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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이 Sep 26. 2023

행복 슈퍼

오스카 와일드, 《행복한 왕자》



행운동 은행로 9-4 사거리에는 빨간 벽돌로 지은 오래된 3층 건물이 있었어요. 1층에는 행복슈퍼가 있는데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 아는 사람 아무도 없었어요.

 "내가 이 동네에 40년 살았는데 그때도 있었으니까 아무리 못돼도 40년은 넘었을 거야."


동네에서 제일 나이 많은 할아버지가 말씀하셨어요.


 "행복슈퍼가 있어 정말 다행이에요. 여기에는 필요한 물건이 다 있어 멀리까지 나갈 필요가 없으니까요."


지나가는 아줌마가 말씀하셨어요.

어느 저녁 작은 제비 한 마리가 행복슈퍼 위로 날아왔어요. 행복슈퍼 입구에는 초록색과 하얀색 세로줄무늬가 그려진 차양이 있었는데 그 아래 오래된 둥지가 있다는 걸 제비는 알고 있었어요. 제비는 작년에 거기서 태어났거든요. 제비는 차양 아래로 들어가 부서진 집을 고쳤어요. 그걸 본 슈퍼 아저씨가 말했어요.

"작년에 왔던 제비인가? 그때는 엄마랑 새끼 두 마리였는데 지금은 한 마리뿐이네?"

제비는 하루 종일 행복슈퍼 근처에만 있었어요. 아침이면 전깃줄에 앉아 준비물을 사러 오는 아이들을 보고 오후가 되면 슈퍼 앞에 있는 커다랗고 높은 은행나무 가지에 앉아 아이스크림 냉장고를 뒤지는 아이들과 음료수를 사러 오는 사람들을 구경했어요.


인아와 제비가 만난 건 며칠이 지나서였어요. 인아는 행복슈퍼가 있는 건물 3층에 살았어요. 그 날도 은행나무 가지에 앉아 있던 제비는 창문을 열고 밖을 바라보는 인아를 발견했어요. 제비는 인아의 표정이 왠지 슬프게 느껴졌어요. 그때 인아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더니 뺨을 타고 흘러내렸어요. 비는 조심스럽게 인아에게 다가갔어요.

"안녕, 넌 이름이 뭐니? 왜 울고 있는 거야?"


 제비가 물었어요.

"내 이름은 인아야. 작은 새야 너는 누구야?"

"나는 제비야.  꽁지깃에 얼룩무늬가 보이지? 그런데 너는 왜 ? 혹시 눈에 먼지가 들어간 거야?"

인아는 그제야 손등으로 얼른 눈물을 닦았어요.

"아니, 그냥 좀 슬퍼서 그래."

인아의 말을 들은 제비가 물었어요.

"너는 행복슈퍼 위에 사는데 왜 슬퍼? 행복하지 않아?"

"행복슈퍼 깝다고 무조건 행복한 건 아니야."


그러고 보니 행복슈퍼 입구 바로 아래 사는 자신 행복한지 알 수 없었어요.


'그렇구나. 행복이라고 적힌 곳에 산다고 행복한  아니구나.'


인아는 제비에게 다친 다리를 보여 주었어요. 인아의 다리에 커다랗고 딱딱한 하얀색 붕대가 둘러져 있었어요. 인아는 다리를 다쳐 학교에도 갈 수 없고 친구도 만날 수 없다고 했어요. 제비는 아침에 슈퍼에 준비물을 사러 온 아이들이 생각났어요.

"아, 학교 가기 싫어. 학교만 가지 않는다면 행복할 텐데."  

제비는 누군가에게 행복한 일이 모두에게 행복한 일은 아니구나 생각했어요.

"내겐 날개가 있어. 네가 가고 싶은 곳에 데려다줄 순 없지만 내가 대신 보고 얘기해 줄게. 내가 너를 도울 수 있을 거야."


제비의 말에 인아가 물었어요.


"그럼 슈퍼 옆에 떡볶이 파는 할머니가 계신지 보고 올래? 머니께 인사를 전하고 싶어."

"아니, 거긴 아무도 없는데. 셔터가 내려져 있어."


인아는 제비의 말을 듣고 실망한 표정으로 말했어요.


"그렇구나. 할머니가 아프신 걸까. 저녁에 아빠 마중을 나가 할머니랑 얘기하면서 기다렸거든. 내가 다리를 다친 걸 알고 집으로 떡볶이도 가져다주셨는데."

제비는 인아가 우울해진  자기 때문인 거 같았어요. 제비는 에게 자신이 본 세상이야기를 들려줬어요. 떼 지어 날며 봤던 반짝이는 별들, 바람을 타고 신속하게 날갯짓하며 건넜던 바다. 파리를 잡을 때 자신이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는지 시범까지 보였지만 인아 기분은 조금도 나 보이 않았어요.

"마워 제비야. 하지만 내가 울었던 진짜 이유는 엄마가 보고 싶어서야."

