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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풍경 Oct 18. 2022

정신질환자가 사는 법

[정신병의 나라에서 왔습니다] 북리뷰


정신질환 당사자의 생존기, [정신병의 나라에서 왔습니다]를 소개합니다. 단순한 에세이라기보다는, 만성 정신질환 당사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병을 끌어안고 생을 지속해 나갈 것인지에 대해 매우 잘 정리된 글입니다. 자해와 자살, 중독적인 관계 등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나누고 있습니다.



리단, 정신병의 나라에서 왔습니다(반비: 서울, 2021).

   최초로 병원이나 상담기관을 통해 우울증이나 조울증 따위와 같은 진단명을 받은 후에, 우리는 이 병이 사라지게 되는 순간을 뜨겁게 바라게 됩니다. 약물 처방을 받는 경우는 언제까지 이 약을 먹어야 하는가에 몰두하기도 하고, 치료의 시작과 끝이 명확했으면 하지요. 담당 상담사에게 상담을 5회기 내에 끝내 줄 수 있는지, 10회기만에 끝나기는 하는 건지 확답을 받기 위해 질문도 합니다. 그러나 정작 유경험자인 저자는 '병이 낫는다'라는 개념에 매달리지 않도록 조언을 합니다. 오히려 그는 질병 당사자들에게 병을 동반한 중에도 사회구성원으로서 어떻게 살아낼지 방법을 익혀야 한다고 이야기하지요. 네, 정신질환을 앓는 당사자로서 "병을 운영하는 능력"과 여러 요령에 대해 나누는 것, 이 책의 특별함은 바로 이 지점에 있습니다. 참고로 이 책과 아래의 글은 정신질환 초발 이후 지속적으로 삶의 시간을 이 병증과 함께 하고 계신 분들에게 더욱 공감이 되고 적합할 수 있습니다.








다만 끝없는 병의 계주를 지켜보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음과 같다.  
설명하고 분석하는 데 힘을 쏟지 말 것.
치료할 수 있는 질환은
절망의 상태로 버려두지 말고
충분히 치료할 것. 그리고 희망적일 것.
자신의 모든 기회가 끝났다고 생각하더라도,
악화일로라도, 가능성이 없더라도
희망적일 것.

146~147p.





내 병을 어떻게 바라보냐고?


   저자는 '병식, 약, 돈'이 현실적으로 생활의 지속을 돕는 주요 자원이자 지지대라고 꼽습니다. 이 중에서도 병식은 질환 당사자에게 큰 능력이 되어준다는 그의 이야기는 주목할 만합니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병식은 단순히 자신의 병명과 증상을 피상적으로 아는 차원 이상의 것입니다. 병의 전조증상부터 몇 여년 간에 걸쳐 보였던 삽화 발생의 사이클까지 그야말로 모든 것을 세세히 파악하고 있는 경지를 뜻하지요. 이러한 경지에 이르게 된다면 병증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회에서 일정 수준의 기능을 하거나, 그를 지지하여 주는 주변인과의 관계를 끊지 않고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한 셈이라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수년 간 보여지던 양상과 다른 특이성이 이번 삽화에서 관찰된다면 그는 여기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리고 담당 상담사나 주치의에게 전달하면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적절하고 신속하게 반응할 수 있어요. 또한 조증 삽화가 시작되는 전조증상을 인지하고 있다면 약물치료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을 수 있고, 새로 나타나는 특이한 정동이 병의 증상이 아니라 약물 부작용일 경우도 감별 가능하여서 발 빠르게 문제되는 약품을 대체하는 등 올바른 처치가 가능합니다.

  

 

  골든타임을 위에 잠시 언급했는데 삽화*가 발발할 때 한시라도 빠르게 반응하여 치료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시기적절한 치료는 피해를 최소화하고, 일상이 올 스톱되었다가 궤도에 오르기까지의 회복 기간이 단축되도록 돕습니다. 쉽게 말해 발 빠르게 조치할수록 손실은 덜 치명적이고 덜 파국적입니다. 저자는 "자신의 정신병의 변수가 적을수록, 새로운 증상이 덜할수록 우리는 병을 좀 더 용이하게 다룰 수 있으며 이는 병을 가진 상태로도 사회에 진입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합니다. 저서 전반에서 저자는 정신병이라는 삶의 동반자가 최대한 덜 까다롭고 덜 변덕스럽도록 관리하는 것의 중요성을 꾸준히 이야기하지요. 아주 바닥으로는 곤두박질치지 않도록, 그럭저럭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사회에서 완전히 고립되지 않도록, 병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요령에 대해 전하면서 말입니다.



