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야구를 볼 때마다 화가 날까? 야구 관계자도 아니고, 구단에 어떤 지분이 있는 것도 아니고, 회수해야 할 나의 투자금이 들어간 것도 아니고, 가족이 야구인인 것은 더욱 아니다. 그냥 야구를 즐기는 팬일 뿐인데.
처음 야구를 좋아하기 전에는 응원하는 팀이 패하면 삶의 낙이 없다는 아빠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다. 야구가 뭐라고 경기에 지면 화를 내고, 공 하나에 화를 내고, 실수 하나에 화를 내고, 때때로는 경기에 이겨도 화를 내는 아빠를 보며 참 의아해했다. 더 의아한 사실은 그런 의아한 모습이 이제는 나의 모습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야구는 모름지기 일희일비하지 않아야 한다고 야구장 어디선가 주워 들어서는 팬으로서 뚝심 있게 기다려 주자고 다짐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야구를 좋아하면 좋아할수록 화를 낼 일이 많아진다.
일희일비하지 않으려 애를 쓰다 보니 일비일비하는 일이 많아졌다. 금방 기뻐하다가 역전패를 당할 까봐 대놓고 기뻐하지도 못하는 바람에, 기쁨을 꾹꾹 참는 게 일상이 되어버렸다. 솔직히 까놓고 말하자면 내가 응원하는 팀이 그다지 기뻐할 일이 별로 없었던 것도 한몫을 했다. 수비를 하던 와중에 상대팀에게 커다란 장타라도 하나 맞는 날이면 내 안에 어디에 숨어있었는지 알 수도 없는 신선한 속어들이 마구 쏟아진다. 또 무슨 징크스는 그렇게도 많은지, 이기고 있는 경기중계를 내가 보기 시작하면 꼭 지는 것 같아, 중계도 못 보고 힐끔힐끔 새로고침으로 스코어만 확인할 때도 있다. 어느 장소에서 중계를 보는지, 이어폰은 어떤 쪽에 끼는지도 경기 결과에 엄청난 결과를 주는 듯 신경을 쓰곤 한다.
이렇게도 이유 없이 화가 나고 나쁜 말을 쏟아내며 삶 속에서도 피곤하게 구는 야구를, 나는 도대체 왜 보는 걸까?
야구를 볼 때면 화도 나지만 야구를 볼 때마다 눈물이 나기도 한다. 삼진 아웃을 위해 공 하나하나 최선을 다하는 투수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보이지 않는 연습량이 그려져 박수를 보내고 싶어 진다. 마운드 위에서는 단 몇 개의 공으로 자신을 평가받지만 그 평가를 위해 수없이 흘렸을 땀방울이 눈에 선해서, 그래서 눈물이 나곤 한다. 또 며칠을 안타 없이 속앓이를 하던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며 보이는 그 눈빛, 그 속의 간절함을 보며 인생의 간절함을 느끼기도 한다. 무언가를 향한 집념, 열정 그리고 희망을.
어제도 내가 응원하는 팀은 졌다. 이겨도 화가 나는 게 야구인데 어제도 졌다. 생각해 보니 그 전날은 이겼는데 어떻게 이겨도 이런 식으로 이기냐고 화를 내긴 했었다. 하위팀과의 승부는 무조건 쉽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하위팀과의 승부는 조금 숨을 고르는 경기인데, 이틀 째 하위팀과 전력피칭을 하는 나의 팀을 보며 답답하고 짜증이 났기 때문이다. 출처가 불분명한 육두문자가 마음을 이리저리 휘젓는 가운데 머리도 식힐 겸 티브이 예능 프로그램 <최강야구>를 보았다. 남편 이대은의 투구를 보며 맘을 졸이는 아내 트루디. 트루디 옆에 앉은 관람석의 한 아이가 이런 말을 했단다. '왜 떨어요? 야구는 믿음이다!'라고.
그래, 일희일비하지 말고 믿어주기. 묵묵히 응원해 주기. 또다시 응원해 주기.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봄에만 반짝이라는 수식어를 늘 달고 다니는 우리 팀이 다시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는 요즘 불안하고 불안하고 불안한 마음을 믿음으로 채워보려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야구 넋두리를 해보았다. 야구 좀 본다고 하는 분들은 그래도 이 말도 안 되는 아무 말 대잔치를 끄덕끄덕 하며 이해해 주리라. 야구는 참 이상하고도 신기한 세계의 스포츠이자 인생의 축소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