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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이 Sep 07. 2023

의미 없는 통증




일 년 전쯤 어머니를 모시고 검진을 다녀왔다. 옆구리가 한 번씩 결린다는 말씀에 CT와 초음파 검사를 했는데 이상이 없단다.


"그럼 통증은 뭘까요?"


의사가 말했다.
"의학적으론 지금 느끼시는 통증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의미 없는 통증' 

다행히 며칠 후 통증은 사라졌다.
 



지난 9월 4일 한 교사를 추모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였다. 죽음 이후 49일 동안 나라는 시끄러웠다. 죽음은 교육계를 넘어 sns 흐르고 정치판으로 넘어갔다. 누군가는 축소하고 누군가는 확대했다. 책임을 놓고 싸워대는 틈바구니 속에서 비슷한 나이 자식을 둔 마음이 가장 먼저 반응했다. 불쌍해서 어떡하노, 아까워서 어쩌누. 그 엄마는 어찌 사실꼬. 시골 어머니에게서나 가끔 듣던 말이 절로 나왔다.



통증 가득한 세상에서 산다. 가방에 걸어 놓은 노란 리본, 반복되는 어린 아이의 죽음, 인간의 선함이 의심되는 칼부림. 먼 나라의 전쟁. 들 땐 아프지만 돌아서면 잊히는 통증들. 내가 아니 다행고 먼 이야기로 들리는 타인의 고통은 의미 되지 못한 채 사라다.



나병은 특정 박테리아에 감염되어 생기는 병이다. 감염된 부위의 신경이 짓눌려 신체 부위는 살아 있지만 감각이 없다. 느낄 수 없는 신체는 소외된다. 내가 느낄 수 없는 것은 내가 아니다. 느껴지지 않는 것은 돌봐 줄 수 없기 때문에 조심하지 않고 다쳐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나병 환자의 코가 손이 발이 절단되는 이유다.



반면에 통증은 지켜준다. 눈에 무엇이 들어갔을 때 종이에 손을 베었을 때 아프고 움찔하게 만드는 고통은 우리에게 눈물을 흘려 이물질을 빼게 하고 손을 치료하게 만든다.  



통증이 지켜야 할 몸의 경계를 정한다공감은 정신적 자아의 범위를 넓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상상하는 일은 쉽지 않지만 목도한 통증 연대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 시대의 많은 위대한 활동과 운동은 통증에서 시작됐다. 알려지지 않던 것을 드러냈고 보이지 않던 것을 보여 주었으며 멀리 있던 것을 가까이 끌어왔다.



가족이나 친구처럼 가까운 이의 고통을 보는 게 더 어려울 수도 있다. 때론 나 자신의 통증을 모를 때도 있다. 통증에 반응하고 있다면 살아있다는 증거다. 타인의 통증에 아파한다면 내가 속한 세상이 넓다는 뜻이다. 우리가 통증에 반응할 때 통증은 비로서 의미를 갖는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관용구는 고통을 겪는 당사자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공감하는 모두에게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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