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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Feb 16. 2023

친구, 인 연

1화

같은 학원에 다니는 혜수와 윤서, 연은 한 참 수다를 떨고 있었다. 

"쟤 왜 저래? 미친 거 아냐?"

윤서가 자리를 뜨자마자 혜수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이렇게 내뱉었다. 순간 옆에 있던 연은 흠칫했다.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놀란 가슴을 붙잡고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불과 5분 전만 해도 혜수는 윤서에게 다음 시간에도 같이 앉자며 팔짱을 끼고 몸을 기대며 친근한 척을 했다. 진짜 좋아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시야에서 윤서가 사라지자마자 가면이라도 쓴 듯 표정이 바뀌었다. 그 광경을 보며 연은 등허리에 좁쌀이 돋아나고 털이 쭈볏쭈볏 일어났다. 무어라 해야 할지 몰라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간식만 입안에 집어넣고 있었다. 그 사이 윤서가 돌아왔고 혜수는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의 가면으로 바꾸어 쓰고는 아무렇지 않게 친근함을 표했다. 연은 살짝 무서웠다.



다음 날, 학원에서 1교시가 끝나고 여느 때처럼 간식방으로 향했다. 검사를 받느라 가장 늦게 간식방에 도착한 연은 공부 스트레스를 떨쳐버리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 생각에 신이 났다. 활짝 웃으며 문을 열었다. 벌컥, 문을 열자 소란스러웠던 실내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너무 숙연한 공기 가운데 혜수와 윤서의 눈길만 빠르게 오갔다. 무언가 불편하고 불안했다. 하지만 무슨 일이냐고 물을 용기가 나지 않아 연은 평소처럼 옆으로 가 과자를 꺼냈다. 늘 함께 나누어 먹었는데 그날따라 혜수도 윤서도, 다른 친구들도 연의 과자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옆에 있는데도 옆에 없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고 연이 말을 걸어도 미적미적 대답하는 척을 하다가 능구렁이처럼 다른 이야기로 담을 타고 넘어갔다. 그다지 크지도 않은 간식방이 엄청나게 크게 느껴졌다. 그 커다란 방 속에 과자 부스러기만큼의 존재감도 없는 것 같아 연은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아픈 마음보다는 불안했다. 어제 혜수가 윤서가 없는 틈을 타 욕을 한 것처럼 자신에게도 그랬을까 봐 불안하고 두려웠다.



과자가 짠맛이었는지 단맛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간식시간이 어영부영 끝이 나고 모두들 자리로 돌아가 시험을 보았다. 시험시간에는 대화를 할 수 없기에 별일 없이 마무리가 되었다. 하지만 연은 여전히 불안했다. 시험을 끝내고 세 사람을 포함한 같은 반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모두 7명이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갑자기 혜수는 길거리 호떡이 먹고 싶다고 했다. 윤서는 자신이 호떡을 사주겠다고 말했다. 평소 무리와 어울리지 않는 두 명은 상관없다는 듯 인사를 하고 집으로 갔다. 늘 조용히 혜수 옆자리를 지키는 난정은 배가 불러서 먹고 싶지 않다고 했고 눈치 없는 남자친구인 도현이는 자신도 먹고 싶다며 손을 들었다. 윤서는 좋다며 다 같이 가자고 해놓고서는 연을 바라봤다. 그러곤 '2만 원이 있긴 한데 , 쓸 수 있는 돈은 3000원밖에 없어. 연이 너까지는 사줄 수 없을 것 같아.'라고 콕 집어 말했다. 평소 호떡을 즐겨 먹지는 않지만 친구들과 먹는 호떡은 맛있을 것 같아서, 또 이번 기회에 아이들과 다시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서성거리며 서 있던 연은 모두의 시선이 쏠리자 당황한 채로 '괜찮아'만 반복했다. 호떡 가게 앞에서 혜수와 윤서와 도현이는 호떡을 맛있게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중간중간 난정에게 말을 걸면서. 아이들은 마치 연은 그 자리에 없는 사람처럼 굴었다. 연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아이들 대화에 틈틈이 끼려고 노력해 봤지만, 그럴 때마다 혜수는 이내 주도권을 잡아채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아이들은 호떡을 모두 목구멍으로 집어넣고 포만감 가득한 배를 어루만지며 손을 흔들었다. 10분가량 떠들며 서 있던 시간은 연에게는 몇 날 며칠의 시간 같았고, 따뜻한 호떡을 먹고 올라간 체온 때문에 비교적 따뜻한 겨울밤이라고 다들 느꼈지만, 연에게는 한 없이 시린 겨울밤이었다.



그날 밤, 연은 집에 돌아와 마르고 닳도록 읽은 빨간 머리 앤을 펼쳤다. 


"매슈 아저씨처럼 처음엔 모르지만, 나중에 알게 되죠. 제가 생각했던 것처럼 마음이 맞는 사람이 그렇게 드문 건 아니에요. 세상에 그런 사람이 무척 많이 있다는 걸 알게 되어 정말 신나요."


형광펜으로 그어놓을 만큼 좋아하던 글귀였다. 이 구간을 읽으며 늘 끄덕끄덕 남북을 가로짓던 고개는 동서를 가르며 바람을 일으켰다. 항상 싱그런 미소를 선물하던 구절은, 앙 다문 입꼬리를 아래로 잡아당겼다. 연은 앤의 말이 처음으로 틀렸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모르지만, 나중엔 알게 된다고. 자신이 생각했던 마음이 맞는 사람이 점차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린다고. 세상에 그런 사람이 무척이나 많다는 사실이 슬펐다. 그럼에도 여전히 빨간 머리 앤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낭랑하고 희망에 찬 목소리를. 연은 그 구절을 읽고 또 읽었다.


'마음이 맞는 사람이 그렇게 드문건 아니에요.

 마음이 맞는 사람이 그렇게 드문 건 아니에요.'






*허구의 이야기를 써보았습니다. 1화라고 썼지만 2화는 언제 쓸지 모르겠고요. 어떻게 끝내야할지도 모르겠네요. 음 그냥 가끔 써보겠습니다. 되는 만큼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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