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지도 추하지도 늙지도 않는 언니에게, 더 젊어지고 싶은 동생이
어딘가에서 본 적 있는데 인생의 속도는 나이에 비례한다고 해요. 10살이 되기 전에는 하루하루가 더디게 흘러가서 얼른 어른이 되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어른이 되고 나니 눈만 뜨면 월요일, 돌아서면 월요일이 계속되는 느낌인 듯해요. 저도 프리랜서 맘으로 공사다망한 일로 하루를 채워나가는 중이랍니다. 스포츠카를 타고 막 달리는 느낌이랄까요? 정신없는 바람 세례에 정신을 못 차리는 느낌이랄까요?
하물며 사업체를 운영하는 대표님인 언니는 얼마나 눈코 뜰 새 없이 바쁠는지요. 언니의 시간은 저보다 시간당 6km는 빠르지 않을까 생각해요(우린 여섯 살 차이니까^^) 아직 로켓까지는 아니더라도 스포츠카를 넘어선 풀옵션이 갖춰진 경주용 차 정도는 되지 않을까요? 그런 정신없는 하루 속에서도 우리가 이렇게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참 좋아요. 언니의 육성이 들리는 듯한 편지는, 비 오는 날 몰아치는 비를 막아주는 스포츠카의 지붕 같은 느낌이니까요.
'파랑새' 책을 읽으며 눈물이 터져버렸다는 언니의 이야기를 들으니 고개가 끄덕여졌어요. 그땐 언니도 어렸겠죠? 거기에 연년생 아이들과 매일 나의 예상과는 다르면서도, 또 한편으론 정해진 듯 똑같은 일을 하는 하루가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특히 두 아이와 대화가 안 통할 때가 그랬어요. 아이가 원하는 말(엄마 물 줘, 졸려, 놀아줘, 책 읽어줘 등등)은 내가 다 알고 있지만, 내가 하는 말(엄마 힘들어, 엄마 우울해, 엄마 무기력해, 엄마도 빛나고 싶어)을 이 아이가 모르는 것 같았던 때, 아이가 그리 예쁘지만은 않았어요. 그때 저는 '내게 모성애가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니까요. 방송, 기사, 교육 자료 등을 통해 엄마라면 당연히 모성애가 있어야 한다는 학습을 받아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죠.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아이가 자라서 눈을 맞추고 마음을 통할 수 있게 되었을 때, 파랑새의 한 구절처럼 아이가 입을 맞춰 주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일렁였어요. 부자가 된 느낌이 들었어요. 어떤 물욕과 소유욕도 나를 이겨먹을 수 없게 되었어요. 아이들의 사랑이 나를 채우고 나서는요. 그러고 보면 모성애는 원래부터 타고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직접 아이의 사랑이 표현되고 전달되면 그 양분이 모성애의 꽃을 피우게 하는 것 같아요.
파랑새의 노래(번 코우스키 지음, 김경희 옮김/미디어 창비)
그림책 『파랑새의 노래』에는 언니들처럼 노래를 잘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아기 파랑새가 나와요. 파랑새는 자신만의 노래를 찾기 위해 집을 떠나죠. 이곳저곳을 다니며 특별한 노래를 들어본 적 있느냐고 물어요. 그러고는 친구들이 알려준 곳을 찾아 가는데요, 드디어 특별한 노래를 찾았다며 훨훨 날아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자신의 집이었어요. 파랑새는 그 사실에 잠깐 실망을 하지만, 이내 자신의 여정을 말하는 파랑새의 목소리는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변해 있었어요.
가끔 우리는 엄마라서 무언가를 희생한다고 생각할 때가 많은 것 같아요. 엄마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다고요. 물론 틀린 말도 아니에요. 혼자였다면 절대 참지 않았을 인내심을 키우며 하고픈 말을 꿀꺽 삼키기도 하고, 하고 싶은 일을 저 멀리 가슴 한편에 묻어 두기도 하고요. 또 입고 싶은 옷, 먹고 싶은 음식도 양보하곤 하지요. 하지만 우리는 아이들에게 받은 사랑이 가득한 '엄마'라서, 모성애로 채워진 '엄마'라서 그 덕분에 할 수 있는 일들도 많아요.
누군가를 충분히 품어 줄 수 있고, 아픈 사람들에게 선뜻 따뜻함을 나누어 줄 수 있고, 어떤 문제도 할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고, 가끔 초인적인 괴력을 내뿜기도 하고요. 엄마라서, 엄마 덕분에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걸 잊지 말아요. 그 모든 나의 시간들이 쌓여서 아름다운 나만의 목소리, 나만의 노래가 탄생하는 거란 걸, 이 세상 모든 엄마들이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엊그제, 지식책을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고사성어 책을 빌려왔어요.
책을 보느라 조용하던 아들이 갑자기 달려오더니 제게 그러더군요.
"엄마는 나를 십중팔구 사랑하지? 히히"
고사성어를 써서 '나 잘했지? 나 똑똑하지?' 하며 어깨를 뿜뿜하는 모습이 귀여웠어요.
아이의 반짝이는 눈망울이 제게 입을 맞추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대답했죠.
"아니, 엄마는 너를 십중 십십, 아니 십중 백백 사랑해."
그러자 아들의 얼굴에 귀여운 달걀 알 두 개가 떠올랐어요. 웃음을 잔뜩 머금은 광대가 선명히 드러났죠.
"아하, 그럼 나는 엄마를 십중 백만, 십중 만만 사랑해." 하며 꼬옥 안아주더라고요.
이러니 제가 부자가 될 수밖에요. 눈 속 깊은 곳에 별이 가득한 별 부자가 될 수밖에요.
근데 왜 맨날 늙는 건지.... 그건 좀 미스터리한데요...
음, 저도 제 모성을 다시 돌아보고 반성할 수 있음에 감사하면 다시 젊어질까요?
기미가 간절히 사라지길 바라며 아이들을 더 사랑해 볼게요.
언니가 보낸 모성애에 관한 편지가 궁금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