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생선조림

by 책닮녀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음식을 데워먹는 걸 싫어했던 아빠 덕분에 나는 뜨끈뜨끈 방금 조리를 마친 요리를 매 끼니 식탁에서 마주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엄마는 장사도 때때로 출근도 하셨지만 언제나 아침 일찍 일어나 요리를 해주셨다. 7시 반까지 등교하던 내게 밥을 차려주기 위해 엄마는 새벽이슬을 머금고 일어나셨으리라. 감자를 채 썰어 기름에 들들 볶고, 호박을 몇 개 썰어 계란에 부친 정성이 깃든 아침상이었다. 아침마다 반찬은 조금씩 바뀌었지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메뉴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생 to the 선 to the 조 to the림.


5분 거리에 시장이 있고, 10분 거리에 바다가 있었던 특성상 우리 집 식탁에는 생선은 끊이지 않고 등장했다. 엄마는 아침에는 부드러운 음식을 먹어야 한다며 고기보다는 생선요리를, 소화가 잘 되어야 한다며 튀긴 생선보다는 조린 생선으로 요리해 주셨다. 그때에는 엄마가 해주는 생선요리가 아침메뉴로 너무나도 당연하고 또 당연한 메뉴였는데, 주부가 되고 보니 생선을 조리는 일이란, 평일아침에 출근 전 메뉴로 준비하는 일이란, 결코 사랑이 없이는 안 되는 일이구나를 실감하게 되었다.



요리를 마친 엄마는 늘 옆에 앉아 생선을 발라주셨다. 가시가 많은 부분은 언제나 엄마에게 돌아가고 하얗고 통통한 속살만이 내게로 왔다. 양념을 쏘옥 담은 무를 밥 위에 올려주시던 엄마. 생선조림은 엄마에게 내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를 느끼게 하는 시간이었고, 살아있다고 느끼는 시간이었으며, 사랑으로 충만해지는 시간이었다. 누군가는 생선조림에 그렇게까지 의미를 둘 일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돌이켜보니 나는 그 시간에 자라고 있었다. 쑥쑥 사랑을 빨아먹고 삶을 체험하고 있었다.






달콤한 설탕과 짭조름한 간장, 매콤한 고춧가루, 감칠맛의 고추장까지 한데 어우러진 생선조림은 하나의 요리에서 다양한 미각을 자극한다. 때로는 가시에 혀가 찔려 아프기도 하고, 가끔은 비릿한 맛 때문에 잔뜩 넣은 고춧가루에 속이 아릿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먹으면 먹을수록 먹고 싶다. 삶 또한 그렇다. 달콤하면서도 짭짤한 맛은 아플걸 알면서도 계속 들이대게 하고, 매콤하게 혀를 자극하는 감칠맛은 서글프고 씁쓸한 속을 아프게도 또 달래주기도 한다.


무엇보다 생선조림과 삶이 닮아있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은 엄마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음식이기에. 삶 속에는 다양한 감정이 존재하고 그 뒤에는 수많은 욕구들이 어우러져 있다. 그럼에도 누군가의 마음을 열게 하고 누군가의 진심을 전달하고 누군가의 의미를 드러내는 것은 사랑이라고 생각하기에. 결국 우리가 삶 속에서 확인하고 닿고 싶어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닐까?




삶은 사랑이요.

고로 내게는 삶은 생선조림.

엄마의 생선조림을 맛보는 평일 아침이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밤이다. 그 사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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