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신병에 걸린 뇌과학자입니다' 북 리뷰
우리는 모두 부서졌고, 빛은 그 틈으로 들어온다.
We are all broken, that's how the light gets in.
내 뇌는 모두 부서졌고, 빛은 그 틈으로 들어온다.
여기에 정신질환자의 의식의 흐름과 혼란을 생생히 전해주는 책 한 권이 있습니다. 나아가 정신질환자의 가족들이 품게 마련인 의문, 그가 감정이나 공감 능력이라고는 본래 없었던 사람처럼 구는 이유, 누가 봐도 정상적이지 않은 말과 행동을 하면서도 이상을 전혀 자각하지 못하는 듯 보이는 이유를 객관적으로 이해시켜주는 책이기도 합니다. 미국 국립정신 보건원의 인간두뇌수집원 원장이기도 한 뇌과학자, 바버라 립스카의 [나는 정신병에 걸린 뇌과학자입니다]를 소개해요.
저자는 인간두뇌수집원 원장으로서 활발히 활동하던 2015년,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몬태나 주에서 열리는 뇌 연구 동계 콘퍼런스의 의장으로서 환영 연설을 해야 했고, 오랫동안 꿈꿔왔던 철인 3종 경기의 출전을 준비 중이었지요. 당시 그녀는 64세였습니다. 그러나 모든 그의 계획은 갑작스레 찾아온 사건으로 멈추고 맙니다. 뇌종양! 몇 년 전 극복했던 피부암, 흑색종이 뇌에 전이된 것입니다.
인간을 특히 인간답게 만드는 부위는 전두엽입니다. 뇌의 가장 큰 부분이자 대뇌피질(뇌의 바깥 표면)에 위치했지요. 의식과 상상, 인지와 감정의 영역을 관장합니다. 전두엽에서도 그중 앞부분, 즉 전두피질이야말로 고등의 진화를 보이는 곳입니다. 저자는 '인간의 본질'을 결정하는 부분이라고 정의하죠. 특히 정신질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전두피질의 더 앞 쪽, 전전두피질 부위입니다. 이렇게 전두엽은 정보처리와 판단, 사고와 기억 및 문제 해결, 집행 및 통제, 예측과 억제 등의 인간으로서 존재하기 위해 필수인 과제들을 수행하는 중요한 뇌 부분입니다. 전두엽이 손상된다면, 인간성이 상실되고야 만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하필 그녀의 전두엽과 뇌 전체가, 종양에 의해 공격받고 맙니다. 병든 뇌로 인하여 정신이상의 상태를 상당 기간 경험한 그녀는, 아래와 같이 회상합니다.
"도저히 의미가 파악되지 않는 세계. 과거는 순식간에 잊히고, 미래는 계획할 수도 예측할 수도 없으며, 어떤 논리도 없는 세계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나는 몸소 경험했다." ( p.322 )
뇌종양으로 인해 공격받고 방사선과 면역치료요법, 신약 임상 시험 등으로 인해 혹사당한 뇌는 그녀를 그녀가 '아니게' 만들었습니다. 심술궂고 비판적이며 화를 내고 고집을 꺾지 않는, 딴판으로 변한 바버라에게 가족들은 상처받고, 다시는 다정한 아내 또는 엄마를 볼 수 없을까 봐 겁에 질립니다. 바버라는 조현병이나 편집증 환자들과 같이 주변의 의도를 의심하고 음모론에 빠집니다. 또한 알츠하이머 환자처럼 갑작스레 익숙했던 장소를 낯설어하며 퇴근길에 헤매고, 복잡한 절차나 계획성을 요하는 일들을 체계적으로 수행할 능력과 산술 능력을 잃어버렸습니다.
