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밤이 Jul 21. 2023

태권브이와 오므라이스





 여름방학 최대 사치는 어린이 회관 나들이었다. 방학이 가까워오면 학교 담벼락에 여름방학 특선 만화 영화 포스터가 붙었다. 는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를 좋아했지만 최고 인기는 '정의의 로봇 태권브이'였다.


 극장에 가는 건 일 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일이었다. 포스터가 붙으면 방학도 하기 전에 설레고 언제 간다 확답받을 때까지 엄마를 졸랐다. 무슨 일이 생겨 가기 전에  끝나 버리면 어쩌나 노심초사하고 가기로 한 짜까지 엄마 말 잘 듣는 착한 아이로 지냈다. 탐구생활도 열심히 풀고 일기도 밀리지 않았다. 여름에는 산타보다 태권브이가  더 셌다.


회관에 가는 날이 되면 엄마는 아침부터 김밥을 쌌다. 참기름과 소금으로 간을 한 밥을 김 위에 고루  시금치, 단무지, 계란기다랗게 올다. 거기에 맛살이나 햄 한 줄 추가 더할 나위 없었다. 김밥 꼬다리 주섬주섬 아침을 때우고 과자 몇 봉지와 시원한 얼음물 챙일찍 집을 나섰다.


회관 앞 광장에는 큰 모형이 전시되어 있었다. 어느 해엔 우주선 높이 올려져 있고 다음 해엔 알록달록 아치 구조물이 세워졌는데 마지막으로 갔던 83년엔 태권브이가 서 있었다. 동생과 나는 그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엄마는 손바닥만 한 코닥 필름 카메라에 우리의 모습을 담았다.




6학년 때, 83년이니 촌스러움도 그립다.




사실 엄마 방학마다 회관에 간 데엔 이유 있었다. 관에는 영화관 말고도 과학관이 있었는데 엄마 생각엔 과학관엘 가는 것이 공부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기대와 달리 동생과 내게 과학관은 영화 상영을 기다리는 시간 때우기 공간이었다. 엄마 성화에 과학관에 있는 버튼이란 버튼은 죄다 누르고 불이 들어오고 모형 기차가 달리고 컨테이너 벨트가 돌아가는 걸 봤지만 사실 크게 흥미가 없었다.


영화 보는 것 말고 그나마 좋았던 시간은 벤치에 앉아 김밥을 먹는 때였다. 한번은 도시락을 가져가지 않아 회관 식당엘 갔데 규모가 너무 커 깜짝 놀란 기억이 있다. 금 떠올리면 푸드 코너와 비슷 모양이였는데 그렇게 큰 식당은 그때 처음 봤다. 영화를 보는 횟수만큼이나 외식도 드문 때라서 무엇을 먹을까 기대가 컸다. 엄마는 두 개의 쟁반을 우리 앞에 내려놨다. 하나는 돈가스였고 다른 하나는 이름을 모르는 음식이었다.



"이건 뭐야?" 라고 물었더니 엄마가 오므라이스라고 말해줬다. 무슨 밥이 다섯 글자나 될까 신기했다. 발음만큼이나 밥도 특이해 보였다. 타원형 노란 계란 안에 든 알록달록한 볶음밥과 그 위에 사인하듯 뿌려진 소스가 맛있었다. 오므라이스는 돈가스처럼 불편하게 칼로 자를 필요가 없어 숟가락 하나면 먹을 수 있는 데다 새콤달콤하고 부드러우며 고소했다. 계란도 볶음밥도 먹어본 적 있는데 둘이 만나니 전혀 다른 음식이 됐다. 볶음밥에 들어간 당근은 곤란했지만 다행히 크기가 작아 먹을 수 있었다.


나는 오므라이스 맛에 푹 빠졌다. 무엇보다 다섯글자 음식은 처음이었고 이름을 아는 것만으로도 대단하게 느껴졌다. 집에 돌아와서도 오므라이스가 먹고 싶었다. 엄마는 볶음밥에 볶음밥이 귀찮은 날엔 흰밥에 가끔은 김치볶음밥 란을 넓게 부쳐 위에 덮은 오므라이스 비슷한 음식을 해 주셨다. 소스는 케첩이 전부였지만 엄마가 해준 이상한 오므라이스 역시 맛있었다.


오므라이스의 유래를 찾아보니 1925년 일본의 한 식당에서 이야기 시작된다. 단골손님이 매일 오믈렛과 흰 밥 먹는 것을 보고 가게 주인이 이유를 물었다. 다른 것을 먹으면 배가 아프다는 말에 닭고기와 양파를 다져 밥을 볶고 계란을 씌워 토마토소스를 뿌려 음식을 냈다. 손님을 위한 친절고민으로 시작된 음식. 오믈렛과 라이스의 합체. 오므라이스는 배려와 융합의 음식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엄마가 힘들었겠다 싶어진다. 크고 무거운 도시락 가방을 들고  둘을 데리고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야 착하는 거리였다. 영화비에 차비에 쮸쮸바까지 사 먹으면 열흘 치 반찬값은 족히 썼을 텐데 없는 살림 축내는지 모르고 어린것들은 좋아만 했다.


 어릴 적 즐거운 추억과 맛있는 기억에는 엄마의 땀과 노동, 사랑이 담겨있다. 과학관에서 본 거울방보다 신기하고 진자운동하는 커다란 추보다 놀라웠던 므라이스. 자식 둘 입에 밥 넣느라 제대로 먹지 못했을 엄마를 이제야 짐작한다. 태권브이와 오므라이스로 떠올려지는 여름방학의 추억. 그 시절의 것들은 왜 그리 다 아련하고 아름답게만 느껴지는지 모르겠었는데 이제보니 모두 엄마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일어나자마자 낮 열두 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