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념의 여인

집념의 원고 투고기, 그리고 출간

by 책닮녀

그러니까 때는 바야흐로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제 막 활동에 시동을 걸던 그림책 활동가로서의 삶에 코로나로 인해 집에 콕 박히기 시작하면서 제동이 걸렸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활동을 이어가는 사람들을 둘러보면 그림책과 관련된 책을 낸 저자들이 많았다. 그들은 오히려 온라인 세상에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었다. 그들을 보며 나도 언젠가 책을 꼭 써야겠다는,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과 그림책으로 연결되고 말겠다는 다짐을 했다.


내 이름으로 책 한 권 내보아야겠다는 막연한 생각만 하던 내게 윗집 언니가 던진 한마디가 작은 불씨가 되어 타올랐다. 당장 한번 써보자며 엉겁결에 글쓰기를 시작했다. 혼자 쓰는 건 초보자에게 매우 어려운 일이므로 함께 손을 잡고 써줄 글쓰기 모임에 들어갔다. 새벽 기상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동시간대에 모니터 앞에 앉아 글을 작성하고, 서로의 글을 공유하고 응원했다. 책 쓰기라고는 아무것도 모른 채 주어진 글을 쓰면서 나는 생각했다. 진짜 책을 써보아야겠다고. 내가 그토록 언젠가는 써야겠다고 생각한 책을 이렇게 한편 한편 글 쓰듯 써보아야겠다고.



또 다른 온라인 글쓰기 모임에 들어가 책 쓰기 용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며 작법서를 마구 읽었다. 책들이 알려주는 방식으로 원고를 완성했다. 신인작가라면 한 권의 책 분량인 40 꼭지를 완성하여 투고를 해야 계약가능성이 있다는 말에 40 꼭지의 목차를 꾸렸다. 주말을 제외하고 주 5일 매일 1편씩 두 달 동안 글을 써나갔다. 작법서 뒤쪽 투고 관련 팁을 보며 기획서를 쓰고, 메일 주소를 찾고, 정성스레 투고 메일을 썼다. 100여 군데에 메일을 보냈지만 별 다른 연락이 없었다. 100군데에 보냈는데 한 군데도 연락이 없다고? 오기가 생겼다. 누가 이기는지 한번 끝까지 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획서를 수정했다. 조금 더 눈길을 끄는 제목으로 바꾸어 투고를 이어갔다. 또 100여 군데에 더 보냈다. 출간을 할 수 없지만 이런 방향으로 수정을 하는 게 좋을 거라는 정성스러운 거절메일과 아쉽지만 자신들과는 출간방향이 맞지 않는다는 다소 형식적인 거절메일과 아무 말 없이 무응답으로 대응하는 거절메시지에 허덕일 때 즈음, 한 곳에서 만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주변에 이미 출판을 경험한 이들은 출판사에서 먼저 만나자고 제안한 것은 거의 계약된 것과 다름없다며 희망으로 나를 밀어 넣었다. 그렇게 편집자와 나는 강남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만약에 계약을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알려주기는 했지만, 이 만약은 대표가 나의 원고를 승낙했을 때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소식을 주겠다는 말을 가슴에 묻은 채 나는 집으로 돌아왔고 며칠 뒤, 장문의 메시지를 받았다. 계약을 할 수는 없다고. 실망스러웠지만 문자에는 내 원고를 애정하는 편집자의 마음이 느껴졌다. 향후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매우 상세히 피드백해 주었고, 그 피드백을 받아들이려면 원고를 모두 뜯어고쳐야 했기에 나는 그날로 투고를 멈추었다.



그렇게 1년이 흘렀다. 계절이 바뀌어가는 시간 동안 나의 원고는 늘 가슴에 파묻혀있었다. 다시 투고를 시작해야 한다는, 책을 내고 싶다는 열망이 커져왔다. 많은 거절메일 속에 적혀있었던 말이 생각났다. 실용서를 쓰면 책을 내주겠다는 말. 하지만 내가 쓰고 싶은 원고는 따로 있었다. 대부분은 일단 실용서를 쓰고 그 이후에 원하는 것을 쓰라고 했다. 그렇게 해보려고도 했지만 마음이 동하지 않아서 글이 써지지 않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내게 원하는 걸 하라는 말을 해 준 단 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의 말 덕분에 나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내가 쓰고 싶은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기존의 원고 중 좋은 부분만을 오려내어 다시 새글을 쓰고 버무려 다른 원고를 만들었다. 타깃 층도 글 분위기도 책이 주는 메시지도 모두 바꾸었다.



그리고 더 많은 작법서와 더 많은 정보를 공부하여 기획서를 썼다. 정말이지 정성 들여 간절하게 썼다. 다시 투고를 시작했다. 60여 군데 즈음 투고 했을 때, 한 통의 메일이 도착했다. 글이 마음에 든다고, 전체원고를 보고 싶다고. 그리고 얼마 뒤 예쁜 책을 함께 만들어 보고 싶다는 메일도 도착했다. 그 메일을 보낸 출판사와 나는 계약을 하고, 올해 봄 『그냥, 좋다는 말』을 출간했다. 새로 쓴 원고를 60군데나 투고했을 때에도 한 통의 연락도 오지 않아 좌절의 능구렁이로 빠져들 뻔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지금 나의 책을 낸 출판사의 메일이 도착하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속속들이 계약을 운운하는 메일이 도착했다. 그중에서는 내가 특별히 좋아하던 출판사도 있었다. 이번에는 내가 '아쉽지만 다음 기회에'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다른 출판사에서도 러브콜을 해준다니 내 원고가 그렇게 형편없지는 않구나 하는 마음에 뿌듯했다.





얼마 전 인천 <책방 건짐>에서 『그냥, 좋다는 말』북토크가 열렸다. 책을 쓰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냐는 질문에 합숙을 해도 모자랄 판이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꺼낸 이 스토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가 닿았다. 포기하지 않으면 된다고.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나를 믿고 끝까지 나아가는 것이라고 진심을 전달했다. 그런 내 마음을 받은 그들은 나에게 별명을 붙여 주었다. '집념의 여인'이라고. 그 별명이 참 마음에 든다. 진짜 나 같아서 더 마음에 든다. 그리고 흔들릴 때마다 나에게 말해준다.



집념왕 이현정,

버티자. 계속해보자.

그냥 좋으면 되잖아?





*이렇게 진솔하고도 열정 넘치는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으시다면 『그냥, 좋다는 말』북토크가 이번주 목요일에 또 열립니다. 오전 11시, 경기도 광주 그림책서점 <근근넝넝>에서 집념의 토크 같이 하실래요?

https://blog.naver.com/smile_day/223120667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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