인아의 말에 제비가 깜짝 놀랐어요. 제비도 엄마가 보고 싶었거든요. 행복슈퍼에 오기 며칠 전 나무에서 잠깐 쉬고 있을 때 개구쟁이 아이 몇 명이 갖고 놀던 공을 제비에게 던졌어요. 그때 놀라 도망가며 엄마를 잃어버렸는데 어디서도 엄마를 찾을 수 없었어요.


제비에게 엄마는 유일한 가족이자 친구였어요. 벌레를 잡는 법도 엄마에게 배웠어요. 엄마는 매일 밤 제비에게 이야기를 들려줬어요. 엄마가 있어서 들판에서 자도 밤이 무섭지 않았어요. 제비는 엄마가 행복슈퍼로 올 거라 생각했어요. 비와 인아는 함께 엄마를 기다리기로 약속했어요. 엄마를 잃고 혼자가 된 이후 처음으로 외롭지 않은 느낌이었어요.

'함께한다는 건 좋은 구나. 어쩌면 행복이 무엇인지 알게 될지도 몰라.'




그때 1층 슈퍼에서 큰 소리가 들렸어요.

"나 혼자 사는데 10킬로너무 많아. 한 봉지만 덜어서 팔라고."

슈퍼 아저씨가 뭐라고 는지 할아버지는 아까보다 더 크게 소리를 질렀어요.

"옛날에는 다 봉지쌀 사다 먹었어. 내가 여기 40년 단골인데 그거 하날 못해줘?"

인아가 3층에서 내다보며 말했어요.

"저 할아버지는 맨날 슈퍼에 와서 소리를 질러. 3층에서도 다 들릴만큼 목소리가 크시다니까."

인아의 말을 듣고 제비가 말했어요.

"사람들은  마음과 겉모습이 다른 거 같아. 걱정하면서 화를 내고 사랑한다면서 짜증을 내. 내 생각엔 할아버지는 외로워서 목소리가 자꾸 커지는 거 같아. 자기 말을 들어주는 곳은 행복 슈퍼밖에 없다는 듯 말이야. 나도 가끔은 큰 소리로 엄마를 부르고 싶. 하지만 이젠 떠나야겠지. 벌써 날이 추워졌어."

제비의 말을 듣고 인아가 부탁했어요.

"제비야 며칠만 더 있다 가면 안 될까. 요즘 아빠가 일이 너무 바쁘셔서 늦게 들어 오셔. 너까지 없다고 생각하면 난 정말 너무 외로울 거야."

제비는 마음이 흔들렸어요.

"그래 알았어. 그렇다면 며칠만 더 있다 갈게."

인아의 웃는 얼굴을 보니 제비는 왠지 기분이 좋아졌어요. '친구를 기쁘게 하는  한 일이구나' 제비 생각했어요. 행복슈퍼 아저씨가 제비를 고 말했어요.

"아직도 여기 있네. 더 추워지기 전에 얼른 따뜻한 곳으로 가야 할 텐데."

은행나무에서 점점 짙은 냄새가 났어요. 은행 냄새가 짙어지면 떠날 때가 된 거라고 엄마가 했던 말이 기억났어요. 친구들은 벌써 떠나 따뜻한 곳에 있을 거라 생각하니 제비 마음이 조급해졌어요. 하지만 엄마 없이 혼자 갈 생각을 하니 너무 슬펐어요.

"네가 가려는 남쪽나라는 어떤 곳이야?"

인아가 물었어요.

"여기서 아주 멀어. 그곳은 따뜻하고 예쁜 꽃이 많아.   하늘엔 솜사탕 같은 구름이 있고 바람에 흔들리 갈대 아가씨들이 노래를 해."

제비의 말에 인아가 말했어요.

"우리 엄마가 있는 곳 하고 비슷하구나. 엄마는 아주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에 있다고 아빠가 그랬어."

인아와 제비는 오랜만에 같이 웃을 수 있었어요.



"아이고, 오늘 왔네."


슈퍼 아저씨가 누군가에게 인사를 했어요. 일 빨간 우체통에 편지를 넣는 누나였어요. 누나는 군대에 간 남자친구에게 편지를 보내려고 매일 행복슈퍼에 왔어요.

"어제 안 보이길래 무슨 일인가 했지."

"어제는 바빠서 동생이 대신 보내줬어요. 그리고 다음 주에 남자친구 휴가 나올 거 같아요."

누나의 얼굴엔  이 가득했어요. 제비는 '아마 저행복일 거야'라고 생각했어요. 슈퍼 앞에 택시 한 대가 서더니 기사 아저씨가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 슈퍼 아저씨가 매일 나와 앉아있는 초록색 의자에 앉어요.