   그의 조언은 현실적이고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면 정신과 의사에게 당신의 삶의 모든 굴곡과 사건과 관계를 나열하느니 '열 흘 간 제대로 잔 밤은 하루도 없으며 어제는 단 두 시간 잤다.', '나흘 전 죽고 싶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수일 간 네 차례 억지로 구토를 했다.'와 같은 구체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편을 권한다는 내용과 같은 것들이죠.


*삽화 episode 란?

정신병으로 인해 영향을 받아 수행 능력에 손상이 있는 상태가 유지되는 기간을 말한다. 증상이 극심하게 나빠지거나 악화되는 불특정한 기간이 찾아오면 그것을 삽화라고 할 수 있다.(15p.)



90% 면 충분합니다


   이 여정을 처음 시작한 이들에게 저자가 건네는 첫 충고는, 치료 기간은 딱 떨어지지 않으며 명쾌하게 완치라고 단정 가능한 시점도 없다. 그러니 병과의 조율 기간이 제법 걸리겠거니 마음 먹으라는 것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심지어 약물의 효력을 체감하기까지도 수 주가 걸립니다. 약효 이전에 부작용부터 느끼기 십상이며 초반의 진단이 평생 가는 것도 아니라서 당신의 병명에 너무 집착하지도 말라는 조언도 함께죠. 이러한 고백들에 초조하시겠지만 솔직히 말씀드립니다. 치료를 위한 그 일정에는 꽤나 긴 시간과 인내심 그리고 집중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조증 환자가 생산성을 120% 발휘하며 솟구친다면 의사는 약물로 80~90%의 상태로 조정" 하려 합니다. 또한 우울증으로 기능이 완전히 떨어진 환자에게 의사는 약물을 통해 어느 정도 호전된 일상과 기능 상태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그러나 100%의 상태를 목표로 두지는 않습니다. 조심스레 말씀드리지만 개인적으로는 어떤 분께는 병증에 따라 80이라는 수치도 과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은 제가 전해드리는 가공된 사례입니다.



한 30대 후반의 직장인 내담자는 신체화와 우울, 불안증이 심해 집중치료를 받았다. 그는 상태가 호전되자 직장에서 업무를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고, 본래 능력이 있던 그는 무난한 정도를 넘어 뛰어난 쪽으로 성과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의 상사는 그를 전부터 마음에 들어 했는데 두드러지게 성과가 보이자 근무지를 본사로 이관시키길 원했다. 물론 직급이 높아지고 연봉도 높아지겠지만, 업무 부담과 책임감 역시 커질 것이었다. 담당 상담사는 증상이 안정된 지 이제 얼마 되지 않았으며 환경을 바꾸는 것, 업무가 과중해지는 것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는 이관했고 1년을 새 근무지에서 버티다가 안 좋게 되어 퇴사했다. 그가 기존 근무지에 그대로 있었다면 당분간 그의 병세는 꽤 안정적이었을 것이다. 그가 기억하는 자신의 '본래' 능력이 뛰어난 편이었던 것이 독이 되었다.



   전하고자 하는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처음부터 의욕적으로 발병하기 이전의 모습과 능력으로 돌아가려기보다는, 능력의 60~80%만 사용하며 일상의 반복되는 사이클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지내는 것을 우선은 목표에 두십시오. 안정되었더라도 증상은 환경이 변하고 스트레스가 가해지면 다시 널을 뛸 수 있습니다. 이사나 이직, 그 외 환경적으로 큰 변동이 있거나 적응을 위해 스트레스를 받을 만한 이슈를 결정해야 한다면 주치의 또는 담당 상담사와 의논하세요. 당신이 새로운 스텝을 밟을 만한 시점인지, 아직은 현재에 집중해야 하는지를 홀로 결정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안고 있는 리스크, 이 문제는 맹장수술과 같이 문제가 되는 부위를 도려낸 후로 영원히 과거의 것이 된 고통 따위와는 다른 것입니다. 위 사례 속의 주인공은 '이제 다 나았고 예전과 다르다'라는 희망에 가까운 내면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기 보다는 겨우 중심을 잡은 저울추의 중심을 옮기지 않고 그대로 두는 편을 택했더라면 좋았을 겁니다. 그렇다면 환자가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영역이 어디부터 어디까지일까요. 저자는 환자가 할 일과 약물이 할 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를 하는데요.



