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를 4장 갖고 있다. 그중 2장은 아들과 딸이 들고 있다. 대학 들어갈 때 비상용으로 준 건데 여태 회수를 못했다. 떨어져 사니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갈 수 없는 불안을 카드로 대신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스무 살이 되면서 부모에게서 경제적으로 독립했다. 과외해서 용돈 쓰고 등록금은 장학금으로 충당했다. 형편 어려운 탓도 있었지만 스물은 내가 나를 책임지는 나이라 생각했다. 두 아이 낳고 아이들도 스물이 되면 독립시켜야지 결심했다.
현실은 다르게 흘렀다. 애들은 경제독립보다 주거독립을 먼저 했다. 학교에 가기 위해 집을 떠났다. 살 집과 살림이 필요했다. 계획대로라면 스물부터 알아서 살아야 하는데 어찌 된 게 신경 쓸 일이 더 늘었다. 돈도 더 들었다. 학비에 월세 보내고 용돈까지 주면서 혹시 몰라 카드까지 쥐어줬다.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2015년 시급 5580원, 2019년 8350원. 아들은 삼겹살 가게에서 고기 굽고 딸은 골라 먹는다는 아이스크림을 팔뚝 굵어지게 펐다. 주 3일 혹은 4일 서너 시간씩 일하고 한 달에 30만 원 조금 더 되게 벌었다.
독립하기엔 턱없이 부족했고 이런 생각도 들었다. 공부하고 일만 하나 한창 놀기 좋은 나인데. 아니지. 고생도 해봐야지. 다 컸는데 지 용돈은 지가 벌어 써야지. 그래봤자 30만 원인데 일하는 시간에 공부해서 장학금 받는 게 더 남는 거 아닌가. 마음이 이랬다 저랬다 갈등했다.
아들은 작년에 취업하고 딸은 4개월 차 직장인이다. 월급을 받고부터 둘 다 내 카드를 쓰지 않는다. 사실 지난 몇 달간 '엄마 카드 써.'라는 말은 내가 좋아서 했다. 아침 일찍 출근하는 게 안쓰러워 '커피 사서 들어가 엄마 카드 써.'라고 딸에게 말했다.
며칠 전엔 아들이 고등학교 친구를 만난다길래 '밥 사줄게 엄마 카드 써.'라고 했다. '괜찮아, 우리 둘 다 돈 벌어.' 하길래 '돈이 없을까 봐 그러나. 엄마가 밥 사주고 싶어 그러지. 해먹이면 좋겠지만 매우 귀찮고 맛을 보장할 수 없으니 사주는 걸로 때우자.' 했더니 크크크 웃고 알겠다 했다.
몇 시간 뒤 24000원 카드 결제 알림이 왔다. 톡도 이어서 왔다. 친구와 예전에 자주 갔던 식당에 가서 오랜만에 부대찌개를 먹었단다. '00 이가 감사하대요. 고마워 엄마.' 아들들에게 밥 한 끼 사 먹인 기분이 제법 근사했다. 이럴 땐 카드가 애들 손에 있는 게 괜찮네라고 생각하다 아니지, 이러면 안 되지. 다음 달엔 카드를 받아야지 마음 고쳐 먹었다.
딸 월세와 두 아이 핸드폰 비는 아직 내가 결제한다. 지난 추석에 왔을 때 경제 지원은 올해까지고 카드는 12월에 반납하라고 했다. 그때 분명히 알았다 대답했는데 지난주에 '다음 달에 내 카드 내놔.' 했더니 '내년 12월 아니었나.' 한다. '이게 바로 둘이 한 사람 바보 만들기인가' 했더니 아들은 큭큭큭 웃고 딸은 하트 오백 개를 보낸다. 딸은 마음 약한 엄마를 알고 아들은 내가 그런 말을 하며 재밌어하는 걸 눈치챈 모양이다.
가족은 공간을 함께 사용하고 벌어 온 것을 나눠 쓰는 사이다. 그래서 부딪치고 돈으로 상처받기 쉽다. 딸은 내가 은퇴하면 자기 카드를 준다지만 부모돈보단 자식돈이 어렵단 어른들 말씀이 기억난다. '어디 진짜 주나 두고 보자.' 말론 그러지만 그때도 애들에게 밥 한 끼 사 줄 여유가 있길 바란다.
삼십 년 전엔 이런 말도 있었다. '여자는 경제적 독립이 어렵고 남자는 정서적 독립이 힘들다.' 여자는 돈이 궁하고 남자는 시어머니 품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소린데 요즘엔 여러모로 맞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지금은 이 말이 '자식은 경제적 독립이 어렵고 부모는 정서적 독립이 어렵다.'로 읽힌다.
돌봄 받던 버릇과 돌보던 습관을 바꾸는 일이 쉽지 않다. 어디서 보니 자식 망치는 첫걸음이 해달라지도 않은 걸 알아서 미리 해주는 거라던데 내 모습 같아 찔렸다. 든든한 엄마가 되고 싶은 마음과 한 존재로 자립하길 바라는 마음이 엇갈리고 오가며 섞이고 양립한다.
애유지망이라 했다. 지나친 사랑이 오히려 관계를 망친다. '엄마 카드 써' 그만하고 다음 달엔 카드를 받아야겠다. 내가 내 카드 돌려받는 것이지만 정 없어 보이지 않게 크리스마스 카드 이쁘게 써서 신용카드랑 바꿔야겠다. 핸드폰 비 결제 통장도 전환하고 어디 갔냐 묻고 뭐 하나 궁금해하는 일도 줄여야겠다. 간섭과 잔소리도 마찬가지다.
열 살까지 키우면 육아가 끝나고 사춘기 지나면 편해지고 스물 되면 신경 쓸 일 없을 줄 알았는데 사는 내내 자식과 사이좋게 지내는 게 쉽지 않다는 걸 느낀다. 낳을 땐 상상하기 어렵지만 키우다 보면 관계가 틀어질 고비가 여럿이다. 자식과 함께 살아가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사랑은 무엇을 줘도 아깝지 않은 것이지만 무엇을 주지 않으려 참기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