"새우깡 하나 사가야겠네. 손녀가 제일 좋아하는 과자거든요. 우손녀 사진 보여줄까요? "

기사 아저씨는 입에 종이컵을 물고 가슴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슈퍼 아저씨 눈앞에 내밀었어요. 사진을 보며 하게 웃는 모습을 보제비가 생각했어요.

"맞아, 것도 행복일 거야." 

엄마가 행복슈퍼에 둥지를 짓고 자신을 여기서 낳은 건 저렇게 웃으며 행복하게 살라는 뜻일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행복이 무엇인지 하긴 어렵지만 어쩐지 이 조금 알 것도 같았어요. 


제비는 매일매일 인아에게 자신이 보고 들은 행복한 이야기를 전해 줬어요. 인아도 자신처럼 행복이 무엇인지 궁금할 테니까요. 인아가 심심해할 땐 엄마에게 들었던 옛날이야기 들려줬어요. 행복한 왕자를 대신해 어려운 사람들에게 보석을 가져다준 위대한 제비와 다친 다리를 고쳐준 흥부에게 박 씨를 가져다 준 전설적인 제비 할아버지 이야기도 줬어요. 인아 재밌어할 때마다 제비는 행복했어요.



칠이 지나자 날씨가 더 쌀쌀했어요. 인아가 걱정하며 물었어요.

"제비야 춥지? 내가 생각해 봤는데 남쪽으로 가지 말고 그냥 우리 집에 들어와 나랑 같이 살래? 밖은 춥지만 집 안은 따뜻할 거야."

제비는 창가에서 떨어져 인아 눈앞을 빙그르르 공중 돌며 말했어요.

"제비는 바닥에 앉지 않아. 그건 과자 부스러기를 주워 먹는 참새와 비둘기나 하는 짓이야. 는 새장에서 살 수 없어. 그건 앵무새나 가능한 일이지."

제비의 말에 인아가 얼굴 빨개졌어요. 그리고 화를 내며 소리쳤어요.

"그렇게 잘났으면서 모르는 거야? 너네 엄마는 돌아오지 않아. 우리 엄마도 마찬가지고. 나는 알아. 엄마는 이제 다시 돌아오지 않아."

인아는 창문을 쾅하고 닫았어요. 제비는 인아의 말에 너무 슬퍼 날 수 조차 없었어요. 겨우 차양 아래 둥지로 들어가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들었어요. 밤새 찬 바람이 차양을 흔들었어요. 둥지로 바람이 새어들고 제비는 추워서 날개깃으로 몸을 감쌌어요. 꿈에 엄마가 나타났어요.

"엄마, 엄마"


제비가 엄마를 애타게 부르며 엄마를 따라갔지만 어찌 된 일인지 엄마는 웃으며 제비에게서 자꾸 멀어졌어요. 비가 잠에선 깼을 땐 어느새 아침이었어요. 둥지 아래에 아저씨와 인아가 제비를 올려다보고 있었어요. 인아는 다리 한쪽을 여전히 붕대로 감은 채 서 있었어요.

"제비가 깨어났네. 다행이다. 그렇지, 인아야."

슈퍼 아저씨 말에 인아는 처음 인사를 나눴던 날처럼 눈물을 흘렸어요. 인아가 말했어요.

"제비야 어제는 미안했어. 너랑 헤어지기 싫어서 내가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어. 네 엄마는 아마 따뜻한 남쪽으로 날아가셨을 거야. 네가 혼자여도 용감하게 무사히 도착하길 기다리고 계실 거야. 우리 엄마도 그랬어. 엄마가 없어도 용감해야 한다고. 엄마가 다 지켜보고 있을 거라고. 그러니까 이제 얼른 따뜻한 나라로 떠나."

제비는 둥지에서 몸을 털며 힘껏 날갯짓을 했어요. 밤새 추워 떨고 아팠던 몸이 이상하게 가뿐해진 기분이었어요. 마음이 따뜻해지면 몸도 따뜻해질 수 있다는 걸 제비는 달았어요.

"인아야 너를 만나서 기쁘고 다행이었어. 덕분에 행복이 무엇인지 게 됐거든. 나는 엄마 없이 혼자 떠나보려해. 엄마도 그걸 바라실 거안. 너도 그러길 바래. 엄마없어도 용감하게 씩씩하게 세상으로 걸어가. 너는 또 누군가를 만날 거고 분명히 나처럼 너를 만나 기쁘고 다행이다 생각할 거야."

 제비는 내년 봄에 돌아올 때 인아에게 줄 예쁜 꽃씨를 물고 와야겠다 생각했어요. 꽃이 피면 인아가 서 있던 창가가 덜 외로워 보일 테니까요.


하늘로 날아오르는 제비를 보며 아저씨가 말했어요.


"이제 가나 보네. 다음에 오면 알아볼 수 있을까? 제비는 다 비슷하게 생겼는데  말이지."


인아가 제비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어요.


"알아볼 수 있어요. 우린 친구니까요."


제비는 공중에서 빙그르르 멋지게 돌며 작별인사를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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