남편의 연락처가 기억나지 않아 폰에서 찾으면 된다는 사실을 떠올리지만 정작 스마트폰에서 남편의 전화번호를 찾는 법을 통 몰라서 당황합니다. 요의를 미리 느끼고 조절할 능력이 사라져, 반바지에 소변을 보며 동네를 가로질러 걷습니다. 특히 주목할 것은, 그녀가 자신의 상태에 위기감을 느끼지도, 타인의 눈초리를 의식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이지요. 게다가 바버라는 가족들에게 지독하게 소리 지르고 공격하면서도 그들의 눈물에 되려 의문을 느낄 정도로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그녀는 병이 한창 진행될 당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일절 자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열정적인 스포츠인이었고, 그녀의 가족 또한 그러했습니다. 30킬로미터 거리의 출근길을 그녀는 자전거로 달리고, 사무실에서 온갖 복잡한 업무를 처리한 후 다시 자전거로 30킬로미터를 달려 퇴근할 정도였지요. 출근 전의 러닝 역시 중요한 그녀의 일과였습니다. 그녀는 가족들에게 감정을 솔직하게 늘 표현했고, 가족의 정신적 지주이자 조정자였습니다. 그런데 뇌가 망가진 그녀는 그녀 다운 구석의 그 열정이, 고집스럽고 강한 기질로서 흑화 되어 지독한 폭군처럼 가족들에게 행동하게 됩니다. 끝없이 불평하고 화내며, 비판하고 심술궂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모든 것을 그녀가 해야만 직성이 풀렸습니다. 그런 상태는 가족들이 그녀를 제대로 돕지도, 병증을 정확히 파악할 수도 없게 만들었답니다. 더 심하게 충돌하지 않고, 자신들이 그녀로부터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해 가족들 스스로 한발 물러섰기 때문이죠. 더하여 가족들이 모두 과학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바버라의 정신이상 상태에 대해 정확한 인지가 늦어진 이유는 그들이 '가족'이었기에 그렇습니다. 즉 첫 번째, 아무리 이상해졌다 해도 본래 기질에서 고약한 방향으로 업그레이드된 흑화 버전의 그녀이기는 했습니다. 두 번째로, 가족들로서는 사랑하는 이의 변화를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기에 그녀의 변화를 객관적으로 평가하지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나 동료가 갑자기 털썩 쓰러지고 몸 한쪽이 마비된다면 대부분은 그것이 뇌졸중 증상임을 알아차리고 즉시 응급 전화를 걸 것이다. 이런 급성 증상은 알아보기 쉽다. 그러나 행동의 변화는 그 위험이나 심각성을 알아차리고 인정하기가 훨씬 더 어려울 수 있다. 점진적 기억 상실이나 육체적 능력에 일어나는 작은 변화처럼 더디게 진행되는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대부분의 경우 그저 이렇게 중얼거릴 뿐이다. "엄마는 그냥 늙어가는 거야. 깜빡깜빡하는 것도 당연하지." 혹은 "어머니는 관절이 아파. 그래서 우리에게 더 이상 다정한 애정 어린 태도를 보여주지 않는 거야." 내가 경험한 것과 같은 성격의 왜곡(분노, 짜증, 자제력 상실, 공감 결여)은 뇌에 심각한 물리적 문제가 생겼다는 신호일 가능성이 있다. 이를 받아들이고 의사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인정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다.
p.327~32
위와 같은 이유로 병이 지나치게 진행된 후에야 환자들이 치료기관을 찾기도 하는데 이는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특히 조현병은 초기에 대응이 빠를수록 여러 가지 손실을 최소화하고 좋은 예후를 기대할 수 있기에 그렇습니다.
저자는 전두피질이 조현병 발생의 핵심 부위임을 밝힌 립스카 모델 the neonatal hippocampal lesion model of schizoprenia을 발표하여 신약 개발의 초석을 다졌습니다. 특히 조현병과 정신질환의 메커니즘을 밝히는 작업에 긴 세월 헌신해 왔습니다. 그런 그녀가 정작 스스로의 기행을 정신과적 증상과 전혀 연결하지 못했고, 가족과 주변인의 당황스러워하는 반응에도 불구하고 전혀 의구심을 느끼지 않은 것이 의아합니다. 어느 날은 저자가 보라색 염색약을 머리에 바르고 헤어캡을 쓴 채 달리기를 몇 시간 동안 지속하다 집에 돌아온 사건이 있습니다. 그날 그녀는 염색약이 온몸에 흘러내려 기이한 모양이었는데, 단지 거울을 보고 '씻어야겠다'라는 건조한 반응이었어요. 그 광경을 목도한 남편 미레크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는데도 말이지요.
