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있는 소중한 모래알을 위해
지난 몇 달부터 생활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생각은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지 않다.'이다.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 삶의 무게가 숨통을 조여 온다.
살아있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 것은 모든 즐거움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었다. 행복을 생각하게 되면 그 순간 아픔이 같이 찾아온다. 행복하기보다는 아프지 않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그래서 좋아하던 모든 것을 잊으려고 했다.
중독에 가까울 정도로 마셨던 커피를 끊었다. 맛있게 내린 핸드드립이든 사무실의 커피 머신에서 내린 공장제 커피든 가리지 않고 하루에 최소 두 세 잔은 마셨다. 그러한 커피를 피하고 싶어졌다.
노래도 듣지 않는다. 밴드 음악을 즐겼다. 악기마다 내뿜는 존재감과 그 모든 악기들의 소리를 지휘하는 보컬의 소리에 몸을 맡기고 즐겼다. 밴드 음악뿐만이 아니다. 아이돌 음악부터 인디 음악, 일본 음악, 재즈까지 항상 귀에는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그런데 한 순간 멜로디가 뚝 끊겼다.
듣는 콘텐츠뿐만이 아니라 다른 콘텐츠도 삶에서 재생되지 않는다. 보는 콘텐츠가 없다. 지금은 그냥 정적이 익숙하다.
이게 사람 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진즉 알고는 있다. 즐거움을 잊으려는 이러한 시도들이 좋은 방향으로 삶을 이끌어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래서 봄이 다 가기 전에 잊으려 했던 즐거움을 다시 찾아보려고 했다.
유튜브 콘텐츠를 다시 틀어보았다. 처음은 업무와 관련된 콘텐츠를 먼저 보았다. 공부한다는 생각이었다. 알고리즘이 뭔가 연결되어서 다른 콘텐츠도 틀어주겠지.
삶에 노래를 추가했다. 좋아하는 일본 밴드 음악을 플레이리스트 삼아 귀에 이어폰을 꽂고 걸었다. 퇴근길 노래와 함께 퇴근했다. 그래도 조금은 밝은 노래로. 조금은 삶을 긍정할 수 있는 노래로, 희망을 주는 노래로.
주말에는 카페를 찾아 나와보았다. 비가 선선히 내리는 주말, 커피 향과 함께 책을 읽고 작업을 하는 시간을 보냈다. 원래도 일상을 여행하고 리프레쉬하기 위한 나름의 의식이었다.
하지만
즐거움을 잊으려 했더니, 즐거움을 잃어버렸다. 이러한 모든 시도들이 다행히도(?) 즐겁지가 않았다. 대체로 모든 즐거움에 무심했다. 일하고 밥 먹을 때 틀어놓은 콘텐츠는 약간 거슬려서 결국에는 끄게 되었다. 이어폰을 통해 귀에 흘러들어 간 노래는 마음에 닿지 못하고 귀를 스쳐 흘러 지나갔다. 카페에서 커피는 맛있었지만, 이전에 느꼈던 감정은 아니었다. 오히려 멍하니 있는 시간에서 다른 생각으로 더 깊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시간을 보냈다는 만족감 딱 그 정도였다.
잃어버린 즐거움에 어쩔 수 없이 아쉬움은 느낀다. 많은 소중한 것들을 점점 내보내고 있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도 더 잃어버리겠지. 알고 있지만 손 틈새로 빠지는 너무 고운 모래알처럼 붙잡지 못하고 흘려보내고 있다. 주먹을 움켜쥐면 잡을 수 있을 텐데, 손아귀에 힘이 없어 놓치고만 있는 것을 바라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라 흘러내려가지 않은 모래알들이 있기를 간절히 바랄 수밖에. 그 모래알들만큼은 언젠가 힘이 닿는다면 꽉 붙잡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