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쓰는 글의 주제는 대체로 중구난방이지만 그나마 일관된 건 내 개에 관한 이야기다. 내 개 이름은 장군인데 살짝 뚱뚱하고 매우 귀엽다. 나랑 산 지 일 년 하고 이 개월 됐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녀석에게 매일 반하는 나는 한 달에 서너 편 장군이 이야기를 쓴다. 사랑과 기침과 가난은 감출 수 없다더니아마 그래서인 모양이다.
장군이를 쓸 때는 힘이 들지 않는다. 영감이 가득 차서가 아니라대충 쓰기 때문이다. 보통은 글이 주가 되고 사진이 부인데 장군이가 나오는 글에선 주가 사진이다.그걸 알고 있는 영민한 나는 고민 없이막 쓴다. 장군이 사진으로 글이 안돼도 용서될 걸 안다. 문장고민 없이 퇴고도 거의 하지 않고 사진 몇 장 붙여 발행을 누른다.
그렇게 휘리릭 써서 올린 장군이 글은 거의 빠짐없이 다음 메인에 올라간다. 어떤 경우엔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발행한 지 30분도 안돼 조회수가 천이 넘고 이천을 넘는다. 메인의 위력을 처음 알았을 땐놀랐다. 내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힌단 사실이 부끄럽고 뿌듯했다. 장군이한테 말해봤자 '그딴 거 뭐 해 먹지도 못하는데.' 하겠지만 걔는 모르는 나만의 추억에도 불구하고기분 좋았다.
알고 있다. 메인에 걸린 이유는 글이 아니라 장군이 얼굴빨이다. 산문 형식의 긴 글은 읽히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고 사실 뭘 쓰든 상관 없을수도 있다.실상이 그렇대도 방문수가 오르고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따뜻한 구독자가 늘어나는 일은 감사하다. 부끄러움은 나만의 몫이랄까.메인에 오르면 그제야 슬쩍 수정한다. 읽히지 않는 글이라도 최선을 다해야 마땅하지 않는가. 그리고 이내 미안해진다. 반려동물 이야기를 읽고 싶어 구독하셨을 텐데, 죄송합니다, 동물 전문 작가가 아니어서요.
다시 돌아와 잡문을 쓴다. 거기서 거기인 문장을 고치는데 슬그머니 자괴감이 올라온다.열심히 쓴다고 좋은 글이 되는 게 아니고 백열네번 퇴고한 글이 휘리릭 한 번 쓴 글보다 무조건 낫다 평가할 순 없지만 그래도 대충 쓴 글이 기 쓰고 쓴 내 글을 이겨 먹는 기분이 들 땐 좋은 글은 어떤 글일까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원래 뇌 속엔 천사와 악마가 있고 둘이 지지고 볶고 싸우며 해라 하지 마라 떠드는 법이라 글쓰기도 좋은 날이 있고그거 얻다 쓰냐 때려쳐라 하는 날도 있지만그럴 땐 언제 어디서 이렇게 나를 드러낸 적이 있었나 스스로에게 묻는다.온탕 냉탕 오가며 나를 담그는 사이 때가 벗겨지고 정신이 개운해진다. 목욕하고 나와 뜨거워진 몸을 바람에 식히며 들이키던 바나나 우유처럼 행복이 별 건가 하던 마음을 글에서 얻는다.
스스로에게 말한다. 글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은 삶을 해석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나를 쓰며 세상을 재현하고 경험을 몸에서 떼어내 그 풍경을 곰곰이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이 되자고. 자신을 객관화시키려면 감정의 실체를 낱낱이 파악하고 고백할 용기가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되기까지 스스로를 견디고 쓸 수밖에 없다. 지금은 고작 내 얘기 쓰는 것도 허덕이지만 그러다 보면 어느 날 문득 눈 뜨게 되지 않을까. 내가 너고 네가 모두라는 사실을 말이다.
가장 잘하고 싶은 일은 종종 자유를 뺏는다. 글은 가장 좋아하면서 잘하고 싶은 일이라틈틈이 괴롭다.글 앞에 쪼그라들고 오늘도 장군이를 이길 수 없다는 마음에 자괴감이 들었지만 어차피 귀여운 걸로 붙어봤자 나만 손해다. 잠깐, 그렇다면 오히려 저 녀석을 이용해 아무 상관없는 이 글에 장군이 사진 한 장 첨부해 볼까, 글이 안되니 사진이라도, 하다 가끔 표지나 제목에 낚여 산 책을 집어던지며 한 욕이 떠오른다. 아니지, 그건 사기지, 그러면 안되지.
잘 쓰려는 욕심은 내려놓기 힘들지만 들고 있으면 더 힘들다.이 글을 쓰는 동안 책상 아래 누워있던 장군이가 고개를 든다. '이제 그만해 어차피 날 이기긴 힘들어.' 하는 걸까.쳇, 너는 참 좋겠다. 타고나길 귀여워서. 내 글도 귀여워지도록 노력해야지.아마 장군이는나의이런 고단함을 모를 것이다. 원래 귀엽고 이쁜 애들이 그렇듯.
강아지 유치원 자퇴기도 있지만 커피 내리는 남자도 메인에 잠깐 있었다. 아보카도의 부끄러움이 널리 퍼졌달까.
이건 진짜 꼼수가 아니라 귀여워 올린다. 비닐봉지 물어뜯는 게 이렇게 귀여울 일인가. 이러니 반해 안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