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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Nov 14. 2022

불편한 서점

불편한 서점이 휴남동 서점이 되기를 바라며

요즘 듣고 있는 북큐레이션 강의에서 서점 탐방이라는 숙제를 받았다. 직접 서점을 탐방해 보고 그 서점에 큐레이션 된 책들의 특이점을 찾아보라는 숙제였다. 서점 지기를 인터뷰하고 어떻게 서가를 운영하는지에 대해 조사하는 것이었다. 숙제를 듣고 나서 한 수강생이 자신은 이미 다녀온 곳을 토대로 숙제를 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자신이 다녀온 곳의 책방지기가 대부분의 작은 책방지기와는 다르게 인터뷰에 잘 응해주는 친절한 사람이었다며, 그래서 소개를 꼭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 마을 듣자 작은 책방이 그렇게도 불편한 공간이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내가 방문했던 작은 책방은 어땠더라 기억을 더듬었다.



지난 주말 서점에 방문하여 숙제를 제출한 몇몇 분들이 먼저 서점 탐방기를 발표했다. 대부분 대형서점보다는 작은 책방에 다녀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하나같이 작은 책방을 방문했을 때 조금 불편했다는 말을 했다. 공간마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대부분 헛걸음을 하거나, 무안함을 느끼고 돌아왔다. 한 분은 점심시간에 갔더니 식사로 인해 책방의 자리를 비운 상태였고, 바로 옆 다른 곳에 전화를 했더니 다른 지역으로 옮긴 상태였다. 어렵게 들어간 책방에서 몇 가지 질문을 할 때마다 연거푸 돌아온 대답은 '잘 모른다'는 말이었다고 한다. 또 다른 곳에서는 책을 추천해줄 수 있냐는 질문에 함부로 책을 추천하는 게 아니라며, 여기 서가에 있는 모든 책을 추천한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한다. 사진 촬영도 금지, 책을 넘겨 목차를 보는 일조차 눈치를 주는 곳도 있었다고 한다. 이러니 무안하고 불편할 수밖에.



내가 방문할 책방도 행여나 그럴까 봐 살짝 걱정이 되었지만, 블로그에 소식도 많이 올라오고 다양한 모임도 주최하는 글이 있어 괜찮을 거라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대부분의 작은 책방이 오후 시간에 문을 열기에, 아이들이 학원 간 사이 막간을 이용해 다녀올 셈이었다. 바로 옆 동네이지만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골목 사이사이를 통과하여 지도가 가리키는 주택가에 들어갔다. 어렵게 찾은 주택 지하 1층에 자리한 작은 책방. 오랜만에 특별한 서가를 만날 생각에 들뜬 마음이었다. 양손 가득 좋아하는 책도 사 오려고  에코백을 따로 가방에 넣고 지갑도 두둑하게 챙겼다. 



그러나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 발을 내디뎠을 때, 싸한 느낌이 들었다. 계단을 내려가 노란 대문을 마주했을 때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직감이 들었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안은 너무 조용했기 때문이다. 두리번거리다 책방지기가 써놓은 연락처를 발견했다. 혹시 가까운 곳에 외출한 건 아닐까? 아니면 내가 '똑똑똑' 하는 소리를 못 들은 건 아닐까? 가녀린 희망의 끈을 붙잡고 전화를 걸었다. 목소리로만 치면 이상형에 가까운, 세상에서 가장 지적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나는 남자의 목소리가 살짝 떨리는 것을 느끼며 이미 어떤 대답이 올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재차 확인했다.

"OOO이죠? 오늘 서가는 오픈을 안 하신 건가요?"

수화기를 타고 넘어오는 목소리가 전부인,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당황한 기색이 그려졌다. 

"아.. 문이 잠겨있죠. 오늘 제가 몸이 안 좋아서 일찍 닫게 되었네요."

다음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렸지만 다음 말은 없었다. 내가 말을 이었다.

"네, 잘 알겠습니다."

"네"




행여나 이런 일이 발생할까 봐 출발하기 전에 네이버에 등록된 영업 정보를 확인하고 갔었다. 월요일에 휴무가 많은 서점의 특징을 고려해 휴무 체크도 했었다. 그런데 몸이 좋지 않아 일찍 닫았다니... 물론 혼자 운영하는 공간이니 힘에 부치고 아프면 그럴 수도 있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하지만 그렇게 소중한 시간을 내어 찾아간 자신의 고객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가 없었던 게 참 아쉬웠다. 왜 사람들이 작은 책방을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았다. 



작은 책방은 대형서점과는 다르게 주인장의 성격과 취향이 묻어나는 개인의 공간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떻게 책을 전시해 놓았는지 볼 수 있는 공간이다. 그래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궁금해하고 관심을 갖는다. 서로의 책 취향을 공유하고 하고 나누며 그 속에서 서로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것들은 배우고 즐거움을 얻는다. 그렇기에 작은 책방이 더 많이 생기고 더 오래 살아남았으면 좋겠다. 주변에 있는 몇몇 책방을 방문하고 전국의 모든 작은 책방이 불편하기 그지없다고 성급한 일반화를 할 수는 없겠지만, 다녀온 분들이 대부분 불편한 감정을 느꼈다면,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편안할 곳이 될 수 있을지를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찾을 수 있게 될는지를 꼭 고민해 보면 좋겠다. 





최근에 아주 재미있게 읽었던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소설이 생각난다. 책을 읽으며 휴남동 서점처럼 맘 편히 있을 수 있는 서점이 우리 곁에 어디든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누구나 와서 쉬었다 갈 수 있는 편안한 공간, 책마다 다정한 말을 남겨주는 주인장이 있고, 책과 곁들일 커피에 진심을 쏟으며 가끔 시음해보라고 커피를 건네는 바리스타가 있는, 어떤 책이 좋냐고 믿고 물어볼 수 있는 책 추천 전문가가 존재하고, 또 때로는 책을 읽지 않아도 책 냄새와 책장 넘기는 소리에 열심히 뜨개질을 해도 되는 그런 작은 서점이 우리 곁에 꼭 존재하면 좋겠다. 서로의 마음에 잠깐의 휴식을 줄 수 있는 작은 구석 같은 그런 서점이 늘어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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