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못해서 다행입니다

by 책닮녀

"공부만 잘하면 완벽한데..."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나의 최고의 단점을 공부를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학교에 면담 온 엄마에게도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웃픈 일화처럼 회자되고 있지만 사실 곱씹어보면 이 보다 더 수치스러운 이야기가 있을까 싶다. 공부만 잘하면 완벽할 텐데라는 말이 칭찬인지 욕인지. 다시 생각해봐도 생각해도 욕이다.



여기까지만 읽는다면 혹자는 내가 지지리도 공부를 못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뭐 그래도 그럭저럭 공부하고, 그냥저냥 대학에 가서 장학금도 꽤 받고 살았다. 단지 선생님이 생각하기에 좋은 대학에 가기 부족한 성적이었다. 또한 그 성적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에도 터무니없이 모자랐던 건 사실이다.



당시 대부분의 고등학생들이 그렇듯, 나는 공부에 관심이 없었다.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것이었고, 학생이니까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었다. 공부보다는 나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에 더 관심이 많았다. 방송부 활동을 하며 촬영을 하고 인터뷰도 하고 대본을 쓰는 일이 어찌나 재미있었던지 모른다. 시험기간을 제외하면 늘 취재한답시고 거리를 쏘다녔고, 촬영한답시고 떡볶이 집에 모여 앉아 머리를 맞대고 회의아닌 회의를 하곤 했다. 그러고 보니 그때에도 나는 무언가를 고안해 내고 그걸 실행에 옮기고 그 과정을 사람들과 나누는 걸 좋아하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즐기고 있었다.



공부 빼고는 무엇이든 열정적으로 몸을 던지던 나는 수능시험 성적에 맞추어, 집안 형편에 맞추어 대학에 진학했다. 대학에 진학하고 한참이 지나 졸업할 때 즈음이 돼서야 내가 원하는 곳에 취업하고, 내가 원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더 좋은 대학, 더 높은 성적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담임선생님이 왜 그렇게도 안타까워했는지를 조금은 이해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공부는 못해도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언제 가슴 설레어하는지를 잘 안다. 공부보다는 내 가슴이 하는 말을 잘 듣는 능력이 있으니까. 만약 내가 선생님의 바람대로, 열심히 공부만 했다면,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통유리로 된 직장에서, 9시와 6시 하루 두 번, 명찰을 찍으며 밋밋한 하루를 보내고 있지 않을까? 물론 그러한 인생이 모두 무미건조하고 의미 없는 건 아니지만,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향해 나아가는 삶이 더 좋다. 공부를 좀 못해도 공부를 좀 못하기에 옆도 뒤도 돌아보고, 나를 돌보는 그러한 삶이 더 마음에 든다.



그 시절 나처럼 공부 좀 못한다고 기죽어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괜찮다고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단, 내가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취재고 촬영이고 기획이고 다 집어 치우고 공부만 할 거란 사실은 비밀로 해 두기로.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