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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Jun 30. 2022

얼마나 자신이 중요한지 확신하지 못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미 알고 있지만 또 알려주고픈 언니에게

하늘에서 구멍이 났는지 하느님이 슬픈 일이 있으신 건지 가차 없이 쏟아지는 빗줄기를 뚫고 마트에 다녀왔어요. 이렇게 비가 많이 내리는 날 운전을 하고 나갔던 건 또 처음이라 우두두둑 하고 떨어지는 빗줄기가 무섭기도 하고 한편으론 답답했던 마음을 깨끗이 씻어주는 것 같기도 해서 반가웠어요. 비 오는 날 차 안에서 홀로 운전하는 시간은 어찌나 황홀한지요. 더욱이 제가 좋아하는 이금희 아나운서의 '사랑하기 좋은 날' 오프닝이 흘러나오더군요. "오늘도 애쓰셨습니다"는 한마디가 고마웠어요. 아이들 비 맞게 하지 않으려고 이곳저곳 뛰어다닌 저를 어루만져 주는 것 같았거든요.  습하고 무더운 거기다 변덕까지 심한 비 오는 나날들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언니의 안부를 물으려고 했는데, 인사가 길어졌어요. 제가 답장이 많이 늦었죠?



사실 언니의 이번 달 편지를 받고 울컥 눈물이 차올랐어요. 언니에게 내 상황을 시시콜콜 이야기하지도 않았는데, 괜히 말하고 나면 맘이 더 아플 것 같아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는데, 척하니 알아채고는 이번 달 주제도 정하지 않고 보낸 편지에 마음이 요동쳤어요.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데 옆에 남펴니가 있었다면 어쩔 뻔했나 싶었다니까요.



답답하지 않고 풀리는 문제가 어디 문제겠냐만은, 시련 없이 단단해지는 사람은 없겠지만은, 이제는 조금 편해지고 싶다는 생각과 그럼에도 계속 나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뒤엉켜 마음이 복잡할 때였어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는 '복구자 비필고'라를 글귀를 연필로 사각사각 따라 써 보았어요. 내 운명은 무엇일까? 나도 날 수 있을까? 엎드린 채로 끝나는 운명은 아닐까? 그 불안함 속에서도 언니의 말이 좋았어요. 엎드린 시간만큼 높게 날 거라는 말.



맞아요, 언니 저 높게 날 거예요. 언젠가는요. 언니랑 옆에서 나란히요. 그 언젠가가 언제 올지 모른다지만 긴 인생 살다 보면 기회 한 번 오지 않겠어요? 바짝 다가온 기회를 또 놓쳐 버린다고 해도 그래서 눈에 보이는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포기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어요. 왜냐면요, 나는 중요하니까요. 내가 중요하니까 내가 하고 싶은 것들, 내가 하는 생각, 내가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넌 중요해』 크리스티안 로빈슨 지음/ 신형건 옮김/ 보물창고

그림책 『넌 중요해』에는 이런 글이 나와요.


맨 먼저 가기도 하고 맨 나중에 가기도 하지. 넌 중요해.
네가 단지 가스 상태에 불과할지라도 말이야. 넌 중요해.
때때로 길을 잃은 것 같고 외롭게 느껴지기도 할 거야. 그래도 넌 중요해.

맨 먼저 가는 사람은 못되었어요. 늘 느리게 가는 사람 중에 하나죠. 하지만 묵묵히 가는 중요한 사람 중에 하나라고 말하고 싶어요. 단지 가스 상태에 불과할 때가 있어요. 눈에 보이지도 않고 그냥 존재하기만 하는 상태. 하지만 존재 자체만으로도 나는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어요. 때때로 길을 잃고 외롭게 느껴질 때가 요즘이었어요. 그런 때에도 나는 중요해요. 나는 나니까요. 그리고 그런 나에게 이런 사랑을 듬뿍 전해주는 언니 같은 사람이 옆에 있으니까요. 나는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느낄 수 있어요.




언니의 편지에 이 책을 보내고 싶어요. 언니는 이미 언니의 길을 단단하게 꾸리며 훨훨 날아오르고 있지만요, 가끔은 날갯짓을 하기 힘들어지는 궂은 날씨가 되면, 요즘처럼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천둥번개가 치는 날이면, 이 편지를 펼쳐보면 좋겠어요. 이 책을 펼쳐보면 좋겠어요. 언니는 언니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존재라는 걸 잊지 말았음 해요.





6월의 편지를 주고받을 생각에 설레어하며 5월의 답장을 썼는데, 6월의 답장은 생각보다 더 많이 늦어졌네요. 늦어진 편지를 미안하게 건네던 언니 마음을 조금 편하게 해주고 싶어서, 부러 늦게 보낸 거라고 하면 속이 너무 훤히 보일까요? 속이 훤히 보이는 거짓말도 마음을 담은 동생의 애교라고 생각해 줄 마음 넓은 언니니까 이렇게라도 핑계를 대어 보아요.



어느덧 2022년도 반환점을 돌고 있어요. 새해를 맞이하며 각자의 새로운 프로젝트를 꿈꾸고 설렘 반 긴장 반으로 맘을 졸이던 우리가 이제는 푸드덕푸드덕 날갯짓을 끝내고, 이제는 날개를 쫙 펼치고 바람을 느끼기 시작한 것 같아요. 여전히 흔들리며 날아가고 있지만 방향을 잡아주는 언니가 있어 좋아요. 뒤따라 갈게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반환점을 돌아 새로운 길로 들어선 7월의 어느 날, 한여름 밤에 우리 또 편지해요.




추신: 언니가 건넨 편지에 언니는 자신을 지극히 평범하다고 표현했어요. 근데 오늘 <나의 해방일지>를 돌려보는 데 우리가 추앙하는 구씨가 그러더라고요. 평범하다는 건 남들이 욕망하는 것을 욕망하는 거라고. 끌어야 하는 유모차를 가져야 하는 것처럼. 언니, 언니 평범하지 않아요. 유모차 따윈 필요 없는 비범한 여자라는 거 말해주고 싶어요. 잘 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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