그렇다면 병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언제 정신과에 내원할지 결정하는 것, 대학병원에 갈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 병원을 바꿀 때에 들 이유를 찾는 것, 그리고 약이 자신에게 어떤 작용을 하는지를 파악하는 것, 무엇이 약물의 작용이고 무엇이 부작용인지 선을 그어놓는 것, 병원비를 마련하는 행위를 하는 것, 내원해 약물 치료를 받기 위해 해야 하는 일들을 하는 것, 약물 치료의 조력 집단과 연결되어 있는 것, 약물 복용 시간과 용량을 지키는 습관을 만드는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약을 복용한다는 사실에 너무 많이 몰입하지 않을 것 등 너무나도 많아 다 쓰기 어려울 정도이다. 하지만 결론은 단순하다. 약물 치료는 약물의 영역이므로 약이 하게 맡기는 것. 그리고 사람은 사람의 일을 하면 된다.

158~159p.


  저자가 이야기하는 사람의 일은 뭘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움직여라.


   작가는 우울증 환자의 많은 부분이 병증으로 인해 훼손되어 있더라도 그에게 여전히 회복탄력성이 있다고 격려합니다. 그는 우울증 환자들이 '할 수 있는 실천'들에 대하여 조언하는데, 내용이 실효성이 있습니다. 특히 강조되는 부분은 생활의 모든 순간을 지켜주는 사소한 습관을 세워놓으라는 것입니다. 이는 건강에 이로운 생활습관을 쌓으라는 차원과는 다릅니다. 정신질환은 환자들의 주의와 생각을 현실에서 유리시키기에, 당신의 신체를 활용하고 물리적으로 움직임으로써 시계탑의 톱니바퀴를 굴려 시계를 가동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누리라는 것이지요. 그렇게 신체를 가동하여 현실에 그의 정신과 주의를 정박시킬 수 있고 이는 환자의 일상을 지켜줍니다.



우리 병자들의 세계에는 구원이 없다.
행동의 연쇄, 행동의 축적만이 삶을 지탱한다.

367p.



   학생은 출석을 해내는 것, 지각했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학교의 강의실에 늦은 시간에라도 몸뚱어리를 데려나 놓는 것. 직장인은 출근을 해내는 것. 어제는 하루를 침대에서 날려버렸더라도 오늘은 침대에서 일어나 씻었고 약도 제대로 먹는 것. 그야말로 포기하지 않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고 그는 이야기합니다. 너의 몸을 움직이는 일만은 네 몫이라고 말이지요.


   특히 대학생활 적응에 실패하는 청년 초기의 수많은 내담자들이 출석관리와 학점관리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주변의 게으름과 나태함 뻔뻔하다는 비난은 이들의 수치심과 자괴감에 불을 붙이며, 이들은 결국 다 내던져버리는 길을 선택하곤 합니다. 회피는 이들에게 익숙한 전략이지요.



주석을 제대로 달지 않았다는 이유로 다 된 과제를 제출하지 않고, 출석 점수가 아슬아슬할 때까지 결석했다는 이유로 그 학기 자체를 포기하며 학교에 가지 않는 등, 병자들은 자신이 세워놓은 기대치에 못 미치는 상황이 되면 손을 놓고 숨어버린다. 여기서 문제는 '완벽하지 않고 내 기준 미달이니 남들에게 보일 가치도 없다.'와 같은 생각은 굉장히 비장하다는 데에 있다. 정신병이 있다면, 비장함과는 거리를 두어야 살아남는다. 자신에게 조금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이들은 너무 빨리 죽는다.

242p.



   작은 습관을 쌓아올려 당신의 일상을 유지하는 것, 완벽주의를 내려놓는 것, 제대로 못했더라도 끝을 기어코 맺는 것, 나의 병증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 던지는 창피함과 수치심을 내 것으로 기꺼이 삼키지 않는 것, 오늘의 일 분과 한 시간 그리고 하루를 그럭저럭 보내기 이것을 해내었다면 당신은 오늘 치열한 전투에서 살아남은 겁니다. 잊지 마세요. 오늘 씻지도 못하고 신발 한 번 신지 못한 채 침대 위에서 하루를 보냈다고요? 괜찮습니다. 당신은 아직 시간 위에 있으니 여전히 시작할 수 있을 겁니다.






일상을 사수하고, 자신을 돌보는 것이 
언제나 도전이 된다.

우리는 여기서 시작해야 한다.

392p.


덧. 

   저자는 정신질환자의 주변인에게 다음의 것을 당부합니다. 병자의 치료 과정과 병식에 관심 갖기, 치료에 응하는 것을 장려하고 근황 공유하기, 모임 및 만남에 초대해 소속감 상기시키기, 종종 연락해 안부 전하기.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아도 좋다, 그저 '요즘 어때?"와 "아 그랬구나' 정도로도 족하다'는 것이지요. 당사자가 아닌 이상 불가능에 가까운 이해를 해보려 노력을 쏟기보다는 그의 곁에 있어주세요. 지속적이고 일관적으로 그와 관계를 이어나가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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