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좋은 세상이 되기를 바라며 이 글을 씁니다

영화 <장기자랑>을 보고

by 책닮녀

영화를 보러 가는 순간까지도 몰랐다. 그들이 극단에 소속된 배우라는 것을. 아이들의 장기자랑을 모티브로 한 연극, 세월호 희생자 엄마들의 연극, 그래서 이 공연만 하는 줄 알았다. 단순히 아이들을 위해, 아이들을 대신해 하고 싶었던 공연이라고 생각하며 영화관에 갔다. 영화를 보고 나오며 나는 그제야 알았다. 그녀들의 도전은 결코 아이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고, 또 결코 일회성의 공연이 아니었음을. 그녀들의 생의 슬픔과 기쁨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팔딱팔딱 숨을 쉬는 공연이라고.



영화 상영 첫 주, 우리 동네에서 상영한다는 문구를 보고는 다음주에도 있겠지 싶었다. 개봉 첫주 일정이 바빠 둘째 주 셋째 주로 밀렸고 어쩌다보니 이제서야 영화를 관람하게 되었다. 이미 인근 동네에서는 영화를 내렸고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상영일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명 남짓 들어갈 수 있는 작은 공간에 나를 제외한 3명의 여성이 함께 관람을 했다.(전혀 모르는 사람이고 떨어져 앉았지만 깜깜하고 좁은 공간에 이 세분이 없었다면 영화를 관람하는 게 무서울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래서 여튼 감사하다는요!)



영화 관람 전, 후기를 살펴보고 갔다. 다들 그렇게 슬프지만은 않다고 웃음 포인트가 많다는 말을 했다. 몇 해 전 영화 <선물>을 보며 콧물 눈물 1년치를 2시간에 다 쏟아내었던 나는 이번 영화는 다르겠지 예상했는데, 역시 희생자들의 삶에서 눈물을 지우고는 감상할 수 없었다. 축축한 휴지와 축축한 몸 상태로 중간 중간 눈물을 머금은 웃음을 토해내며 그렇게 영화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영화를 보면 볼 수록 알 것 같았다. 왜 후기가 그랬는지. 왜 웃음 포인트에 더 포커스가 맞추어졌는지 말이다. 영화는 결코 축축 쳐지거나 절망적이거나 한스럽지 않았다. 그녀들의 진짜 삶이 그랬으니까.



'연극도 괜찮지'라는 한마디에 연극을 하고 싶어 안달이 난 엄마들이 되어 있었다는 이야기가 참 재미있었다. 그 때 연극도 괜찮지라는 말을 해서 얼마나 다행이었던지, 또 티격태격 말많고 아픔많은 극단을 이끄는 이렇게 신명나는 감독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이런 이야기를 다시 영화로 만들어 우리에게 보여준 감독이 있어서 또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시작된 연극 생활에서 그녀들의 삶은 아이들의 이야기에만 갇혀 있지 않다. 아이들이 못했던 장기자랑을 하고 아이들이 가지 못했던 제주도 땅을 밟지만 결코 아이들을 대신하기 위해서만 연극을 하지 않는다. 그녀들에게는 삶의 희열을 느끼는 순간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슬픔에 매몰되지 않을 순간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할 순간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자신의 삶이 그래도 의미있다고 느낄 순간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아이 잃은 엄마가 뭐가 그리 신나서 연극을 한다며 무대에 오르냐는 말을 할 수도 있겠지'라고 배우들은 표현한다. 하지만 그런 말은 전혀, 결코, 눈곱만큼도 떠오르지 않았다. 오히려 그 연극무대에 서주어 고맙다고, 용기내어 밖으로 나와 삶의 소중함을 몸소 보여주어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세월호 사건을 마주할 때 마다 불편하고 어려웠던 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였다. 나의 일상을 모두 내팽겨치고 뛰어가 그들의 옆에서 촛불을 함께 들고 서 있을 수 없는, 나는 그저 한낱 이기적인 인간같아서, 모르는 척 사는 게 나와 가족을 위해 더 편한거라 의미를 부여했었다.

영화의 말미에서 한 엄마의 말이 나를 깨고 나오도록 흔들었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아주 작은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는 말. 그래, 대단하지 않아도 아주 작은 밑거름 정도는 될 수 있으니까. 그들을 기억하고 기억하고 또 기억하며 다시 그런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 말이다. 한낱 이기적인 인간이기에 이기적인 일부터 해 보는 건 어떨까. 관심두지 않고 지나칠 수 있는 우리아이의 수학여행에, 우리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안전에,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마을에 마음을 쓰는 것도 어쩌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아주 작은 밑거름이 되지 않을까.



언젠가 극단 노란리본의 공연을 보러가고 싶다. 얼마나 아프냐고 괜찮냐고 위로해주고 싶다는 말 대신에 그녀들을 만나면 멋지다고 말해주고 싶다. 아무일도 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이렇게 멋지게 살아주어서, 그래서 우리가 두고두고 기억할 수 있게 해주어서, 또 나로 하여금 평생 잊지못할 글을 쓸 수 있게 해주어서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멋지게 살아나가는 엄마들을 늘 응원한다고.



잊지 않았습니다.

잊지 않을게요.




덧: 공연을 보러가고 싶은 또 한가지 이유는 과연 이번에는 주인공을 누가 맡았을까 무진장 궁금합니다!!! 노란리본은 누구신가요?


5월 5일 ~6일, 서울 산울림 소극장에서 극단의 신작 '연속,극'이 공연될 예정입니다. 페이스북에서 극단노란리본을 검색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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