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쓰기홀릭

글 쓰기가 말하기보다 좋은 이유

쓰기 홀릭

by 책닮녀

저의 꿈은 아나운서였습니다. 어린 시절 <황현정의 앵커 만들기>라는 책을 읽으며 브라운관 속 나를 상상했습니다. 조금 더 자라,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밤늦도록 <정지영의 스위트 뮤직박스>를 들으며 달콤한 꿈을 꿈꾸었습니다. 아나운서를 꿈꾸었기에 글쓰기보다는 말하기를 좋아했습니다. 말을 잘한다는 칭찬은 저를 춤추게 했죠. 대학교에 가서는 방송국 아나운서로 활동했습니다.

대학 방송국에서는 아침, 점심, 저녁 오디오 방송이 편성되어 있습니다. 학교의 새로운 소식을 전하는 뉴스 프로그램, 전문 음악프로그램, 영화 프로그램 등 다양한 주제로 방송을 진행하지요. 당시만 하더라도 유튜브와 라이브 방송 같은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그리 활발하지 않았던 때라, 홈페이지나 엽서를 통해 받은 사연으로 방송을 하곤 했습니다. 아나운서부는 도착한 사연을 읽어주기도 하지만, 제작부와 보도부가 만들어 준 대본을 받아 들고, 더 맛깔나게 전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직접 내 목소리로 많은 것들을 알려주고, 들려준다는 게 참 좋은 일이기도 했지만, 가끔은 작가의 대본대로 움직여야 한다는 점이 조금 아쉽게 느껴지더군요.


하지만, 그런 아나운서에게도 작가와 피디의 역할이 주어지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바로 아침방송. 아침방송은 8시 20분부터 40분까지, 아나운서가 직접 선곡과 대본 작성, 그리고 진행까지 하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아침 8시까지 방송국에 도착해 필요한 시디를 챙기고, 엔지니어와의 호흡을 맞춘 후 진행을 하기란 여간 빠듯한 게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써준 멘트보다, 내가 쓴 글을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내 진심을 직접 전할 수 있다니, 대본을 쓸 때마다 설레었습니다. 가끔은 창작의 고통에 머리를 쥐어뜯을 때도 있었지만, 글쓰기를 좋아하게 된 시작은 그때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한 번은 아침 프로그램을 진행하다가 실수를 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가수가 표절 논란에 휩싸여 있던 상황이었는데요, 공정하게 해야 할 방송을 개인의 호감을 앞세워 말을 내뱉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참 희한한 게요, 대학 방송국의 방송을 학생들이 많이 듣지 않는 듯하여도, 틀리고 실수하면 어떻게 알고 연락이 옵니다. 또 선배들이 모니터를 많이 해주기도 하고요. 그렇게 작은 논란을 경험하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말도 글쓰기처럼 Backspace 버튼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말은 주워 담을 수가 없습니다.

이미 내뱉어진 이야기는 공기를 타고 멀리멀리 퍼져나가 찾을 수 없는 곳으로, 누군가의 귀와 머리, 마음속으로 파고들어 갑니다. 빛의 속도로 숨어버린 말들은 그곳에서 물과 따뜻한 햇볕, 양분이 되어 향긋한 꽃을 피워내거나, 아니면 시커멓고 퍼런 멍자국 속 쿰쿰한 냄새를 풍기며 썩은 곰팡이를 피워내기도 합니다.


누군가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말보다는 글로 표현해 보세요. 나만 보고 싶은 이야기도 글로 써도 좋습니다. 물론 글도 때로는 날카로운 칼이 되어 이곳저곳을 난도질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 번 더 생각하고, 두 번 더 들여다보고, 세 번 더 고민하는 글을 쓰면 됩니다. 쓰고 나서 이런 뜻이 아닌데,,, 싶을 때는 지우면 되고, 더 잘 어울리는 단어를 찾으면 지우고 다시 고치면 됩니다. 또 다 썼지만 썩 내키지 않을 때는 고이 접어 넣어두거나, 마음 가는 대로 아무렇게 꾸깃꾸깃 구겨서 쓰레기통으로 멋지게 골인하면 됩니다.


그리고는 하얗고 하얀 종이를 다시 가져오세요.

다시 쓰면서 눈으로 보고, 입으로 읽으며, 손으로 꾹꾹 눌러서 진심을 담아 써보세요.


지우고 고치고 다시 쓸 수 있는 글쓰기는 말보다 훨씬 매력적입니다.

오늘 하루, 글 한편 쓰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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