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처음 은메달

무럭무럭 자라는 너를 응원해♡

by 책닮녀

축구를 잘해서 대표팀에 발탁된 건 아니었다. 축구는 팀으로 운영되는 스포츠다. 혼자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물론 개인 레슨을 받을 순 있지만, 함께 하는 스포츠로 수업도 다수의 인원이 있어야 진행된다. 작년부터 코로나 19로 인해 팀을 꾸리기가 어려웠다. 이미 축구를 하고 있는 동네 언니에게 혹시 같이 할 수 있냐고 물었다. 7살이고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다며 같이 하자는 말만 듣고, 운동화를 신고 졸레졸레 갔더랬다. 그런데, 뭐? 대표팀이라고? 클럽의 대표팀?? 축구의 'ㅊ'도 모르는 아이가 해도 괜찮냐고 물었더니, 큰 차이 없다며 그냥 그렇게 시작하게 되었다. 선수를 시키고 싶어서도 아니고 그저 아이가 공을 차는데 흥미를 갖자 찾아간 곳이었는데. 그렇게 난생처음 축구가 시작되었다.

대표팀은 2시간 동안, 주 2회 훈련을 실시한다. 다양한 테크닉을 배우고 팀원들과 미니 경기도 해보며 쉴 새 없이 뛰고 땀을 흘린다. 겨울, 여름 가릴 것 없다. 비 오는 날은 실내에서, 차양막 아래에서 궂은 날씨도 물리치며 2시간 꽉 채운 연습을 한다. 처음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열심히 뛰기만 했다. 할 줄 아는 게 그것밖에 없었으니까. 그래도 선생님 말씀을 귀 기울여 듣고 뭐든지 열심히 하는 바른생활 학생이라 어느 순간이 지나니 실력이 늘기 시작했다. 볼을 다루는 테크닉도 좋아지고, 조금씩 자신감도 붙기 시작했다. 선생님의 칭찬을 양분 삼아 차곡차곡 땀의 시간을 채우고, 흥미를 키워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변수가 발생했다. 감독님이 교체가 되었고, 아이는 새로운 감독님께 적응하느라 힘들어했다.


특별히 무서운 분은 아닌데, 190 가까이 되는 큰 키에 덩치도 좋은 남자를 처음 보아서 일까? 아이는 지레 겁을 먹었다. 두려워서 축구를 가기 싫다는 말을 3개월 넘게 했었다. 가는 날마다 울고, 드러눕는 아이를 나는 독한 맘을 먹고 줄기차게 데려갔었다. 나 역시도 그만두고 싶을 때가 많았지만, 축구는 좋은데 단지 감독님이 무서워서 그만두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걸 어떤 역경이 있어도 잘 버텨내고 극복해내는 걸 아이에게 경험하게 하고 싶었다.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손흥민, 박지성, 김연아 같은 대단한 스포츠 선수 부모님은 얼마나 맘을 독하게 먹고 단단하고 강하게 아이를 이끌었을지,,, 그 맘이 조금 아주 조금 이해가 되었다. 스포츠 선수가 될 것도 아닌데 아이를 못살게 구는 것 같았다. 힘들게 버텨온 나의 마음도 조금씩 경계를 허물고 있었다. 7월 말 처음으로 축구대회가 잡혀있었고, 축구대회를 마치고 그만 두기로 약속을 했다.


7월 즈음, 우리나라는 코로나 확진자 2000명대 진입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거리두기 4단계에 돌입했다. 야외 스포츠이기는 하지만, 관람객들이 많이 모이는 자리를 나라에서 주최할 수는 없었다. 대회는 일단 9월로 연기되었고, 대회가 끝나기를 손꼽아 기다렸던 아이는 하는 수 없이 9월까지 축구를 계속하게 되었다. 코로나 상황은 여전히 좋아지지 않았다. 영영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았던 대회는 관람인원 제한, 코로나 검사 완료자만 입장이라는 가이드라인이 세우고 시행되었다. 멀고 먼 강원도 태백시에서 이루어진 축구대회. 아들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축구대회를 위해 우리 가족은 새벽 4시에 출발을 했다.


경기장에 도착하여 안전 수칙을 확인받고, 대진표를 받았다. 엥? 이게 뭐지? 다른 학년은 10팀씩 빽빽한데, 1학년은 4팀으로 단출했다. 원래는 6팀이 신청했는데,,, 코로나로 인해 경기가 미뤄지며 2팀은 취소했다고 한다. 그리고 1팀은 오늘 아침 태백으로 향하던 차에서 일행 중 코로나 확진자 발생이라는 비보를 듣고 돌아갔단다. 결국 남은 팀은 3팀. 겨우 요 경기 때문에 3시간 반을 달려서 태백까지 왔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지막이니 최선을 다해 경기를 잘 치러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 우리 팀은 공격과 수비 어느 것 하나 되는 것이 없는 그야말로 엉성한 팀이었다. 하지만 몇 개월간의 훈련을 거치며 아이들의 기량은 엄청나게 발전했고, 수많은 연습경기에서 패배를 했지만 골득실 차이는 경기를 할 때마다 눈에 띄게 줄었다. 이제는 지더라도 그냥 진 게 아니라 졌잘싸가 되었고, 지키는 경기도 많이 했고, 드문드문 이기기도 했다. 그러니 3팀과 경기를 한다면 그래도 승산이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를 했다.


이틀에 걸친 경기, 첫날은 1승 1무, 둘째 날은 1승 1패로 최종 2위를 기록했다. 둘째 날 패하지만 않았어도 승산이 있었는데, 우승의 자리를 아깝게 놓쳤다. 3팀 중에 2등이라 큰 의미 없이 받아들인 나와는 달리, 아이들은 2등이라는 사실에 엄청 기뻐하고 있었다. 그리고 목에 은메달 하나씩을 걸었다. 메달을 이로 깨물어보며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짓는 모습이 참 예뻤다. 아이들은 그날 하루 종일 메달을 만지작거리며 목에서 빼지 않았다.


대회를 모두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아이에게 물었다.

"축구 이제 그만두는 거야?"

"아니. 계속할 거야. 나 겨울까지 계속할 거야."

"응??? 왜??? 갑자기?"

"나 금메달 딸 거야!"


난생처음 은메달을 딴 우리 팀 아이들은 다음날 메달을 걸고 등교했다고 한다. 심지어 한 아버님은 메달을 걸고 출근을 했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들었다. 3팀이 참가해서 나란히 금, 은, 동을 사이좋게 나누어가졌건만, 뭐가 그리 좋았을까? 그러나 아이에게는 엄청난 계기가 되었다. 자신이 흘린 땀을 인정받는 결정체이고, 앞으로 나아갈 원동력이 되어준 것이다. 그렇게 아이는 난생처음 은메달을 목에 걸고, 다음 대회에 반드시 1등을 하겠다며 조금씩 축구를 즐기기 시작했다.


힘든 길로 돌아서 오느라 많이 지쳤다. 나 조차도 이제는 그만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을 때, 작은 도전이 우리 모두를 성장하게 했다. 꼭 메달이 있어야 하고, 메달의 색깔로 평가를 받아야 하는 건 아니다. 아이들은 도전하고 결과를 받아들이고, 더 나은 결과를 위해 애쓰는 법을 스스로 익히고 있었다.



앞으로 수많은 경기들을 치르고,

초록 잔디 위에서의 시간들을 채워가며,

더욱 단단하게 영글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그리고 다음번엔

'난생처음 금메달'로 글을 쓰는 날도 오기를^^

열심히 우리 아이들을 응원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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