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별명은 '일어나자마자 낮 열두 시'다. 잠에서 깨면 일단 울고 엄마찾던 제 오빠와 달리 자다 깨도 투정이 없었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도 방금 깬 아이답지 않게 웃고 정오처럼 활기찼다.
"너는 어떻게 일어나자마자 낮 열두 시 같니."
자주 그렇게 말하다 보니어느새 별명이 됐다. 다섯 살 되고 열 살 돼도 아침이면'일어나자마자 낮 열두 시'처럼 웃었다.
딸이 중학생이 되면서별명을 바꿔 달라 졸랐다. 딸이 바란대로 '봐도봐도 이쁜 딸'이라 해줬지만 나는 그것보단'일어나자마자 낮 열두 시'가 더 좋았다. 너와 내가 교환되지 않는 이름. 다른 것으로 환원될 수 없는 단독성. 이쁘다는 모호한 말 대신 한 사람을 지칭하는 구체적 근거와 상황이 드러나있는 별명이라 생각했다. 딸아이 본명과 같은 이름은 여럿일 테지만 별명이 같은 사람은 아마 지구상에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별명이 어울리지 않는 시절도 있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였다. 대여섯 시간밖에 못 자고 시험 스트레스에 찌들며딸은 더 이상 낮 열두 시같이 웃지 않았다. 아침마다 아이의 밝은 미소가 그리웠다.장점이자 매력이 사라진 듯하여 안타까웠다. 얼른 다시 '일어나자마자 낮 열두 시'로 돌아와 주길 고대했다.
다시 일어나자마자 낮 열두 시같이 웃게 됐을땐주거를 독립해한 달에 한 번 보기가 힘들었다. 혼자 어찌 살까 걱정 반 믿음 반이었는데 내 눈에나 어리지아이는혼자 잘 지내고 유학생활도 너끈히 해냈다. 딸이 3개월 전 취업했을 때 말했다
"네 별명이 뭐야?"
"나? 일어나자마자 낮 열두 시."
딸은 대답하며 소리내어 웃었다. 귀에만 들리고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분명 낮 열두 시같이 웃었을 것이다.
"취업을 하든 연애를 하든 엄마는 네가 너를 잃지 않고 살면 좋겠어.만약에 어느 순간 그렇게 웃을 수 없게 되면 언제든엄마한테 얘기해줄래. 별명을 잃었어라고. 그러면 엄마가 바로 알아들을게."
딸과 아침마다 출근인사를 하고 점심 메뉴를 나누고퇴근을 기다리는 일상이 재밌다. 월급날은 멀고 월급은 연기처럼 사라지는 허망함을 딸과 나누는 순간이 올 줄 몰랐는데 딸이 취업을 하니 공유할 수 있는 감정 폭이 넓어졌다.
한 편으론 걱정도 했다. 일이 힘들어 몸이 상하고 회사에서 받는 정서적 폭력에 대한 이야기가 세상에 흔했다. 드라마에도 나오고 책으로도 쏟아지고 신경을 쓰자니 그런 것만 보였다. 돈벌이의 고단함은 이미 알고 있는 선배로 내가 겪었던 일을 딸이 잘 이겨낼까 염려스러웠다. 좋은 것만 주고 싶어하던 어린 딸을 대하던 엄마가 자꾸 고개를 들었다. 돌연 사표쓰고 떠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나는딸이 웃음을 빼앗길까 미리 염려했다.
"걱정 마 엄마, 나 꽤 단단해."
딸의 하루가 궁금하고 보고싶다. 하지만묻고 싶은 말을 참는다. 걱정하는 맘을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한다. 주거와 경제적 독립만큼 정서적 독립도 중요한 법이니까.내 생각엔 딸에게 내가 더 의존적일 때가 많지만 나도 딸도 관심과 애정이 서로의 독립을 방해해선 안된다.오늘도 일어나자마 낮 열두 시같이 웃었을까. 분명 그랬을 것이다.
여덟 살이 된 아이에게 인디언 식으로 내 이름을 지어달라 했다
펄펄 내리는 눈의 슬픔
아이가 지어준 내 이름이다
(제 이름은 반짝이는 숲이라 했다.)
그 후 깊은 밤이면 눈을 감을 때마다 눈꺼풀 밖으로 육각형의 눈이 내렸지만 그것을 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