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준은 유능한 외과의사다. 미도는 오랜 친구이자 동료다. 빼곡한 수술 스케줄, 반복되는 응급상황. 취미 많고 노는 거 좋아하던 익준은 이제 다섯 살 된 아이를 혼자 키우며 진료와 육아로 틈이 없다. 익준에게 미도가 묻는다.
"넌 요즘 너에게 뭐 해주는데.너를 위해 너는 너에게 뭐해 주는데."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한 장면이다.
미도가 익준에게 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봤다. 나는 나한테 뭐해줬지? 뭐해줬더라.
나는 나에게 옷도 사주고 가방도 사주고 커피도 사주고 맛있는 것도 사주고 책도 사주고, 하다흠칫했다. 나는 나에게 뭘 사주기만 했구나. 먹이고 입히기만 했구나.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묻지 않고 하고 싶은 걸 해주지 않았구나.
물건을 구입하고 소비하며 행복하다 느낀 순간도 있었다.겨우행복의 수준을 그 정도로 낮게 잡고 가치를 폄하시켰다. 잘 먹이고 입히는 일이 좋은 부모의 충분조건이 아니듯나 역시나를 생존시켰지만내 영혼을 살리는 일에는 관심 갖지 않았다.
결혼하고 30년. 두 아이 키우며 살림하고 일했다. 따뜻한 밥, 깨끗한 집으로 나를 증명하고내가 가진 것으로 나를 설명했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아이들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평수 늘려 이사하는 게성공이라 생각했다.직급 오르는 게 성장인 줄 알았다.사회적 욕망이내꿈이라오해했다. 욕망을 현실로 만드는 일을자아실현으로착각했다.
엄마는 내게 자주 '너부터 챙겨라'라는 말을 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행하고 빈둥거리고 세상의 과거와 미래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고 책을 읽으며 몽상을 하고 길 모퉁이를 걸으며 생각의 낚싯줄을 강 속 깊이 담글 수 있기'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p164)를 바란다는 말을 여섯 글자로 압축한 거라 생각한다.
너는 너에게 뭐해 주는데.
나는 내 영혼을 돌봐. 허기지지 않게 외롭지 않게 보살펴. 내 영혼이 하는 말에 귀 기울여. 나만의 꿈을 꿀 수 있게 해줘.
여행을 하고 빈둥거리고 세상을 깊게 생각하고 책을 읽고 몽상을 하고 길 모퉁이를 걷겠다.생각의 낚싯줄을 드리우고미간의 폭보다 좁아져 점이 돼버린 시야를 넓히겠다. 그것이내가 내게 해주고 싶은 것, 나의 꿈. 지금 쓰는 이 글 역시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