그 외에도 저작 중의 독백체로 이뤄지는 두서없고 비논리적인 사고의 흐름과 전환의 묘사는, 정신증을 앓고 있는 이들의 머릿속을 생생히 드러내 보여줍니다. 정신질환자의 가족분은 그러한 의식의 묘사를 작품 속에서 읽어내리며 위안을 받으실지도 모릅니다. 도대체 이해되지 않던 가족에게 미약하게나마 한 뼘 다가갈 실마리를 얻었다고 여겨질지도요. 더군다나 내 가족이 그렇게 고약하게 굴고 거짓 투성이인 게, 의도 없는 비틀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건, 생각지도 못한 위로가 됩니다. "왜 그러는 거야? 정말 기억이 안 나? 왜 날 이렇게 괴롭혀?"라고 물어보며 고통스러워하던 분이 계시다면 '의도 없음'이라는 지점에서 약간의 짐을 덜으실 듯합니다. 대부분의 심각한 정신질환에 있어서 인지장애는 동반되곤 하는데, 가족으로서는 특히나 이 손상을 인정하는 게 어렵습니다. 그래서 환자와 가족의 기억과 판단이 어긋나는 경우, 환자가 주장하는 왜곡 되거나 허황된 내용이 그에게는 진실일 수 있음을 가족의 입장에서는 상상도 못 할 수 있습니다.
그녀 역시 자각 없기는 마찬가지였어서, 자신의 어그러진 상태를 서서히 인지하기 시작한 것은 신약 임상시험에 참가하여 치료가 성공할 시점, 즉 뇌에 자리한 열여덟 개의 종양이 대부분 사라지거나 쪼그라져 갈 무렵이었다고 그녀는 고백합니다. 자신의 경험을 들어 저자는 많은 정신질환자들이 병식-자신의 병 상태에 대한 인식, 즉 증상을 포함한 스스로의 생각과 행동 감정의 원인을 이해하는 상태-이 없거나 낮은 것을 병의 양상으로 봐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조현병과 양극성 장애 환자가 자신의 상태를 파악하지 못하는 것은 처음에는 부인이나 대처 기제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사실 그보다는 그 병 자체가 발현되는 양상에 가깝다. 조현병 환자의 약 50퍼센트와 양극성장애 환자의 약 40퍼센트는 스스로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자신의 상태를 제대로 인지하지도 못하고 진단을 받아들이려 하지도 않는다. 이들은 환각이나 망상을 경험해도 그것을 자기 뇌에 문제가 생겼다는 신호로 보지 않는다. 환청을 듣거나 자기 자신을 신이라고 믿는 가장 극적인 증상인 경우에도 환각을 현실과 구분하지 못한다. 조현병 환자와 양극성장애 환자 가운데 질병 인식 불능을 보이는 사람들은 자신이 병에 걸렸다는 것을 믿지 않으므로 정신의학적 치료에도 격렬히 저항하는 경우가 많다. 처방된 약물을 복용하자 않거나 행동치료에도 참여하지 않을 수 있다.
