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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 이름 짓는 날
by
밤이
Jul 24.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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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먹으러 식탁에 모이면
강아지 이름
을
궁리했다.
음식 이름으로 지어주면 오래 산대
열무 보리 당근 오이 멸치
반찬이 모두 이름이 됐다.
자동차 타고 가면서도
강아지 이름
을
고민했다.
명진 철근 하이 마트 김밥 천국
길 가 간판
이
다 이름
으
로 불렸다.
사람 이름으로 지어주면 오래 산대.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치치카포 사리사리 센타 워리워리 세브리캉
무드셀라 구름이 허리케인 담벼락
서생원에 고양이 고양이는 바둑이 바둑이는 돌돌이가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두 글자가 좋대.
길면 못 알아듣는대.
그 순간 떠오른 하나의 진실.
근데 우리는 강아지가 없잖아.
이 말에 나 빼고 셋,
뭔가 은밀히 준비하는 셋,
의심스런 셋,
잠시 눈동자가 흔들
리
더니 숨을
죽
인다.
서로 눈을 맞추고
아
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강아지 이름을 의논한다.
털 색이 하얄테니까
설탕 소금 두부 눈사람 백설기
두 글자가 좋
다
니까.
나는 없는 강아지 이름을 왜 짓냐고 물었다.
상상 강아지가 있냐고 놀
렸
다.
식구들은 아랑곳없이 꿈은 이루어진다며
짝짝 짝 짝짝 월드컵 박수를 쳤다.
태풍 오던 날, 여수에 갔다.
태풍이라 부를까.
고만해.
이순신 장군님을 뵙고 왔다.
거북이는 어때.
그만 하라고.
돌아와 작은 강아지를 만났다.
상상인 줄
알았는데
진짜
강아지가 있었다.
느리고 영 애교없는 녀석이었다.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너도 엄마가 없니.
나도 엄마가 없어.
난 그래도 엄마랑 50년 살았는데
괜찮으면 내가 엄마 해 줄까.
보고만 오려다 품에 안고 와 버렸다.
식구들은 그럴 줄 알았다며 지어놓은 이름 스무개를 보여 주었다.
넣어둬.
이름은 장군이로 할래.
하얗고 보
송
거리고 동글
하
고 꼬불대
고
귀여우니까
장군이가 딱이야.
이름따라 간다며
누군가 고개를 저었다.
착하고 순하고 귀여운 이름으로 지으랬다.
장군이는 착하고 순하고 귀엽다.
평화롭게 누워 자고 잘 짖지 않
고
느긋하다
장군이답게 잘 웃는다.
약도 잘 먹고 밥도 잘 먹는다
.
누가 이름을 물으면 부끄러울 때도 있지만
하찮아서 적절하다.
편견을 부수는 녀석.
장군이는 내가
있
던
모든 동물에 대한 의심과 오해를 부셨다.
아무래도 이름을 잘 지은 거 같다.
사실 장군이의 장은 길 장이다.
내 이름 끝자와 뜻이 같다.
10년은 아들로
10년은 동생으로
10년은 친구로
장군이란 이름은
30년간 길게 인연되어 살길 바라는 내 간절한 기도다.
옥수수 탐내는 장군이
빙구웃음 장군이
안 데리고 나갈까봐 미리 카시트에 들어가 있는 장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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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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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삶은 무수한 이야기로 가득차있지요. 그러나 그 이야기들을 쓰거나 말하지 않으면 모두 사라진답니다. ㅡ한나 아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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