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모르는 10대 때부터 나는 그렇게 말하고 다녔다. 우리 집이 부산에 있는 게 참 마음에 안 들었기 때문이다. 수도권 가까이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작은 꿈이 있던 나는, 무엇 하나 제대로 배우려고 해도, 접하려고 해도, 시험 보는 것조차도 모두 서울로 가야 한다는 게 속상하고 억울했다. 내 자식만큼은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는, 기회가 더 열려있는 곳에서 키우고 싶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도 엄포를 놓았다. 꼭 서울로 가서 직장을 얻고, 시집을 가고, 그곳에서 터를 잡겠노라,,, 시어머니 옆에 붙어 살 거야라는 말은, 시어머니와 산다기보다는 여기를 떠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반대로 언니는 늘 엄마랑 마주 보며 살겠다고 노래를 했었다.
그리고, 진짜 두 딸은 그렇게 살고 있다. 나는 멀리 시집을 왔고 언니는 엄마와 맞은편 건물에 살고 있다.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엄마의 손길이 그리울 때가 많지만, 그래도 후회는 없다. 언제든지 무엇이든지 더 많이 접할 수 있는 곳에 살고 있어서 만족한다. 하지만, 그렇게 멀리 떠나온 내가 원망스러운 날이 딱 두 번 있었다.
뒤늦게 들은 아빠의 수술 날.
나이가 들면 누구나 흔히 겪는다는 백내장 수술. 수술이라고 칭하지만 가벼운 시술과 마찬가지라고들 한다. 언니의 아이를 돌봐주고 있는 엄마는 아이들 등 하원 시간 때문에 함께 할 수가 없었고, 언니는 중요한 회사 일 때문에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다. 아빠는 괜찮다며 홀로 수술을 받고 홀로 돌아오셨다. 사실, 이 날 수술은 뒤늦게 알게 되었다. 괜히 멀리 떨어진 딸이 마음 쓸까 봐 말씀을 안 하셨던 거다. 너무 속상했다. 옆에 있었더라면 가까이 있었더라면 어떻게든 함께 갔을 텐데,,, 대학까지 공부시킨 자식이 버젓이 둘이나 있는데,,,, 자식도 없는 독거노인처럼 혼자 수술을 받으러 가셨다니 맴찢이란 단어가 눈앞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또 엄마가 홀로 병원에 가셨다. 2박 3일 짐을 싸들고.
엄마의 허리가 고장 난지는 오래다. 두 딸을 키워내느라 서서 하는 일,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았고, 집안을 돌보는 일에도 언제나 열심이셨다. 쉬는 날이면 조금 몸을 누이면 좋으련만, 요리에 청소에 늘 바삐 움직이셨다. 그런 엄마의 허리는 적신호를 계속 보냈지만, 여전히 외면했더랬다. 허리가 아파서 정상의 모습으로 걸을 수 없게 되자, 어쩔 수 없이 엄마는 병원을 찾았다. 그리고 수술이 될지 시술이 될지 모르는 병원행을 떠나셨다. 코로나로 인해 병원 출입이 제한되기는 하지만, 미리 검사를 받으면 보호자 1인은 들어갈 수 있었다. 아빠는 아빠대로 일을 하고 계셔서 시간 내기가 어려웠고, 언니는 엄마 대신 아이들을 데리고 있어야 하니, 병원에 같이 갈 수가 없었다. 딸이 있어도 소용이 없구나,,,, 괜한 자책감이 들었다. 언니에게 전화가 걸려왔고, 수술이 아닌 시술로 진행하기로 했다고 한다. 다행이긴 하지만 함께 간 보호자가 없으니 시술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세세한 사항을 알 수가 없었다. 마취를 어떻게 하는지, 회복은 어떤 식으로 하는지, 앞으로 치료는 어떻게 하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기다리는 수밖에,,,,고작 400킬로밖에 떨어지지 않은 이곳에서, 맘만 먹으면 2~3시간 만에 달려갈 수 있는 거리에서 '괜찮을 거야...'라고 나에게 긍정의 확언을 하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나도 돌봐야 하는 아이들이 있고, 해야 하는 일이 있었기에...... 마취를 해도 엄청 아팠다는 엄마는 별 탈 없이 회복하셔서 이제는 잘 지내고 계신다.
"괜찮아. 엄마 멀쩡해. 죽을병도 아니고 다 잘 됐어.
그리고 너 엄마처럼 일 많이 하지 마. 늙어서 고생해"
모시고 가지 못해 속상해하는 딸을 엄마는 오히려 위로해주셨다. 걱정은 하지 말라며 되려 나의 건강을 걱정하셨다. 자식 생각, 자식 걱정을 먼저 하는 엄마의 마음이 나도 엄마가 되고 나니 조금은 알 것 같다. 앞으로 세월이 흘러가면 분명 병원을 들러야 할 일이 더 많이 생길 테다.(물론 없다면 더 좋겠지만..) 매번은 아니더라도 단, 한 번만이라도 동행할 수 있다면 좋겠다. 멀리 있음을 원망하지 말고, '까짓 400킬로미터쯤이야!' 하고 거뜬히 달려가야겠다. 이제는 내가 엄마, 아빠의 어엿한 보호자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싶다.