p.173~174
위와 같은 이유로 조현병 환자 가족의 역할은 중요합니다. 가족치료나 가족교육, 자조모임 등에 가족이 협조적이면 치료과정이 보다 수월하게 진행됩니다. 또한 비록 예후가 좋지 않더라도 환자가족을 위한 지원과 지지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경우에 따라 병식이 없는 당사자보다 가족이 오히려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길어야 4~6개월의 생존을 기대하는 막다른 상황 속에서도, 저자가 보여준 생에 대한 강인한 의지와 가족들의 헌신은 감동적입니다. 물론 이들에게는 보다 유리한 요소가 몇 가지 있었습니다. 가족 구성원 모두 의사이자 과학자였기에, 정보 수집이나 새로운 치료 기회를 얻기에 유리한 고지에 있었지요. 또한 본인을 포함해 모두가 열정적으로 싸우는 스포츠인들이었기에 원하는 바를 얻기까지 달려들 근성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남 탓하거나 책임을 회피하는 이 하나 없이 사랑으로 똘똘 뭉친 화목한 가족이었습니다. 긍정적 자원이 깔려 있었지요. 이러한 저자의 가족들의 사랑과 인내심은 제게 깊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센터에서 근무하며 가족의 불협조로 손 놓게 됨을 보고 탄식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녀가 훌륭한 엄마이자 아내이자 한 사람이었기에 가족들이 그녀에게 다정했겠지'라고 생각해 보지만, '긴 병에 장사 없다'라는 속담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만치 그녀와 가족 간의 유대감은 특별합니다. 뇌종양 투병이 암과의 처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이미 유방암과 흑색종을 극복했고, 이제 뇌종양을 이겨내고 있습니다. 지금껏 생존자로서 투쟁해오고 있습니다. 세 번의 암 투병 과정 가운데 무릎 꿇을 만한 지점은 넘치고 넘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며 버텨온 바버라 립스카와 그녀의 가족은, 이제 질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희망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투병하며 랜스 암스트롱의 [이것은 자전거 이야기가 아닙니다]의 문장들을 떠올리며 투지를 얻습니다. 그래요, 가족들이 아무리 도움이 되었다 한들, 그녀 스스로가 그토록이나 탄탄히 굳건한 의지로 싸워왔기에 희망의 꽃이 피어날 수 있었던 거지요. 당사자의 투쟁의지란 이토록이나 중요합니다. 내 병의 치료 과정에서 나는 구경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암스트롱은 "당신이 당신 자신에게 최고의 옹호자가 되어야 한다"라고 힘주어 이야기했다. 의사나 가족이나 또 다른 누군가에게만 의지해서는 안 된다고. 아무리 아파도 지쳤더라도 자신을 보살피는 일의 꼭대기에는 언제나 당신이 있어야 한다고. 당신의 병과 진단에 관해 배울 수 있는 것은 모두 배우고, 최고의 의사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고, 의사가 당신에게 주는 약과 그가 하는 치료가 정확히 무엇이며 당신에게 주는 약과 그가 하는 치료가 정확히 무엇이며 그 목적은 무엇인지 밝혀내고, 의사가 말하는 내용에 대해 끊임없이 조사하고 질문하고 점검하고, 제2의, 제3의 의견을 구하라고. 이 모든 것은 당신에게 달렸다고. 궁극적으로 당신의 건강을 책임질 사람은 당신을 사랑하는 가족들도, 당신이 살아남기 원하는 의사들도,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이라고. 물론 도와줄 사람들이 필요하지만, 결국은 당신 스스로 뛰는 경기라고.
p.111~112
의지를 다해 모든 일을 겪어내며 저자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볼 때, 마당의 관목에서 떨어진 꽃잎들이 바닥에 흩어져 있는 것을 볼 때마다" 경이와 감사를, 행복을 읊조리게 됩니다. 훌륭한 스포츠인답게, 그녀는 진행 중인 흑색종과의 싸움을 철인 경기에 비유합니다. 다만 결승점이 없는 철인경기라는 사실이 다를 뿐이죠. 이 시합에서 얻을 수 있는 대가는 사랑하는 이들과 살아낸 하루마다의 깊은 충족감입니다. 그녀의 계속되는 싸움에 박수를 보냅니다. 치료 과정에서 당사자가 소외되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병과 싸우는 모든 분들에게 의지가 살아있기를. 조심스레, 아픔 속에 잠긴 당신 또는 그 가족에게 마음 한 자락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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