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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이 Jun 25. 2023

성취가 혐오가 되지 않도록



크리스마스이브였다. 기사에선 그 해 수능을 불수능이라 했지만 사람들 땅수능으로 기억다. 수능 하루 전 11월 15일 5.4 규모의 지진 포항에 발생했다. 상청 관측 이래 두번째 큰 지진이었고 자연재해로는 24년 만에 처음으로 수능이 1주일 연기됐다.


그날은 딸과 둘이서만 외출할 예정이었다. 편은 점수에 맞춰 대학에 가길 바  재수를 고집했다. 밥을 먹으며 아빠에게 삐진 딸을 달래려 했다. 앞으로의 계획 볼 참이었다.


"엄마가 일 안 하니 좋네. 데이트도 할 수 있고. 이런 날엔 이벤트 하느라 바빴잖아. 나 중3 땐가 종이로 축구공 만들기 했었는데."


크리스마스 이벤트는 재작년이 마지막이었. 어쩐지, 시간이 아주 오래 른 느낌이었다.




지사장이 사무실을 인수할 생각이 있냐고 물었을 때 나는 적잖이 놀랐다. 소문은 돌고 있었다. 전국에 직영 3개만 운영하던 본사가 그 해 벌써 10개 넘 대리점 가맹하며 몸집을 불리는 중이었다. 


지사장거 같단 기가 퍼졌지만 나는 쉽게 그만 리 없다 생각했다. 브랜드 초기부터 께 한 원년 멤버인 데다 전보다 못하지만 매출 순위도 높았다. 지점을 탐내는 사람 많풍문 들. 런 상황에서 사장의 제 의외였다. 


일주일 시간을 달라고 했다. 은 그렇게 했지만 아는 게 없으니 무엇 검토해야 할지 가늠이 안 됐다. 교구와 교재를 판매하고 교육하는 회사였다. 영업은 해 본 적 없고 자신 없었다. 지사장은 영업보단 교육을 잘하는 사람에게 지사를 인계하고 싶고 말했다.  나라 회사에 대한 자신의 마지막 애정이라 표현했다. 


고민할수록 못하고 안 할 이유 늘었지만 이상하게 욕심이 났다. 두려움보단 설레고 하고 싶다는 마음이 복잡한 현실을 이겼다. 수익성 권리금 잴 것 없이 적금을 깨고 대출을 보태 3일 만에 계약서에 사인했다.




가던 사무실에 같은 시간 출근했지만 많은 것이 달라졌다. 르는 게 많은 만큼 전국을  나가는 지점을 방문해 관리와 영업을 배웠다. 아픈 엄마는 아빠에게 부탁하고 아이들은 남편에게 맡겼다. 대로 부려 먹을 수 있는 건 내 몸과 시간뿐이라 쓸 수 있는 한 최대한 부려 먹었다.


돈 버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전에 구경하지 못큰돈이 통장 찍히는 게 신기했다. 장님이라 부르 어색했지만 명함을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파견 교육 가고 대접을 받으면 우쭐했다. 교육을 아는 지점장이라 추켜 세우는 소리가 듣기 좋았다. 크지를 연구하 교사 교육을 담당할 땐 강단에 선 내모습이  보였다. 


사업은 오르락내리락 이어졌다. 처음 5년은 상승의 기울기가 하락보다 높았고 다음 5년은 그 반대였다. 교구 시장이 줄어든 이유도 있고 재투자에 야박한 본사 탓도 있지만 내 잘못이 가장 크고 책임 또한 그랬다. 10년에 걸쳐 70평 사무실을 50평으로 옮 35 평으로 20평으로 갔을 땐 직원은  명으로 줄고 엄마는 매일이 응급이었다. 


상황을 타계하기 위해 새로운 사업에 손을 댔다. 유치원에 교재를 납품하는 일이었는데 품목이 비슷한 점이 많아 도전해 볼만했다. 엇보다 가을 두 달 열심히 영업하면 된다는 설명솔깃했다. 엄마를 간병하며 할 수 있을 것 같아 갖고 있는 여윳돈끌어 모아 투자했다. 3  매달렸지만 실패했다. 일을 얕본 호된 대가로 투자금 대부분을 날렸다.




사람 그동안 애썼으니 라고 했다. 엄마가 아프니까 딸도 고3인데 오히려 잘됐다는 말까지 들었다. 몇 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엄마가 아프고 딸이 고 3 사실이  이유 될 수 있을. 는 말이 집안일을 더 하라는 뜻가. 가족을 돌보는 일은 돈 버는 일보다 만만한가. 가족을 위해  됐단 말은 위로일까 비난일까. 나는 자꾸 뾰족해졌다.


맘 속 가시에 찔렸지만 그럭저럭 시간을 보냈다. 요리도 정성 들여하고 몇 해 동안 마음에 빚으로 남 팽목도 다녀왔다. 평일 낮 혼자 영화관을 차지하는 사치도 렸다. 엄마 곁에 오래오래 앉아 있었다. 새벽밥을 먹여 보내고 군대 간 아들에게 편지를 쓰고 밤늦게 돌아온 아이를 안아 주었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 했다. 계속 렇게 지낼 건가. 이대로 살 것인가. 나는 끝난 건가. 다시는 일어설 수 없겠지. 는 도태될 것이다. 매일 런 생각에 사로 잡다.



