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쓰면 잘 쓰게 될까
강창래, 《위반하는 글쓰기》
글쓰기 책에서 빠지지 않는 조언 중 하나가 매일 쓰기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정유정도 새벽마다 쓴다고 한다. 김 훈은 하루에 반드시 원고지 다섯 매를 채운다는 뜻으로 책상 앞에 '필일오'라 써 붙여 놨다 전해진다. 이런저런 높으신 작가님들도 그리 하시는데 거부할 재간이 없다. 재능이 없다면 근면이라도 해야 하니 매일 두 번 쓰기도 해야 할 판이다.
그렇대도 어딘지 의문스럽다. 매일 쓰면 정말 잘 쓰게 될까. 부사 '잘'이 애매하다. '잘'에 대한 기준은 개인적이고 다를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잘'은 겨자씨만 한 미덕인데 매일 쓰면 능숙해지고 자주 발행하면 둔해질 테지만 익숙해지고 뻔뻔해지는 것이 잘 쓰기인가 물으면 그건 또 아니지 않은가.
"제 생각으로는 어떻게든 날마다 쓰겠다는 결심보다 글로 쓰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생각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를 들면 지금까지 가보지 않은 곳을 방문해서 새로운 세상을 만나 보는 건 어떨까요? 날마다 글을 쓰겠다는 결심 같은 건 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당신이 글을 쓸 사람이라면 저절로 쓰게 될 것이고, 쓰지 않는 것이 더 어려울 겁니다. 현장을 다니는 것이 어렵다면 좋은 책을 읽어 보세요. " (109쪽)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인생에 없을 줄 알았던 내 개를 만났을 때도 그랬다. 매일 쓰라는 말은 매일 쓸 수밖에 없도록 살라는 의미였다. 쓰기에 감각을 열어두면 가을이 시작되는 하늘도 붉은 꽃 한 송이도 다르게 보인다. 콩나물 국밥 한 그릇, 아이와 다녀온 박물관, 횡단보도 앞에서 떼쓰는 모르는 아이도 글이 된다.
노랑 초록 양말 짝짝이로 신고 춤바람 난 날 어떻게 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이를 야단치고 후회하는 밤 글엔 어린 시절 외로움이 소환된다. 아프고 힘들던 시간을 복기하며 불행과 친구 하지 않는 방법을 배운다. 작가의 눈으로 바라보면 사소한 일은 하나도 없다던데 계수나무 향에서 어릴 적 숨겨두고 아껴먹던 캐러멜을 떠올리는 마음. 이런 게 매일 쓸 수 밖에 없는 삶 아니겠는가.
우유도 매일 묻고 매일 답한다. 매일 쓰는 행위는 묻는 위치에 나를 데려다 놓는 반복이다. 익숙한 것에서 떠나는 도전이다. 섬세하게 감지하고 작은 것에 감사하며 스스로 답을 찾는 힘을 기른다. 마음에 묻은 먼지를 털어낸다. 살아 있음의 기쁨을 드러내고 숨은 겨자씨를 찾을 때까지 쓴다는 것은 '하다가 말 일이 아니다.'
"나는 글을 잘 써 보겠다고 '노오오력'하는 방법은 다 '나쁘다'라고 생각한다. 아주 오래된 말도 있지 않은가. 천재는 열심히 하는 사람을 이기지 못하고 열심히 하는 사람은 절대로 즐기는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 즐기는 사람은 즐거움만으로도 모든 것을 이겨 낼 수 있다. 즐기지 못하고 '노오오력'만 하다 보면 언젠가 그만두게 된다. 글쓰기는 살아 있음의 기쁨을 드러내는 최선의 방법이다. 하다가 말 일이 아니다."(11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