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밥 더 줘!

밥 안 먹는 아이

by 책닮녀

우리 집에는 밥 도장 표가 있다. 100개의 칸을 채우면 2만 원어치에 상당하는, 자신이 원하는 선물을 고를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표에 도장을 채우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밥을 정해진 시간 안에 먹으면 성공! 15분 안에 먹으면 무려 도장 2개, 25분 안에 먹으면 도장 1개를 얻는다.


그렇게 시작한 밥과의 전쟁.

처음 미션을 내 걸었을 때, 반응이 참 좋았다. 100개를 다 찍으면 어떤 선물을 살지 행복한 고민을 나누며 아이들은 즐거운 식사를 이어갔다. 그렇게 며칠이 흐르고, 도장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30개 남짓 지났을 때, 정체기에 들어섰다. 도장의 수는 늘 생각을 않고, 25분을 넘기고 나면 먹어야겠다는 의욕이 사라져, 하염없이 식사시간이 길어졌다. 남편은 다시 옵션을 추가했다. 30분이 넘어가면 미리 찍었던 도장 1개가 사라지고, 식사시간 40분을 초과하면 도장 2개가 사라지는 헤어 나올 수 없는 늪 같은 규율을 덧붙였다.


식사 시간을 두고 이런 포상을 걸다니... 우리 집 아이들이 얼마나 밥을 느리게, 또 얼마나 안 먹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을 테다. 어릴 적부터 먹는 걸 그리 즐기지 않았다. 밥뿐만 아니라 군것질도 많은 양을 하지 않는다. 특히 둘째는 먹는 것에 큰 욕심이 없어, 무엇이든 조금 먹는다. 군것질 때문에 밥맛이 없는 것일까 하는 우려에, 어릴 적부터 간식을 많이 주지도 않았다. 지금도 친구들이 흔히 먹는 과자나 젤리는 한 달에 한두 번 캠핑이나 여행을 떠나야만 맛볼 수 있는 귀한 메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밥 도장은 여전히 정체기, 아니 후퇴 기를 맞이하고 있다.


모래알 씹듯이 어찌나 맛없게 먹는지, 한번 볼에 문 음식은 5분이 지나도록 들어가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밥을 보면 늘 많다고 불평하기 일수고, 먹다가 속이 안 좋다며 화장실 가기는 주 특기, 초반에는 즐겁게 장난치며 먹다가 식사 종료 5분을 남겨두고 허겁지겁 먹는 바람에 웩웩거리는 날도 자주 있다. 먹는 즐거움이라곤 눈곱만큼도 모르는 아이들이 나는 안타깝다.


사실 우리 부부는 먹을 것에 항상 진심이다. 떡볶이 하나를 먹더라도 허투루 먹을 수 없다. 어울리는 음식이 있으면 소주 한잔, 맥주 한잔 걸쳐야 제맛이고, 새로운 향신료를 넣어서 먹는 것을 꺼리지 않고, 음식의 문화에 맞게 제대로 즐기려고 노력한다. 또 시댁이나 친정 어느 곳에 가더라도, 부부동반 모임에 가더라도 늘 많이 먹는 대식가이기도 하다.


그런 둘 사이에서 나온 우리 아이들은 왜 그럴까? 아이들은 부모를 보고 자란다고 하는데, 부모를 닮는다고 하는데, 아이들은 먹는 즐거움을 전혀 알지 못한다. 아니, 오히려 먹는 게 괴롭고 힘든 일임을 온몸으로 표현한다.


안 먹는 아이, 보고 있으면 보고 있을수록 화가 치밀어 오르고, 타오르는 나의 식욕의 불씨에 확 찬물을 끼얹지만, 곱씹어보면 지금 엄청 잘 먹는 나도, 먹는 인생의 흑역사가 어렴풋이 스친다. 밥 먹기 싫어 배 아프다고 거짓말 아닌 거짓말을 한 적도 있고, 엄마 몰래 급식을 먹지 않고 고스란히 반납한 적도 있었다. 그랬던 내가, 나이가 들고, 세월이 가니, 육해 진미 가리지 않고 무엇이든 잘 먹게 되고, 이제는 맛드러 지게 먹는다는 말을 마구마구 듣는다.


그래, 이 또한 지나가리라. 육아란 그런 것.

언젠가는 서로 많이 먹으려고 싸우는 날이 오겠지?

언젠가는 소고기 한 , , 세 , ,

계속 굽는 날이 오겠지?

언젠가는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먹는 즐거움을 알게 되는 날이 오겠지?


밥 도장 100개를 찍고

선물 플렉스를 하게 되는 날을 꿈 꾸며,

나는 오늘도 밥상을 차린다.


'엄마 나 밥 더 줘!'

라고 말하는 그날이 오늘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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