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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이 Sep 05. 2023

작은 호의를 기다리며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 <누구에게나 언젠가는>



모를 공경하면 오래 산다는 축복이 성경에 적혀 있는데 그 의미를 엄마가 아프고 나서야 깨달았다. 든 부모와 살면 알게 된다. 무엇을 먹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누구에게나 언젠가 일어나는 늙음과 죽음이 과정의 일부이고 자연스러운 귀결이란 진리를 비로소 깨우친다. 절제할 것이 생기고 놓것을 분간다. 장수는 덤이다.


어린 시절 기억 속 엄마는 언제나 밝고 활기찼다. 쓰러졌을 때 믿기지 않았고 낫지 줄 몰랐다. 의학이 얼마나 발전했는데 엄마를 고치지 못할 리 없다 생각했다. 나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리은데 엄마도 나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10년 넘는 시간 동안 엄마는 하루하루 조금씩 약해지고 하나 둘 빼앗겼다. 친구도 웃음도 나으리란 희망도 뼈도 근육도 결국 숨까지.


워있는 엄마 배에 자주 손을 올렸다. 간이 있는 오른 쪽을 짐작하며 손바닥으로 덮었다. 모니터에서 본 간은 생명이 떠난 죽은 대륙처럼 보였다. 손바닥을 통해 내 온기가 내 사랑이 엄마에게 전해지길 바랬다. 기적처럼 낫길 바라며 누구에겐지 모를 말로 제발 나으라 기도했다. 손바닥의 온기가 간을 살리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엄마는 내게 몸 챙기란 말을 여러 번 했다. 엄마가 아프고 가장 먼저 먹거리가 바뀌었다. 가열과 양념을 적게 하고 채식을 더 하고 음식을 덜 먹으려 신경 쓴다. 건강검진도 때맞춰 받는다. 내가 만약 땅에서 건강하게 장수한다면 엄마 덕분이다. 엄마와 산 50년도 엄마를 잃은 지금도 내 삶은 모두 엄마에게서 나왔다.



생전에도  말을 납골당에 갈 때마다 전한다. 


 "엄마가 많이 아파서 엄마 자식이랑 주들은  아플 거예요. 엄마 말대로 건강 잘 챙기먹는 것도 가려먹고 검진도 꼬박꼬박 게요. 미안해 엄마. 엄마도 그러지. 엄마도 그래서 안 아프 오래오래 살지. 건강할게. 우리 걱정하지 마. 고마워 엄마. "

부모는 병으로도 자식을 구원하고 죽음으로 가르친다.




아침 일찍 딸아이가 메시지를 보냈다.


"엄마 나 어제 할머니 꿈꿨어."

"내 꿈엔 오지도 않더니 손녀 보러 가셨네."

"할머니가 그랬어. 이제 하나도 아프다고. 건강하다고. 그러면서 안아 주셨어."



만약 인간에게 여러 번의 생이 있다면 혹시 정말 그렇다면, 그래서 엄마가 다시 산다면,


이번에는 아프지 말길. 오래 앓지 말길.

일복 많은 가난한 집 다섯째 딸로 태어나지 말고 하고 싶은 공부 다 하고 좋아하는 꽃놀이 다니며 편안하게 사시길. 많이 웃고 행복하시길. 당뇨 때문에 먹지 못한 참외 국수 마음껏 드시고 다리 때문에 가지 못한 여행 좋아하는 시장 마음껏 구경 재밌게 사시길. 래오래 곱게 사시길. 그리고 시간이 난다면 잠시잠깐 내 꿈에 들려 나를 꼭 한 번 안아주고 가시길.









가까운 이가 죽음을 맞이하는 건 누구에게나 언젠가는 일어나는 일,
존재할 것이냐 사라질 것이냐,
그 가운데 후자를 선택하도록 강요당했을 뿐.

단지 우리 스스로 받아들이기를 힘들어할 뿐이다,
그것이 진부하기 짝이 없는 현실이란 걸,
과정의 일부이고, 자연스러운 귀결이란 걸.

조만간 누구에게나 닥치게 될 낮이나 저녁
밤 또는 새벽의 일과라는 걸.

색인의 명부와도 같이,
경전의 조항과도 같이,
달력에서 닥치는 대로 아무렇게나 고른
수많은 날짜 중 하나와도 같이,

하지만 그것이 바로 자연의 음양.
되는대로 움직이는 자연의 불길함과 신성함.
자연의 살아 있는 증거이자 전능함.

그러나 아주 이따금
자연이 작은 호의를 베풀 때도 있으니
세상을 떠난 가까운 이들이 우리의 꿈속에 찾아오는 것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 <누구에게나 언젠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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