 양성ㆍ파견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장애인 복지법 22조 5항


밀알복지재단에서 독립법안 제정 위한 서명운동 진행 중입니다.




    우리나라의 시청각장애인 자조 단체였던 '손잡다' 시청각장애 당사자인 조원석 회장이 2017년 시작하여  올해 3월 협회명을 '한국시청각장애인협회 Korea Association of the  Deafblind' 변경하고 한국시청각장애인의 대표기구가 되고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처음은 조원석 회장만이 시청각장애 당사자이고 8명의 통역 및 자원봉사자분들로 구성된 자조 단체였지만 2020년 12월에는 120여 명으로 회원이 늘었고, 올해 회칙 개정을 통해 단계 도약을 꾀한 것이지요. 현재는 장애인 당사자, 설리번 회원(통역 등 당사자의 소통을 도울 수 있는 사람)과 단체 회원이 함께 시청각장애인의 복지와 권익을 도모하는 단체가 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해요.

    장애 당사자이기도 한 조원석 회장은 헬렌 켈러 법 발의에 대해서도 시청각장애 당사자들이 목소리를 크게 내고, 이것이 전달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는데요. 법률 제정이 비록 중요하나 아쉬운 점이 있음을 인터뷰에서 지적했어요. 이유는 "법안 발의 과정에 당사자들의 의견은 배제되었고, 내용도 부족한 면이 있어서"(김철환, 시사주간 오피니언 | 소통 칼럼 | "시청각장애인 협회를 아시나요?" 2021.06.23)라고 합니다. 위의 기사를 읽어보시면 어떤 부분이 부족하다는 것인지 조금 더 공감이 갑니다. 

시청각장애인분들이 소통하고 보다 편히 생활할 수 있는 현실적인 지원이 절실해 보입니다. 시청각장애에 대한 관심이 최근 늘어남은 반갑지만 법 제정이나 복지관련 요구 현장 중심에 당사자들이 아닌 전문가 분들의 목소리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전문가분들도, 시민들도 시청각장애 당사자들이 중심에서 의견을 반영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주는 것이 진정 필요한 도움이라고 합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큰 목소리를 내기에는 아직 조직 규모가 작고, 운영비의 어려움도 있다고 하니 관심 있으시거나 후원 원하시는 분은 페이스북 방문하시는 것도 괜찮을 듯싶습니다. 




   1개월간 외출 못하는 시청각장애인 비율, 전체 장애인의 세 배. 의무교육받지 못한 시청각장애인 비율 전체 장애인의 세 배라는 실태조사 결과가 많은 것을 이야기해 주는 듯합니다. 개인적 의견이지만 이 데이터만으로도 법안에서 중점을 둬야 할 지점이 보이는 것 같아요. 특히 촉수어에 대해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수화를 손으로 더듬어 소통을 하는 개념 이상의 체력 소모가 크고 어려운 방법이라고 해요. 수화를 하는 데 있어서도 전달받는 분이 손으로 이를 느끼기 위해 접촉하기 때문에 움직임의 제약이 있어 힘이 더 들고, 청각장애만 있는 분들은 시각을 통해 상대방의 입모양이나 표정, 몸짓을 통해 부가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시청각장애인들은 그렇지 못하죠. 때문에 촉수어로 통역사분들이 분위기, 어감 등까지도 전달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촉수어라고 할 수 있다네요. 나면서부터 또는 후천적으로 장애를 얻었다 할지라도 아주 어린 나이에 시청각장애인이 되신 분들은 수화를 새로이 배우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니 이마저 진입장벽이 높을 듯한데... . 실제로도 기본적인 욕구 전달 외에 소통을 가족과도 제대로 못하는 장애 당사자분도 많다고 합니다.


    반면 조금이라도 시각이나 청각 일부가 남아 있거나, 처음에는 시각이나 청각장애만 있다나 이후 시청각장애로 되신 분들의 경우는 점자나 수화 등을 이미 익혀서 촉수어 사용이 보다 수월합니다. 또 시력이 아주 나쁘다 해도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경우도 소통에 훨씬 도움 되고요. 필담을 보조 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하는 등 시청각장애인분들의 소통 방법은 복합적이었습니다. 올해 7월, 제주 농아복지관에서 시청각장애와 관련해 세미나가 열렸어요. 여기에서 시청각장애 아동의 교육의 방향성, 중요도, 지원 방안 등에 대해 다뤄졌다고 하는데 시청각장애의 특성 탓에 다른 장애 아동의 경우도 그렇지만 교육의 중요성이 삶의 질을 좌지우지할 만치 극도로 중요하겠다는 생각 또한 들었답니다.


영화 '내겐 너무 소중한 너' 스틸 컷.



눈물 콧물 웃음의 삼단 콜라보를 선사할 코믹 뭉클 콤비! [내게 너무 소중한 너]의 피 안 섞인 부녀의 이야기, 한 번 감상해 보시고, 코로나로 인해 지난 2년간 접촉이 금지되고 비대면이 강조된 제한 상황 속에 더욱어려움 겪고 계실 시청각장애인분들 응원하여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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