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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이 Nov 04. 2021

달력에서 아무렇게나 고른 날짜처럼




'엄마가 이상하다. 집에 좀 와봐.'

아빠가 보낸 문자였다. 확인이 늦어 20분이 지났다. 나는 아빠가 벌써 응급실에 도착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119에 전화하면 보통 20분 전후로 응급차가 왔다. 병원은 차로 5분 거리다. 아빠가 '이상하다'고 한 걸 보니 간성혼수가 온 모양이었다. 엄마는 지난 1월에도 간성혼수로 열흘간 입원했다.

엄마의 병은 간경화였다. 발병 초기에는 균형을 잃고 자꾸 넘어져 뇌와 신경에 문제가 있는 줄 알았다. 결국 문제가 생기긴 했다. 약해진 간 몸  암모니아를 대로 해독하지 못 대뇌 신경 마비 간성혼수가 왔다.


"아빠 어디야? 엄마 어떤데요. 아직 집이야? 왜 아직 집이야? 119는요. 먼저 병원 가세요. 내가 바로 따라갈게."

"아니, 그게 아닌 거 같아. 숨을 안 쉬어. 엄마가 숨을 안 쉬어.”

아빠가 여기까지 말하고 흐느꼈다.

"뭐? 그게 무슨 말이야?"

나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소리를 높였다.

"그게 무슨 말이야. 숨을 안 쉬어? 엄마가 왜 숨을 안 쉬어? 내가 갈게. 내가 갈게요."

심장은 믿지 않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손이 부르르 떨렸다. 명이 울렸다. 4월 21일 오후 1시 40분 경이었다.


10분도 안 되는 길이 1시간 거리처럼 멀었다. 엄마는 몇 시간 전 나가면서 본 모습 그대로였다. 침대에 누워 잠든 듯 편안해 보였다. 나는 한 손으로 엄마 볼을 감싸며 '엄마' 하고 불렀다. 따뜻했다. 엄마, 내 말 들려? 어깨를 조심스럽게 흔들었다. 살이 모두 말라버려 살갗 아래 뼈가 모양대로 만져졌다.


"냐, 아빠. 엄마 숨쉬는 거 같애. 숨이 너무 약해서 그래. 따뜻하잖아.  살릴 수 있어. 119  불렀어요? 왜 안 와. 왜 아직 안 와."


목소리가 울음으로 변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엄마를 깨웠다. 엄마 내 말 들려? 마, 엄마. 자꾸 부르면 마가 돌아올 것 같았다. 엄마, 엄마. 참은 숨을 내쉬며 엄마가 다시 호흡할 것 같았다.




죽음은 인정되기까지 절차가 필요했다. 119로 전화하니 환자가 집에서 죽으면 경찰서에 신고해야 다고 했다. 경찰이 왔다. 죽음은 사건이 되고 엄마가 있는 방은 사건 현장이 됐다. 남부경찰서 소속 형사 두 명이 왔다. 한 명은 방에 들어가고 다른 한 명은 나와 아빠를 불러 식탁에 앉았다.

"의례적인 거지만 몇 가지 답을 하셔야 해서요. 지병이 있으시고 오전까진 의식이 있으셨단 거죠?"

두 형사 중 덩치가 더 크고 나이가 많아 보이는 사람이 물었다. 형사는 작은 수첩을 꺼내 볼펜을 딸깍거리며 나와 아빠를 번갈아 봤다. 아빠는 형사 말에 굳은 표정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집엔 나 혼자였어요. 간경화 앓은 지는 10년 넘고 걷지 못한 건 3년 정도 됐고. 2년 전에 간암 판정받았어요. 아침에 별 증상 없었어요. 죽도 먹고 약도 먹고. 얘가 11시쯤 출근했으니까 그땐 의식이 있었어요. 12시쯤 갔는데 자고 있더라고. 1시가 넘어도 기척이 없길래 점심 먹어야 해서 들어갔어요. 근데 좀 다르더라고, 느낌이. 이상해서 깨웠는데 의식이 없었어요. 숨을 안 쉬었어요. 그땐 이미.... 갔더라고."

슬픔은 사건이 되어 진술되었다. 형사는 고개를 끄덕이고 수첩에 무언가를 적었다. 그 사이 흰색 가운을 입은 검안의가 사망선고를 하며 했다.

"코로나 검사 이상 없으면 장례식장에서 차를 보낼 겁니다. 한 시간 안에 올 거예요. "

방에 들어가니 엄마가 침대에서 바닥으로 내려져 있었다. 엄마 옆에 앉아 엄마를 안고 엄마 얼굴에 볼을 댔다. 아가처럼 보드라운 머리카락, 죽음은 아직 희미한 온기를 남겨 두었다. 나는 남은 온기가 다 사라질 때까지 그대로 있었다.



장례를 마치고 혼자가 되었을 때 천천히 그날을 되짚었다. 엄마가 가는데 세상과 내게 아무 조짐이 없었다는 사실이 화났다. 기억을 압수 수색했다. 한 달 전, 일주일 전, 삼일 전, 하루 전, 그리고 그날. 오늘의 운세를 뒤졌다. 21일, 4월, 2020년. 다시는 운세 따위 믿지 않기로 했다.

복기는 계속된다. 모르고 나선 걸음을 되돌리고 되돌리면 누워있는 엄마를 지나 아프지 않은 오래 전 엄마를 만난다. 엄마는 두 발로 걷고 있다. 웃는다. 내 이름을 부른다.

2020년 4월 21일 화요일이었다. '달력에서 아무렇게나 고른 수많은 날짜 중 하나와도 같이'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이었다. 봄꽃이 피었으나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고 서로 닿는 것이 금지된 날이었다.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실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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