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은 장마가 길고 폭염주의보가 여러 날 이어져 산책 나가기 어려웠다. 이삼 일씩 나가지 못하거나 기껏해야 하루 이십 분정도라장군이운동량이 부족했다. 비숑은 활달해서 운동량이 높은 종인데 장군이는 얌전한 편에 체력도 저질이지만더워하며 하루종일 집에만 있는 게 안 돼 보였다. 가족들은 내가 자꾸 뭘 먹여서라는데 아무래도나가지 못해 살이 자꾸 찌는 것 같고 친구를 못 만나니 얼마나 심심할까 안쓰러웠다.
유치원에 보내볼까 하니 아들과 딸이 찬성했다. 집에서 가까운 유치원을 찾아 주 3회반을 문의했는데 오전 10시부터 6시까지유치원비가 30만 원이란다. 생각보다 비싸고민했더니 딸과 아들이 십만 원씩 보태주었다. 아빠는강아지 뎆고 별 짓다한다 하고 남편은 돈을 아까워하는 눈치였지만 장군이는 좋아하리라 예상했다. 산책 나가 다른 개를 만나면 엄청 반가워하고 매너 있게 기다릴 줄도 알고사이좋게 잘 놀아 유치원에 가면 얼마나 좋아할까 내가 더 설렜다.
유치원에는 개들이 많았다. 애견 카페와 운동장을 몇 번 갔지만 이렇게 많은 개를 한꺼번에 본 적은 없어선지 첫날 장군이가 긴장을 많이 했다. 다른 개들이 우르르 몰려와 냄새를 맡으려 해 좀 놀란 모양이었다. 야외 운동장을 둘러보고 이야기를 나눈 뒤 선생님께 잘 부탁드한다 인사하고 나왔다.두고 오려니 어쩐지 마음이 안 좋았다. 장군이가 이곳을 어떻게 이해할까 궁금했다. 오후엔 우리가 데리러 간다는 사실을 알고 불안해하지 않길 바랐다. 유치원에선 오전에 한번 오후 한번 사진과 영상을 보내줬다. 가족톡은 온종일 장군이 유치원 이야기로 바빴다.
여긴 어딜까. 어리버리하는 중.
몇 장의 사진과 영상에서 장군이 표정이 나빠 보이진 않았는데 즐겁지도 않았다.선생님 말씀으론 쫄보 중에 쫄보고 분리불안이 있어 친구는 좋아하지만 경계를 많이 한단다. 다른 개들을 피해 숨어 있는 사진을 보고딸이'우리 애 왕따야?'걱정하길래 나는 '지가 다른 애들 왕따 시키는 중이야.'라고 편들어주었다. 2주가 지나니 유치원 주차장에만 들어서면 짖고 낑낑댔다. 적응하길 기다려야 한다는데좋아하지 않는 걸 보니 고민됐다.
아이들 키울 땐 억지로 유치원 보내고 학원에 보내지 않았다. 그래놓고 장군이는 억지로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강아지 유치원이란 데가 있다는 말에 신기해하며 가서 잘 노는 개들이 부러워 욕심부렸다. 더 많은 친구를 사귀고 더 많은 경험을 주고 싶다는 부모의 과잉이아이에게 맞지 않는 기회와 교육을 강요하는데보호자란 이유로 나 역시 장군이 성향을 고려하지 않고 내 맘대로 했다.
예전에 20년 넘게 산 강아지가 있어 장수비결 좀 알려주세요 물었더니 "얜 지 하고 싶은데로 살아요.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씻고 싶을 때 씻어요." 하셨다. 나는 그 말을 스트레스받지 않는 것으로 이해했다. 유치원 선생님 말씀으론 매일반으로한 달쯤 오면 적응할 거라지만 참고 견디게 된다는 말로 들려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3주를 보내고 자퇴를 결심했다. 피곤한데 장난감 물고 와 놀아달라고 조르고 산책 나가 친구 뒤꽁무니 열렬히 쫒아다닐 때면 '그래서 내가 유치원 다니랬잖아. 이놈아.' 핀잔주기도 하지만 아무리 봐도 장군이는 나랑 노는 걸 제일 재밌어하는 거 같다. 그런 장군이를 보며 '내가 그렇게 좋아 장군아?'라고 하루에 몇 번씩 생색낸다. 그럴 때마다 사실행복하다.
고백하자면나도 유치원을 중퇴했다. 사십오 년 전엔 유치원에서 1,2,3,4 배우고 한글을 배웠는데 나는이미 엄마에게다 뗀 참이었다. 선생님께서 칠판에 글씨를 써놓고 가르치려 하면 쪼마난 게 맨 앞에 앉아 잘난 척하고 또박또박 읽어댔던 모양이다. 선생님이 애가 글자도 숫자도 다 알아 유치원 안 와도 되겠다 해서 유치원을 자퇴했다고 엄마가 그랬는데....
장군이 유치원 자퇴를 말씀드리고 데려오는 날, 쫄보 장군이와 유치원 비 안 들어 은근히 좋아하는 남편을 보며 어쩐지 이런 의심이 들었다. 혹시 나도 낯가려 애들과 잘 지내지 못하고 갈 때마다 울며 싫다고 한 건 아니었을까. 남들 유치원 보내는 모습에 질투나고 번듯하게 키우고 싶단 욕심에 없는 살림 무리해 유치원을 보냈는데 가만 보니 다 가르쳐 놓은 것만 배워와 돈 아깝단 생각이 든 건 아니었을까 하고 말이다.
그러고 보니 장군이가 나를 꼭 닮았다. 집에서만 대장질하는 것도 그렇고친구를 좋아하지만 낯가리고 혼자 있길 즐기는 것도 그렇다. 그러니 나를 닮아 결국 유치원도 자퇴했구나.괜찮아 장군아. 유치원 자퇴 선배로서 말해주는데 유치원 안 다녀도 잘 지낼 수 있을 거야. 내가 너의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 줄게. 산책도 더 많이 다니고 재밌게 놀아줄게. 유치원 자퇴생끼리 한번 잘해보자. 우린 계속 내내 행복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