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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Jan 02. 2018

이렇게 새해가 지나간다.

언젠가부터 느끼기도 전에 한 해가 지나가 버린다. 여느 날과 똑같다고 생각하는 그런 날이 스윽하고 지나가면 새해가 밝아있다. 그 기분이 나쁘지 않다. 굳이 무언가를 하지도 않고 굳이 들뜨지도 그렇다고 우울해하지도 않은, 희망만은 안은 채로 새해를 맞이한다.

어렸을 때도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것들에 신나본적이 없다. 나에게 그런 날들은 다른 날들과 똑같은, 단지 맛있는 것 즈음은 사 먹는 그런 날이었다. 그래서인지 연애를 해도 백일과 같은 날, 밸런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도 그다지 와 닿지 않아 그냥 넘어가곤 한다.

다르게 말한다면 나에겐 모든 날이 소중하다. 그렇기에 특별한 날을 넣어두고 싶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무언가를 하지 않고 지나가는 게 너무 슬퍼서 그런 걸까. 뭔가 특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다가오는 압박 같은 게 싫어서 회피하는 뭐 그런 거인가. 역시 귀찮아서 챙기지 않는 쪽이 좋다.


아무튼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스윽하고 새해가 밝았고 이틀째가 되었다. 새해 첫날은 엄마와 언니와 손을 잡고 영화 '신과 함께'를 보며 나란히 앉아 휴지를 나눠 쓰며 함께 울었다. 너무 많이 울 것 같아 사실 눈을 감고 속으로 다른 생각을 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엄마 옆에서 주체하지 못하고 펑펑 울었을 것이다. 우는 건 창피한 일이 아니거늘 늘 그렇게 참는다.

죄를 짓지 말아야지, 예쁜 말 예쁜 생각만 해야지 하고 결심을 해 놓고는 밤새 우는 고양이 덕분에 화도 내고 고양이 엉덩이도 때리고 도대체 뭘 원하냐고 붙잡고 애원도 했다. 결국 자는 걸 포기하고 한참을 놀아주다가 아침에서야 겨우 잠이 들어서는 해가 중천에 떠서야 일어나는 둘째 날을 맞이하였다.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요구르트에 시리얼을 말아먹었다. 배는 고프고 먹는 일은 참 귀찮다.

빨래를 돌리고 청소를 하고 책을 정리하고서는 또 멍하니. 올해는 멍하지 말고 부지런히 움직이자고 결심했지만 단번에 짠 하고 바뀔 수 있었다면 작년에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나마의 결심 중 꼭 하자는 쪽은 매일 일기를 쓰기로 해본다. 벌써 첫날인 어제부터 실패했지만 개의치 않는다. 그런 거에 연연하면 금방 의기소침해진다. 그러니 모든 것에 담담히 넘어가기로 한다. 아직 밤도 오지 않았으니 남은 시간 알차게 책을 읽기로 한다. 책을 읽는 중간중간에 어제의 복수를 위해 자고 있는 고양이를 깨워야겠다. 평안하고 화내지 않는 오늘 저녁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올 해가 되기 전에 바랬던 세 가지 소원을 기억해 본다. 새로 꺼낸 다이어리 맨 뒷장에 소원들을 적어 넣는다. 그 소원들이 이루어져서 형광펜으로 색칠되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생각해보니 어제 강아지 오줌에도 앉았고 어쩌다보니 똥도 만졌다. 덕분에 첫날부터 너무 웃어서 눈물이 줄줄 흐르는 경험을 했다. 그렇게 신나게 웃어본 게 여러 해 만이라서 그걸로도 충분했다. 기대해 보기로 한다. 올해의 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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