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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Feb 23. 2023

육아, 참 어렵다

갈비대첩에서 참패

어제 오후 여유롭게 뭐해 먹냐는 넋두리를 글로 담아내고는 저녁에는 배달 후 밀려오는 설거지마저 하기 싫어서 외식을 할 결심을 했다. 마침 남편도 그리 늦지 않게 퇴근을 한다고 해서 학원을 마친 아이들과 함께 회사 앞으로 걸어갔다. 어영부영하다보니 7시 반 정도가 되었고, 큰 아이가 먹고 싶다고 한 즉석떡볶이 집은 저녁식사 주문을 마감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했다. 평소 예민한 편이고 자신이 좋아하는 메뉴 이외에는 외식을 즐기지 않는 큰 아이는 집에 가서 밥을 먹자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나는 7시 반에 들어가 밥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고 싶지 않아 애써 못들은 척 했다. 그때 집으로 갔어야 했는데....때마침 옆에 있던 작은아이가 갈비를 먹고 싶다고 큰 소리로 강력하게 말했다. 평소 자주 가던 갈빗집은 큰 아이도 좋아하던 곳이고, 며칠 전 먹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 터라 갈비집으로 향했다. 큰 아이의 표정이 썩 즐거워보이지는 않았지만 크게 나쁘지도 않았다. 조금 저렴한 떡볶이로 막으려다가 세곱절은 넘는 가격인 갈비로 나의 피로를 막게 되었지만, 뭐 이왕 온김에 맛나게 배불리 먹는 호사를 누려야지 마음을 먹었다. 다음에 또 아끼면 되니까.


갈비 한판이 구워졌다. 네 명의 앞접시에 조금씩 분배하고 나니 얼마되지 않았다. 아시다시피 고기 먹다가 끊기면 그건 예의가 아니므로 우리는 이어서 고기를 추가주문했다. 또 갈비에게는 냉면이라는 옷을 입혀주는 것이 먹는자의 마땅한 도리이기에 후식 냉면도 함께 주문했다. 밀려오는 먹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바쁘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큰 아이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속이 좋지 않다고 티를 팍팍 내며 배를 만졌다. 어릴적에는 외식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서 집에서만 먹곤 했는데, 이제는 고학년이 되면서 조금 다양하게 먹기도 하고 잘 적응했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어릴적 처럼 누렇게 뜬 얼굴을 하고 앉아 있었다. 우리 부부는 또 그 악몽이 시작인가하는 두려움과 반복되는 상황에 대한 짜증에 고기맛이 점점 소실되어 가고 있음을 느꼈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는 화장실을 다녀오겠다고 했다. 나는 중간에 고기를 끊고 화장실에 동행했고, 화장실에가도 별 소득 없이 돌아온 아이는 도저히 못 먹겠다고 했다. 아이의 그 말을 듣자 나도 도저히 더 못먹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 추가 주문은 하지 말걸. 예의 좀 덜 차리고 살걸.



고기에 대한 예의를 지키다가 15만원이라는 거금의 외식비를 지불하고 세상 기분 찝찝하게 집으로 향했다. 자신 때문에 식사를 망친 것 같은 기분에 의기소침해 있는 아이를 보고 있으니 속상하기도 하고 조금 미안하기도 하고 어르고 달래어 기분을 풀어주었다. 그렇게 일단락 되는 듯 했는데, 차에 탄 아이는 급격히 상태가 나빠졌고 집에 와서도 속이 울렁거린다고 했다. 약국도 모두 문을 닫은 상태라 급한대로 편의점에 가서 약을 가져왔다. 아직 어른 몸무게가 되지 않아서 소화제 반알과 까스활명수를 내밀었다. 아무리 등을 두드려도 나오지 않던 아이의 속을 꽉 붙잡고 있던 구성물은 까스 활명수의 메스꺼운 액체가 들어가자마자 모두 쏟아져 나왔다. 저녁 먹은 것은 체했던 것이다.



대부분 체하고 구토를 하고 나면 막혀 있던 것을 뚫었으니 원상태로 복귀하는데, 큰 아이는 위장이 약하고 약한 체질이기에 한번 구토를 하고 나면 그 여파가 어마어마하게 오래 간다. 오늘 아침에도 속이 좋지 않다는 말로 시작하여 점심은 죽으로 대체하였다. 하루 중 삼분의 일의 혹을 조금 편하게 떼어놓고 살려고 하다가 오히려 더 큰 혹을 붙인, 나는 욕심많은 쌍혹부리 영감이 되어버렸다. 아이가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니 온갖 신경이 곤두서고, 나 역시 날카롭고 예민해지며, 배가 고프다가도 아이의 표정을 보면 식욕을 잃게 되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다이어트 중이라는. 



사실 아이의 체질적인 면도 영향을 끼치지만, 지금 아이는 극도로 불안한 상태라는 것을 안다. 엄마 아빠에게 더 이상 걱정끼치고 싶진 않지만, 그게 또 뜻대로 되지 않는 자신의 몸뚱아리 때문에 답답해 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더 불안하고 걱정되어서 마음 놓고 무언가를 먹을 수도 없다는 것을 이미 나는 알고 있다. 엄마니까. 그런데도 아이가 잘 먹지 않으면, 이건 못먹겠다 저것도 못 먹겠다 조금만 먹겠다 속이 안 좋다는 말들을 할 때면 한없이 화가 들끓어 오른다. 붙여 놓은 혹이 더 많은 화주머니라도 되는 것 마냥 속이 불타오른다. 



어떻게 하면 아이가 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을까? 죽이나 흰밥만 선호하는 예민한 아이를 양육자로서 그냥 내버려 두는 게 맞을까? 나는 아이의 영양에 왜 그렇게 집착할까? 육아 참 어렵다. 이제 머리도 크고 몸도 큰 아이를 보며 조금 수월해지나 했는데, 크면 클 수록 육아는 어렵고 더 어렵다. 아이 대신에 차라리 내가 속이 안좋으면 좋으련만, 육아처럼 내 맘대로 안 되는 게 또 있을까? 이 순간은 어떠한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고 힘이 빠지고 머리가 복잡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아이를 양육하고 보듬어야 하는 엄마이기에 스스로에게 위로의 말을 해본다. 그 어려운 육아를 잘 해왔고, 잘 하고 있고, 잘 할거라고. 아이도 잘 해왔고, 잘 하고 있고(?), 잘 할 거라고 말이다. 그리고 우리의 이 모든 고민과 시름을 잊게 해 줄 명확하고도 호쾌한 단 한가지의 방도가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건 바로 이 모두 지나간다는 것.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는 것을 다시금 떠올리며 마음을 토닥여본다.





어제와 같은 고민, 다른 마음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며. 

오늘 또 뭐 해 먹고 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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