"엄마는 이제 수업 안 해? 나는 엄마가 애들 가르치고 강의할 때가 제일 멋있었는데."  


홀 중앙에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가 장식된 패밀리 레스토랑이었다. 딸은 파스타를 오물거리며 물었다.


날 나는 딸에게 내 얘기를 시작했다. 엄마라서 할 수 없었던 이야기, 딸이라서 들려주지 못한 이야기, 그 애 어려 나누지 않은 말들.  애는 모르는 얘기. 아니, 사실은 에게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다.


"있잖아, 엄마는..... 더는 멋있지 않아."


사장님 소리 들으며 처음 직원들 월급줄 때 가슴이 떨나중엔 겁나더라 털어 놓았다. 세상에 똑똑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것도 모르고 까불었다 고백했다. 빛나던 시간이 있었 지나갔다고, 다시 그런 날을 오지 않을거라고. 


돈도 없고 자신도 없고 나이는 낼모레 마흔여덟이고. 15년 넘게 같은 일만 했는데 제와 른 일을 하기엔 늦었다고. 어려울 거라고. 러다 뱉어 버렸다. 사실 나는 실패했다고. 쫄딱 망했다고. 괜찮지 않다고.


하루에도 몇 번씩 스스로에게 말이다. 남에겐 부끄러워 고 들키기 싫 안 하 소리로 만들면 박제될두려 이야기. 그렇다고 열아홉 아이에게 무엇을 기대한 건 아니었다. 몇 달 동안 내 안 가득  각이  애한 마디, ''는 말에 찔려 이 났다.


구멍에서 새기 시작한 말은 마음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분출했다. 심연 속에 자리 잡고 있던 어둡고 축축한 안개를 닮은 생각소리 타 빠져나갔다. 속을 터놓는다는 표현이 비유가 아닌 감각으로 느껴졌다. 

뱉어낸 소리가 내 귀에 들리고 아이에게 슬픔으로 전해지는 걸 느꼈지만 막을 도리가 없었다.




아마 그 순간이었던 거 같다. 검은 안개가 빠져나간 마음속에서 무언가를 발견. 나였다. 잘났다 뻐던 시절의 나. 딸이 멋있다 말해주던 나. 추억으로 영광으로 간직한 나.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알아챘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 그것은 혐오였다.


내가 말하고 있었다. 예전에 너는 안 그랬다고. 지금은 부끄럽다고. 는 실패자라고. 익숙한 혐오였다. 오래전부터 그랬다.

이번 달 매출이 지난 달보다 못할 때, 어렵게 뺀 몸무게가 시 오를 때 나는 내가 싫었다. 심했다. 새벽기상을 심하 늦잠을 잤을 때도 그랬다. 정해놓은 루틴을 어기면 책감을 느꼈다. 내가 이룬 성취가 나를 혐오할 이유가 됐다.


"엄마, 엄마는 꿈이 뭐야? 내가 응원해 줄게."


나와 같이 울어준 딸이 내게 꿈을 물었다. 딸의 꿈을 물으 나온 자리에서 나는 내 꿈이 뭔가 골몰했다. 다시 과거처럼 될 수 없괜찮았다. 딸과 서로의 꿈을 묻고 응원하며 살 수 있다면 지금도 충분하단 생각이 들었다.


내 성취가 나를 혐오하게 두고 싶지 않았다. 위축되지 말고 나답게 살아야지 결심했다. 딸의 말처럼 나는 가르칠 때 제일 멋지니까 그 하나만 남기고 욕심으로 그린 내 모습을 지웠다.


예전에 가르쳤던 아이들 중 세 명의 어머니께 연락다. 공부방을 시작한다는 소식에 아이들을 멀리서 차 태워 보내 주셨다. 아마 내가  장 간절하고 진솔한 영업이었을 것이다.




이제 나는 성취가 주는 쾌감을 경계한다. 공에 중독되지 않 조심한다. 이루기 힘든 일을 달성해야 성취인가. 하루를 산다는 건 얼마나 큰 성취인가 생각한다. 

세상의 욕망을 내 꿈으로 착각하지 말아야지 결심한다. 내가 나를 극복해야 성장인 줄 알았던 시간을 지나  이제는 나를 편안하게 돌보고 아낀다. 성취와 실패란 단어엔 비교와 판단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고 그것을 알아채는 순간 자유로워졌다. 




등학교 4학년 수학 문제집에 이런 문제가 나왔다. 월요일 3개 화요일 4개 수요일 5개 목요일 6개 금요일 7 턱걸이그래프를 보고 토요일은 어떻게 될까 예상하는 서술형 문제였다. 모범답안에는 '매일 한 개씩 늘었으니 토요일에는 8개를 할 것이다.'라고 적혀 있다.


아이 이렇게 을 적었다. "계속 턱걸이를 해서 팔 아프고 힘 토요일에는 0개 할 거 같다." 15년 넘 깨달은 답을 열다섯도 안된 아이가 알고 있었다. 빨간색 색연필로 커다랗게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렇게 적었다. '멋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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